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창이란 이야기를 몇 번 했지?
조선의 왕조를 떠받치던 기반은 '사대부'였단다.
사대부는 문화예술을 중시하던 계층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시조를 지어 부르던 전통이었지. 

사대부와 더불어 연회자리에서 예술 창작과 감상에 참여했던 계층으로
기생들이 있었어.
기생들은 단독부임해야하는 공무원의 특성상,
관리들의 생활을 뒷받침해주던 사람들이었다고 보면 될 거야. 

그 중에 황진이라는 기생은 특별한 사람이지.
다양한 남성들과 남긴 이야기도 많지만,
서경덕이란 당대 최고의 학자의 인품에 감동하여 멋진 벗이 되었다고 하더구나. 

황진이의 시조가 6편 남아있는데, 한 수씩 읽어 보자.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너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니져 우러예어 가는고

(해석) 늘 푸른 청산은 나의 마음이고 매양 이리저리 흐르는 물은 임의 정과도 같다.
      물이야 비록 흐르는 대로 흘러가더라도 청산이야 변할 수 있으랴.
      그러나 흐르는 물도 청산을 잊지 못해 울며울며 흘러가는 것 같구나.

내 마음은 청산처럼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데, 임의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이 변한대.
(나는 임을 그리워 잊지 못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녹수(임)도 청산(나)를 못 잊어 울며 흘러 가는가, 하는
애절한 사랑노래지.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개성) 3절이라 일컬어지는 황진이.
아름다운 미모,
詩書音律(시서 음률)에 뛰어나고 묵화도 잘 치는,
그래서 문인, 碩儒(석유, 유학자들)와 詩酒(시주)로 교우하며 그들을 매혹시켰고,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는가 하면,
도도하기 이를 데 없었던 왕족 벽계수를 '청산리 벽계수야' 라는 시조 한 수로 도취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해.
그러나 존경하는 서경덕에게만은 어쩔 수 없는 여인으로서의 연정을 버릴 수 없었던 것으로,
그의 시조에 나타난 임은 곧 서경덕을 칭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단다.  

이 시조가 98년 수능에 등장했는데, 문제는 어렵지 않았단다.
한번 풀어봐.

 (나)의 시적 형상화 방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① 굳은 뜻과 변하는 정(情)을 대조시켰다.
② 울음을 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것에 비유했다.
③ 청산(靑山)은 불변한다는 관습화된 상징을 이용했다.
④ 정(情)이 변하는 것을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구상화했다.
⑤ 이별은 청산(靑山)의 탈속적(脫俗的)인 이미지로 나타냈다.

1)은 청산의 굳은 뜻, 유수의 변하는 정이 대조된 거 맞고,
2)는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소리내어 우는가?'에서 드러나 있고,
3)은 청산의 불변 맞고,
4)는 임의 정이 유수처럼 변하는 거 맞고,
5)는 '청산'이 '속세를 벗어난 이미지'가 아니라, '불변'의 이미지니깐, 정답은, 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一到)창해(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해석) 청산 속을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수월하게도 흘러간다고 자랑을 마라.
      한번 넓푸른 바다에 가기만 하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비추고 있는 좋은 밤이니 잠시 쉬어 감이 어떠하냐?

이 시조의 특성은 <중의법>에 있어.
벽계수는 한자를 풀면, <푸른 시냇물>인데, <왕족 이은원의 비유>이기도 해.
명월의 한자 뜻은, <밝은 달>인데, <황진이의 기명(妓名)>이기도 하지. 

푸른 시냇물이 시원하게 콸콸 내려가는데, 빨리 흐른다고 잘난 체 말라고 그랬어.
한번 바다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인생사이니,
산에 달이 가득한 이 밤, 쉬어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꼬임이지. 

이쁜 명월이가 왕족 벽계수를 놀리는 시조이기도 하지.
인생은 금세 지나가는데, 잘난 체 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 뭐, 이런 거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청산>
순간적으로 변하는 <벽계수>
인생은 헛되이 금세 지나가는 것이니 풍류를 즐기며 놀아 보세~
이런 멋진 시조지. 

애원이나 음탕함으로 꾀었다면 오래 남지 않았겠지만,
멋으로 남성을 유혹해 내고 있는 묘방을 보여 주고 있어서 오래도록 감동을 주는 시조지. 

