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탐닉 - 삶의 질문에 답하는 동서양 명저 56 고전 탐닉 1
허연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탐닉[耽溺]  :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거기에 빠짐, addiction 

기왕에 나온 책 중에서 고전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
늘 동양쪽은 신영복의 '나의 고전독법 강의',
서양쪽은 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 정도였다. 
이제 이 책을 한 권 더 추천할 수 있게 되어 무지무지 반갑게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나도 올해 고전을 읽겠다고 연초에 마음먹은 적도 있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된다.
뭐,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이런저런 가벼운 책들을 읽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시인 허연 님의 글로 채워져 있는데,
고전이 초월의 경험이며 구원이라는 그의 너스레는 충분히 이유 있음을 글을 통해 보여준다. 

원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인용'을 많이 하는 법인데,
그의 글에는 '인용'이 극히 절제되고 있다.
80년대 흔히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의 가장 큰 한계가
어떤 맥락에 닿지 않는 인용문들을 읽으며 요령부득의 추측으로 글을 소화해야했던 것인바,
작가의 글들은 짧으면서도 압축된 내용을 최선의 설명으로 남기려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그의 <고전> 목록은 여느 목록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하여,
동양의 <논어>, <맹자>, <노,장>으로 튀다가
르네상스 이후의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을 늘어놓기 십상인 <사상사>와는 다른 것은,
이 책이 그가 온몸으로 밀고 나온 독서의 결과물로서 독자들에게 슬며시 권하는 목록으로서의 <탐닉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고전 독서임을 갈파하려는 듯,
그는 편안한 문학 작품부터 들이민다. 

이방인, 데미안, 위대한 개츠비, 변신, 동물농장,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분노의 포도, 율리스즈, 신곡, 두이노의 비가, 구토, 적과흑, 인간의 조건, 풀입, 오만과 편견, 등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햄릿, 전쟁과 평화, 노인과 바다, 길 위에서(잭 케루악, 처음듣는...), 설국에 대한 권유가 100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꼭 고전이 부담스러운 철학서적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음을 충분히 강변하였다. 

두번째 장에서는
인간의 삶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위대한 저술들이 등장한다. 인문학 분야의 고전이라 하겠다.

프로이트와 다윈, 푸코와 데카르트, 칼 포퍼, 니체, 공자, 장자, 플라톤, 아우렐리우스,토마스 쿤, 레이첼 카슨, 비스겐슈타인, 에리히 프롬의 글들은 당연히 읽어야 할 목록들이란 듯, 쉽게 들이민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사회과학 서적의 고전들을 망라한다.

롤스의 정의론, 군주론, 슬픈 열대, 국부론, 자본론,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맥루한의 미디어 이해, 루소의 사회계약론,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부르디외, 보봐르, 홉스, 카네티, 열하일기, 사마천 사기, 대니얼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밀레트, 지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까지...

숨가쁘게 달려가는 고전 탐닉은
한가지 큰 단점도 남긴다.

이 책을 읽고, 다이제스트를 읽어 뭔가 많이 부족하다. 원전을 읽어야겠다...는 감정이 솔솔 피어오르기 보다는,
허연 덕에 고전 안 읽고도 읽은 체를 할 수 있겠군...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거, 이런 다이제스트로 고전을 섭렵한 체 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도 머리를 들지만,
어쨌든, 이 책을 밑줄 좍좍 그으면서 작가와 책 제목, 그 책의 주요 개념만이라도 대학 1학년 때 머릿속에 넣어둔다면,
평생 살면서 차근차근 공부할 거리는 충분히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와 저작들은 대학 다니면서 교수들이 소개한 것들이 많다.
이런 책이 이제라도 나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 축하 선물로, 이 책을 꼭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더 확산적인 독서의 길로 접어들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주는 데 꼭 적합한 책이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자들이 죽고 새로운 진리를 신봉하는 세대가 주류가 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155, 토마스 쿤)

아, 구시대가 죽어야 새시대가 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구세대로서 신세대에게 '고전읽기의 필요성' 내지는 '고전읽기의 힘'을 전수하면서 죽어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권하기 좋은 책을 만나 참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