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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전쟁 ㅣ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는 '법정 드라마'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포로 수용소 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묘한 법정 드라마,
그리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정반대의 상황에서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강렬한 반전으로 영화화되어 소개되기도 했던 이야기다.
법정 드라마는 그 특성상,
긴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 특별히 잘나가는 변호사와 검사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신빙성을 높일 수도 있을 거고.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의 법정은 엉성하기 그지없이 시작된다.
뭔가 어설픈 범죄와 법정.
그리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범인에 대한 멸시.
전혀 색다른 쪽에서 밝혀지리라 생각되던 반전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빛을 비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 포로'를 다루는 원칙에 대한 제노바 협정이란 것의 형평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세계대전에서도 미국이나 영국군 포로를 대하는 것과, 러시아 포로를 대하는 것은 정말 상반된다.
한쪽은 누릴 것을 거의 모두 누리지만, 다른 쪽은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
유엔이 지원하는 난민촌도, 유럽쪽의 그것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부스까지 포함하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는 식량조차 부족하다는 최근의 이야기도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전쟁'처럼 숨어서 진행되던 조용한 전쟁에 있어서야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거제도에 가면 'POW(prisoner of war)'란 영어가 적혀있다. 전쟁 포로란 말이다.(이 소설엔 독일어 '크리기'란 용어로 쓰인다.)
그렇지만,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는 거의 날조되어 조작된 글로 가득하다.
아직도 이 땅은 전쟁중임을 거기 가보면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흑인 스콧이 살인범으로 몰리는 쪽으로 쏠려 간다.
"보이는 게 진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정의"라는 독일인의 비웃음처럼,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흑인이라는 외양에서 무조건 범인이라는 쪽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이 세상에 증오와 편견이라는 증거를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증거는 없으니까."(296)
그러나 지성인 스콧은 디킨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실은 다른 곳에 있음을 강변한다.
"디킨스의 작품을 읽을 때는 한 가지만 기억하고 계시면 됩니다.
처음 봐서는 아무 것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겁니다."(365)
스콧의 목소리로 듣는 흑백 편견은 무시무시하다.
"비행 조종사 훈련 과정에서 어떻게 공군 중 최고의 조종사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말하자면 자네가 지켜야 할 규칙과 내가 지켜야 할 규칙이 달랐다는 거지."(368)
이 소설의 중심을 꿰뚫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전쟁은 모든 정상적인 것을 삐뚤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오로지 '삶'만을 위한 움직임이 있을 뿐.
거기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보다 더 큰 절대적 가치를 부여받은 하나의 원칙이 깊이깊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릴러가 법률에 대한 법률 해석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애초에 제대로 된 상황에서의 법정 스릴러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그런 점은 작은 부분이다.
어쩌면, 작가도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이 소설의 힘은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포로 수용소 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고,
비교적 권위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았던 유럽-미국 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전쟁은 비극적인 것이지만,
어쩌면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세상은 비극적인 것이었음을 행간을 통해 읽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힘일지도...
소설에서 다루는 인종간 대립, 삶에 대한 희구를 넘어,
더 큰 세상에서 존재하는 차별에 대한 성찰을 독자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이 남기는 유산일는지도...
비가 내리는 주말,
무더위가 끈끈한 땀을 주체못하는 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서늘한 마음을 얻는 일도 재미있는 체험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