이 작품의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가 남아 있단다.

이조(李朝) 종실(宗室)에 벽계수(碧溪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황진이를 만나더라도 침혹(沈惑)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늘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달 밝은 가을 밤, 그를 개성 만월대(滿月臺)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황진이는 곱게 단장한 후, 낭랑한 목소리로 함축성(含蓄性) 있는 표현을 빌어 이 시조를 읊어 그를 유혹하였다.
이 노래를 듣던 벽계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에 도취되어 그만 타고 온 나귀에서 떨어져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해석) 아! 내가 한 일이여! 이토록이나 그리울 줄을 몰랐더란 말이냐?
      가지말고 있으라 했더라면 떠났으랴만, 제 구태여
      괜시리 보내놓고 이에 와서 그리워하는 속내를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이 시조의 화자는 <회한>에 싸여 있단다.
후회하는 한스러움이 <회한>이지. 

'제 구태여'는 '임이 구태여', '내가 구태여'로 다 해석이 가능해서
어떻게 해석하든, 이별은 어쩔 수 없다는 일이며,
그 책임을 굳이 따져서 무엇하겠느냐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임이 그립지만 어쩔 수 없음을 확인하는 심리의 애틋함이 기막히게 포착되었다는 평을 얻는 시조야.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속으론 외로움에 떠는 화자의 마음을 읽는 일은
슬픈 상황이지만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서 읽는 이를 감동시킨단다.

자존심과 연정(戀情) 사이에서 한 여인이 겪는 오묘한 심리적 갈등이
고운 우리말의 절묘한 구사를 통해서 섬세하고 곡진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시조 문학의 결정체를 잘 보여주지.

이 시는 한국 시의 전통인 <이별의 정한>에 닿아 있어서 다음과 같은 문제와 많이 어울린단다. 

♣ 이 시조의 정서에 접맥된 작품이 아닌 것은?  

 ① 가시리 가시리잇고 / 바리고 가시리잇고.
 ②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③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④ 구름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이별 노래가 아닌 것은 3번이지?

산은 녯 산이로대 믈은 녯 믈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녯 믈이 이실쏘냐
인걸(人傑)도 믈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해석)  산은 옛날의 산 그대로인데 물은 옛날의 물이 아니구나.
      종일토록 흐르니 옛날의 물이 그대로 있겠는가.
      사람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는구나.

산과 물의 대조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짚어 보고 있는 시조야.
산과 물의 대조적 의미가 잘 드러나 있지.  

여기서 '인걸'을 보편적 의미로 보면 이 작품의 성격은 철학적, 관조적이라 볼 수 있지만,
정을 둔 임(서경덕)이라고 보면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슬픈 심사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단다.

황진이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松都三絶)이라 부른 건 아까 이야기했고,
황진이는 한때 서경덕을 유혹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일한 존경의 대상으로서 사제(師弟)의 의(誼)를 맺었지.
이 시조는 그의 스승이었던 서경덕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래. 
존경하는 사람도 물의 흐름과 같아서 죽게 마련이라
자연에 대한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는, <인생무상>을 확인하는 시조라고 볼 수 있어. 

다음엔 가장 유명한 절창을 하나 들어 보자.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해석) 동짓달 긴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리라.

이 시조의 독창성은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한 것이지.
베어낼 수 없는 자연적 개념인
기나긴 동짓달 <밤>을 한허리를 베어 두었다가,
임이 오신 날 밤이면 구비구비 펼쳐 보겠대.
참신한 비유와 우리말을 잘 살려 쓴 묘미가 돋보이지.

홀로 지새우는 동짓달 기나긴 밤
정든 임과 함께 덮는 춘풍 이불 사이의 거리감,
이러한 거리에서 지은이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극대화되고 있는 거지. 

초장의 '한허리'의 '한'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말인지 물을 때가 있어. 

'한'은 여러 가지 뜻이 있거든.
1. 한창이다
2. 가운데, 복판
3. 크다. 위대하다  
4. 같다

한허리는 '가운데, 복판, 중간'의 의미겠지?
'한겨울' 같은 건 한창이란 뜻이고,
'한글'은 위대하단 뜻이고,
'한동네', '한반'은 같다는 뜻이지.

