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 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

나희덕이 '사랑', 그 영원히 풀지 못할 과제에 대해 곰곰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몰라요.
사랑이 뭔지... 
인간의 언어가 가진 속성을 학자들은 삼각형으로 표현하곤 하죠.
세상의 숱하게 많은 '현실'들을,
인간의 두뇌 속에선 '개념화', '범주화'하여,
특정한 '언어'로 활용하는 것. 

사람들이 '사랑해.'하고 쉽게 내뱉는 그 말 속에는,
사실 수많은 머릿속 카테고리에 담겨야 할 것들이 구별되지 않고 쓰인다는 것.
그래서 화자의 '사랑해'가 나온 카테고리가
청자가 받아들인 카테고리의 '사랑해'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칸이었을 때,
소통의 불발이 일어나기 십상이라는 것. 

인간의 언어란 원래 태생적으로 그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것.  

 

1연. 

(어둠 속의 남녀.)
남 : 영이야. 잠시만... 나와 잠시만 함께 있어 줘.
여 : (방백) 철아, 너... 너, 날 사랑하는 거 맞아?
      정말 날 사랑해서 나와 잠시라도 같이 있고 싶은 거야? 
      아니면, ... 아니면, 젊은 네 몸의 본능이 절제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남 : 영이야, 잠시만... 잠시면 돼. 

(영이, 손을 뻗어 철이의 어깨를 짚는다.)
여 : 철아, 괜찮아?
남 : (고개를 끄덕이며, 푸~푸~ 거칠게 한숨을 내쉰다.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여 :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남 : (갑자기 영이를 꽉 껴안으며) 몰라. 모르겠어.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는 건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남녀.
그들은 사실 그들 머릿속의 다양한 카테고리 속의 상황을 모두 하나의 도가니에 넣어,
<사랑>이라는 상황의 용광로에서 녹여버리죠. 

사랑하는 이들이 두려운 것은,
자신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모른다느
자신의 사랑이 오락가락하는 욕정과,
연애 감정과,
소유욕과,
결혼을 전제한 교제와,
영원히 당신의 편이 되려는 순수한 마음과,
나를 버려도 좋을 투명한 마음의,
그 다양한 칸들을 유영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느 칸에 있으면 올바른 사랑이고,
어느 칸에 있으면 부정한 사랑인지,
배운 적도 없고,
그래서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그래서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힘겨운 것일 수밖에 없지요.
한 사람의 머릿속에 질러진 칸만 해도 숱하게 많은데,
그 중 어느 한 칸의 감정에서 길어올려진 '사랑'이란 단어가,
상대방의 머릿속에 질러진 칸에 든 개념과 충돌하는 순간,
에효 =3=3 그 부딪힘의 에너지란... 

어쩌면 '물질'과 '반물질'이 부딪히면 질량이 '0'이 되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하듯,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이 부딪히면서 뜨거운 사랑의 열기만 느껴질 뿐,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는지도 모를 일이랍니다.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몹시 추운 날, 시린 손을 비비적대던 것처럼,
미봉책으로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의 물고기마냥
헐떡거리는 너에게
그저 너를 적셔주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어댈 뿐.
그것이 그저 나의 최선이므로,
자꾸만, 자꾸만 침을 뱉어댈 뿐. 

잠시, 네 비늘은 어둠 속에서 빛날 순 있었지요.
그러나 나는 정말 두려웠답니다.
당신이 그걸 알았을까요? 아마 몰랐겠지요.
내 행위가 당신에게 영원히 전달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지금은 어둔 밤.
그래서 헐떡대는 당신 위로 내가 뱉는 침 정도의 위로로도
당신의 비늘은 잠시 빛날 수 있지만,
잠시 후 해가 뜨고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다면,
그 환한 세상에서는
아마,
아마 우리의 착각이 환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나는 그게 두려운 거예요.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나의 행위는 결코 사랑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면...
두려움에 잠긴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습니다.
당신의 시든 비늘 위로...

아, 이 소통하지 못함.
소통의 불가능함.
여기에 답답해하는 것은,
인간만이 스스로 가로지른 빗장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짐승들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사랑과,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고귀한 아름다움의 간격이 좁혀질 때,
그 칸지름에 익숙하다 생각했지만,
또 그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그 간극이 멀고 깊다고 느껴질 때,
인간은 사고의 불빛을 꺼버려야 할는지요. 

나희덕은 결국 사랑의 의미 나눔에 성공하고 있지 못해 보입니다. 

이전의 젖은 물고기들은 결국 헤어지고 맙니다.
장자의 학철지부(涸轍之鮒)는
가장 필요할 때 물 한 바가지가 필요한 것이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더 잔인한 것일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밥상 위의 마른 생선을 만납니다.
그 황어는 바로 너였지요. 

네가 물 한 바가지 필요하다고 했을 때,
내가 물 한 바가지 부어주지 못했던 네가,
바싹 마른 황어가 되어 내 앞에 놓였을 때,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었던 것이 없었음을,
나 역시 네 옆에서 침이나 뱉어줄 따름이었지,
너에게 한 바가지의 물을 길어다 부어줄 능력이 못되었음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너의 꺾인 지느러미,
너의 시들어버린 눈과 비늘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 앞에서,
화자는 할 말이 없죠. 

그때, 너에게 어떻게 해주었어야 했던지를 아직도 모른고,
그리고, 너의 꺾인 지느러미와 시들어버린 눈과 비늘이 나를 원망할는지,
아니면 무연히 잊었는지도 나는 모르죠. 

장자의 가르침은 이 대목에서 유효합니다. 

서로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 적셔주는 행위,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해요. 

진실한 사랑은 가슴 떨린 사랑도 아니고,
잊지 못해 가슴 태우는 사랑도 아닙니다.
정말 사랑이란 것은,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랑이에요.
가족 같은 사랑.
산소 같은 사랑.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랑을 <떨어져 살아 서로 잊>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헤어질까 바들바들 떠는 사랑이 아니라,
물과 물고기처럼
헤어짐을 상상할 필요도 없이 안정적으로 사는 삶.
수어지교라고 했던가요.
물 만난 고기라 했던가요. 

살아갈수록 손바닥이 까슬해지고,
손가락에 습한 기운이 조금씩 줄어들어,
자주 핸드 로션을 바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물기마저 말라버린다면,
슬프겠지요. 

서로의 대뇌 속,
다른 카테고리 속에 담겨진 낱말밭에 연연하기보다는,
사랑이란 말을 잊고,
당신이 거기 존재함 자체를 감사하며 사는 하루가 되기를... 

마른 물고기처럼 변해버린 당신의 존재를 만났을 때,
미안해하거나 후회하는 일도 애시당초 만들지 않으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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