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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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학이 대세이던 때, 민중문학을 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러나 문학에서 이념 논쟁이 소거되면서,
민중문학 하던 이들의 글에서 민중의 퀴퀴한 냄새가 산뜻하게 제거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여전히 사람들의 삶은 팍팍한데,
절대적 빈곤이 사라진 자리에 상대적 빈곤이 자리를 틀었을 뿐인데,
문학은 그리고 시는 소풍날 보물찾기처럼 성의없게 던져진 <보물쪽지>와 그것 못지않게 성의없이 구입된 <보물>만큼이나 시덥잖게 변한 것 같다. 

문학과 시는 이제 뜨겁지 않고, 그렇다고 냉철하지도 않고,
다소 당황스러운 언사를 만나게 하고,
간혹 황망스러운 상황에 부닥치게 하고,
자주 낯선 어휘들에 곤혹하게 하곤 한다. 

정호승의 시는 말갛게 투명한 유리 구슬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거기 세상이 조그마하게 거꾸로 뒤집힌 채로 들여다보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바람벽에 달린 박바가지에 유치하게 그려진 그림과 '인내는 쓰고' 류의 못쓴 글씨가 어울린 화면처럼,
익숙하고 또 그만큼 낯설다.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 놓는다 (못, 부분)

이어진 부분은 '구부러진 못'에 비유된 구부러진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그런 것 같아 못마땅하게 읽는다. 

작년, 천안함 사태라는 국가 초유의 사기극이 진행될 때,
정호승은 천안함 46 용사(?)들이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런 도인스런 발언을 하셨다.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 

기습 공격을 당했다면, 당연히 물증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물증이 없어도 조선일보가 했다면, 인간 어뢰를 믿을 수 있는 시대에 그는 행복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 당시 그는 그 신문사 기자였으니.  

사람 사는 일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마는 일 (지하철을 탄 비구니)

빌어먹을,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말았으면,
조선일보에 저런 소리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민중문학으로 좀 유명짜 해졌으면,
그게 절 하나 지은 거라면,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닥치고 있을 노릇 아닌가 말이다. 

한여름에 겨울 점퍼를 입은 노숙자 한 사람이 빗속에 쓰러진다
나는 젖은 돌멩이로 떡을 만들어 그에게 주고
흙으로 막걸리는 빚어 나눠 마시고
신나게 꼬리를 흔들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에게 말한다
부디 다시는 태어나지 말라고
태어나지 않은 날이야말로 내 생일이라고 (생일, 부분) 

김지하가 1991년 '젊은 벗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외쳤던 그 정론지도 역시 그 신문이었다.
왜 있잖은가.
선거철 되면 기자들이 모두 신춘 문예라도 나갈 듯, 소설 쓰기 잘 하는 그 유명한 신문. ㅋ 
김지하도 젊은 벗들이 나날이 분신에 투신에 비분강개할 때 너무도 아쉬워서 한마디 거든 거지만,
그 뒤에 북한의 사주가 있다는 모 대학 총장님의 말씀도 가소롭기 그지없었지만,
김지하가 새로운 <생명> 사상을 들고 나왔을 때, 역시나 누구도 개새끼를 쳐다보지 않았듯,
이 사람도 왠지 새로운 <도사>가 되어 <오병이어의 신이한 기적>이라도 일으킬 태세다. 참 위인 나셨다. 
그런데, 스스로 개새끼가 되어,
생일날 태어나지 않았으면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좀 도사가 된 건가? 

젊을 때는 산을 바라보고 나이가 들면 사막을 바라보라
더이상 슬픈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지 말고
과거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웃으면서 걸어가라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을 어머니를 땅에 묻은 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첫아기에게 첫젖을 물린 날이라고 생각하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분노하지 말고
나에게도 이런 날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침밥을 준비하라
어떤 이의 운명 앞에서는 신도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다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잔이 있으면 내가 마셔라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일 뿐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무엇을 이루려고 뛰어가지 마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전문)

역시 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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