팝송 중에 <Time In A Bottle - 병 속에 추억의 시간을 담아>란 노래가 있어. 

이 시조와 발상이 아주 비슷하단다.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아껴두고 싶대. 

엄마가 맨날 그러잖아.
민우 어릴 때로 시간을 돌려준다면, 정말 그 때로 가고 싶다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그런 거 아닐까 싶다. ^^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 둘 수 있다면 /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Is to save every day / Till eternity passes away / Just to spend them with you
영원토록 당신과 함께 /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 하루하루를 아껴두는거에요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만약 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 만약 말로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I'd save every day / like a treasure and then /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난 보물처럼 모든 날들을 아껴서 / 당신과 다시 함께 보내고 싶어요

But there never seems / to be enough time to do / the things you want to do / Once you find them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기에 / 충분한 시간이 있는건 / 결코 아니지요 / 일단 당신이 시간을 찾고나면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 That you're the one / I want to go through time with
주위를 둘러보고 알게되었지요 / 당신이야 말로 나와 시간을 함께 /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란걸

If I had a box just for wishes / And dreams that'd never come true
만약 나에게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 소원과 꿈을 담을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The box would be empty / Except for the memory of / how They were answered by you
상자는 비워둘거에요.당신으로 의해 / 어떻게 소원과 꿈이 이루어 지게 / 되었는가에 대한 기억만 제외하고는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枕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월침삼경 : 달도 잠든 깊은 밤

(해석) 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서 임을 언제 한 번이라도 속였길래,
      달 기운 한밤중이 되도록 나를 찾아올 듯한 기척이 전혀 없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에 (임의 발자국소리 인줄 속게되는) 내 마음인들 어찌하리오.

이 노래에선 나는 임을 속인 일이 없는데,
한 밤중이래도 임이 올 기색이 전혀 없다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어.
가을 바람에 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는 화자는 임이 오는 기척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 

스스로 한탄하면서 환각적인 감정까지 담긴 그리움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단다.
이 짧은 시 안에서,
내가 언제 임을 속였기에... 하는 '원망'과,
온 뜻이 전혀 없네... 하는 '기다림'과,
추풍에 지는 닙 소리...의 '기대감'과,
어이하리오...의 '안타까움'이 함축되어 녹아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단다.

전설적인 인물 황진이를 추모하여 시조를 지은 이도 있었더.
임제라는 선비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던 길에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읊은  시인데,
나중에 이 일이 양반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고도 한단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쳤난이
잔(殘) 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임제>

(해석) 푸른 풀 우거진 골짜기에서 자고 있느냐, 누워 있느냐.
      그 곱고 아름답던 얼굴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혀 있단 말이냐.
      술잔을 잡아 권해 줄 사람이 이제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아름답고 시문에도 능하던 황진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작자는
술병을 차고 무덤 앞에서 혼자 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허무를 되씹고 있지.
그 아름답고도 황홀한 얼굴의 모습도 간 데 없이
그 무상한 죽음 앞에 입을 다문 만인의 연인 황진이.
불러도 두드려도 대답이 없으니 그녀의 세계를 사랑했던 작자의 애상적 감정은 쏟아져 흘렀던 거겠지. 

양반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하면 분명히 세상은 욕을 할 터인데도,
화자는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표현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쯤에서 황진이가 그토록 마음 졸이며 사모했던 도인 서경덕의 시조도 한 수 볼까?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해석)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겹겹이 구름 낀 산중이니 임이 올 리 없건마는
      떨어지는 잎과 부는 바람 소리에도 행여나 임인가 하고 생각한다.  

초장은 어쩌면 도학자로서의 서경덕이 자신을 돌아보는 느낌도 난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는 것처럼.
그러나, 황진이와 엮어 생각하면,
첩첩산중에 임이 오겠냐마는,
지나는 잎과 부는 바람 소리에 임이 오는 소리인가 한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 

오늘은 황진이의 시조 여섯 편과,
황진이의 팬클럽 회장 임제의 시조, 그리고 서경덕의 시조까지 묶어 봤단다.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시조는 읊는 맛이 졸깃졸깃 최고란다.
짧은 구절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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