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이 힘은 형상화를 통해 진실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임철우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모티프로 하여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다. 시의 상징적 표현이 가진 상상력의 날개를 소설의 진실성을 무기로 치환한 것이다.

곽재구의 관심은 늘 낮은 데 있다. 현대 고속철의 위용을 자랑하는 역사에 있지 않고 시골 작은 완행 열차나 서는 '사평역'과 '널'을 타고 맛조개를 잡는 사람과 자연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이문도 남지 않는 팥죽 파는 포구 사람들 사이에 그의 시선이 머문다. 그런데, 뭔가 감동이 없다. 맛깔스레 보이지만 한입 떠먹고 나니 숟가락을 대기 싫은 물김치같은 야릇한 맛.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의 민중성에 결여된 그 무엇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낭만적 추상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일단 결론 지었다. 그의 시선이 끊임없이 집착하는 낮은 곳에는 그의 삶이 없었다. 문학의 진실성과 삶은 별개가 아니므로.

그는 포구에서 포구로 '글을 쓰러' 다니는 지식인이었지, 포구에 사는 얼굴과 개흙이 분간도 안 되는 진솔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낭만적인 접근이 그의 글을 추상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사평역에서'가 시로써 누릴 수 있었던 추상성의 여유 공간을 '포구'는 산문이어서 누릴 수 없었다고나 할까. 이런 글은 은행에서, 병원에서 대기 중에 읽어버릴 잡지 속의 테마 여행이라 할 만하다. 책으로 묶어 사람의 고독과 떠돌이의 바람기를 시린 언어로 전달할 것 까지는 없어 보인다.

'시'로써 만족시켰더라면 '신비감'의 영역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뒷맛.

참,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서귀포여자고등학교'에서 내려다 본 바다란 데 나도 동의한다. 그 학교의 교사에서 내려다본 은빛 바다와 섬 하나는 충분히 그 학교 여고생들을 시심에 홀리게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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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가 없다.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미래를 위한 시간, 미래를 위한 비행, 거기에는 일정 부분 짙은 꿈의 냄새가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새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맞바꿀 만한 가혹한 비행을 통해 스스로의 유전자 내부에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저장하고, 그 추억들은 쌓이고 쌓여 설령 지금보다 가혹한 삶의 현실이 지상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힘을 갖추는 것이다. 가혹한 자연의 재앙에 부딪쳤을 때 인간이 저 새들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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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7-0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부족한 리뷰 아랫단에 잘 영글은 포도 한 송이 달아주시는 님의 마음이 참도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참 잘했어요 도장 다섯 개 받은 기분이랍니다.
탁월한 글발이라니요. 정말 과찬이십니다.
제맘대로 쓰는 글을 부지런히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