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 최고의 멘토들이 전하는 직업 이야기
이영남 지음 / 민음인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
청소년들에게 목표를 가지라고 하고,
야망도 가지라고도 한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도시에서 삐까뻔쩍한 삶을 동경할 것이고,
도시 사는 사람이라면 시골의 한가로운 정취를 동경하게 마련이다.. 
시골쥐가 서울쥐를 동경해서 서울쥐네 집에 갔다가 된통 당하고 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주역에서 卑高以陳 貴賤位矣라 해서, 낮고 높은 것이 자리잡으면 귀하고 천함이 생긴다고 했다. 
낮은 것은 가까운 것이고, 높은 것은 먼 것이라,
가까운 것은 천하게 여기고 먼 것은 귀하게 여기는 법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6자매(음기가 엄청 승한 집이다. ㅋ)중 5자매가 모두 교사인 집이라,
자기도 경북사대를 가지만, 매일 같은 수업을 반복하여야 함에 질려 기자가 된 사람이다.
나도 매주 같은 수업을 일곱 반 들어가서 하지만,
미묘한 점은 일곱 번의 수업이 모두 다르다는 데 있다.
나는 그걸 그다지 지겨워하지 않으니 이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다.
사람은 이렇게 모두 다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직업이 '도둑, 강도' 등이 아니라면, 모두 인간의 삶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게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이가 의대를 간다 하면 잔치를 벌이지만, 아이가 수학과를 간다 하면 쌍지팡이를 짚을 게다.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직업의 귀천은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거기서 얻는 보수에 따라 분명히 귀천을 가리려 하는 것이다. 

귀천은 주역에서 설명하듯,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천하게 여기고, 얻기 어렵다면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원래 귀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그렇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직업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모두 귀한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그렇게 모순적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다양한 멘토들의 역경 극복 내지는 고민 극복 사례를 싣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책에 등장하는 외과의사, 피디, 회계사, 호텔리어, 기자, 회사원, 아나운서, 외교관, 변리사, 방송작가, 통역사, 법조인, 판사, 승무원, 큐레이터, 조종사, 변호사, 치과의사가 되는 길이 궁금한 아이들은 별로 없을 거란 사실이다. 

이 책의 장점은, 멘토가 될만한 사람을 골라서 인터뷰한 것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생생한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한계는...
그 꿈을 이루는 데, 과연 한계가 없을까?하는 부정적 생각이 콱, 들게 하는 데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직업군은 한국 사회라면 상위 1% 가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직업의 선호도나 수입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9%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1%안에 들어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물론 상위 5%의 아이들에게 상위 1%로 진입하는 데 희망을 주는 책으론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 한 아이가 진입하면 밀려날 다른 아이에게 절망은 더 큰 일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집회를 열고 있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말을 씹어서 열린 집회지만, 문제는 반값 등록금에 있지 않다.
반값 아니라 무료로 해 준대도, 거길 나와봤자 취업하는 데
또는 세상을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기관이라는 데 있다. 

도움도 별로 안 되는 기관에 엄청난 돈을 내야 하고,
또 가면 갈수록, 로스쿨 제도, 의학 대학원 등으로 인한 학력 인플레는 심각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비를 감면해주는 사회가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서도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력과 상관없이
힘든 육체적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 야간 근무나 휴일 근무 등의 일자리엔 고임금을,
사무직이나 단순직에는 비교적 저임금을,
사회적으로 밑바탕이 되는 공무원, 교사, 법관, 의사 등의 직업에는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는 사회를
구성원의 합의하에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미 한국은 그 합의를 의논할 시점을 많이 놓친 상태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고도화되어 버렸고,
생활 수준의 상승으로 어두운 미래 속에 최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생지옥도>를 연출하고 있다. 

연출가는 없지만,
그 생지옥도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그저 꿈을 꾸어라~라는 말을 되뇌는 일은,
잠을 자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다음 번 대통령은 제대로 뽑아서,
직장을 많이 만들고,
비정규직의 고충을 덜어 주고,
40대 자영업자의 고뇌를 알아 주고, 그래서 러시앤캐시 광고 좀 망하게 하고...
아이들에게 '공부 덜 해도 다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청춘'의 '봄 춘'자는 'spring'이 아니다.
<청춘>, <사춘기>, <일장춘몽>, <춘화>의 春자는 'sex'다.
청춘은 거기 골몰하는 시기고,
사춘기는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시기고,
일장춘몽은 아 거시기한 꿈을 꾸는데 엄마가 학교가라고 깨워서 안타까워 죽는 헛된 순간이고,
춘화는 거시기 부분이나 거시기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거나 찍은 화면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이성의 꽁무니나 쫓아 다니고,
청춘의 젊은이들은 어서 결혼해서 애 낳을 생각이나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이상 사회 아닐까?
한국 사회가 저출산율 1위란 게 바로 그런 사회에서 멀어진 변종 사회라는 증거 아닐까? 

높은 직업을 얻기 위해 온힘을 다해 공부에 전념하는 '또라이'는 세상에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청춘, 을 살아서,
빨리빨리 애를 낳고 그 애들을 잘 기르는 일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기르려 하지 말고,
진정한 사랑법으로 <실눈 뜨고 볼 것>을 배우는 사회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부모는 아이들을 너무 열심히 기르는 데도 병폐가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