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 온 것 같은데,
황사 탓인지 세상이 뿌옇다. 

봄이면 몸이 좀 개운했으면 좋겠는데, 몸살인지 피곤하구나.
민우도 건강 잘 챙기면서 생활하기 바란다. 

오늘은 시조를 주로 쓰던 시인 이근배의 조금 어려운 시를 한편 읽어 보자.
제목은 '겨울 자연'이야.
겨울이면 자연이 모두 숨죽인 듯한 계절이잖아.
꽁꽁 얼어붙으면 아무 것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막막한 세상.
그렇지만, 그 자연 속에선 끊임없이 생명력이 약동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
우선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시를 한번 읽어 보자.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다 어디 갔느냐.
해체되지 않은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따순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광막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자연이 되어 나를 부르기까지는
너의 무광의 죽음,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
허나 세상을 깨우고 있는
잠 속에서도 들리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이근배, 겨울 자연> 

시조 시인이라 그런지,
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영원, 무광, 유폐' 같은 단어들이 그렇지. 
그러다 보니 금세 의미가 전달되진 않아. 

한 문장씩 의미를 풀어가면서 살펴 보자.
전체가 의미가 잘 안 들어오면, 부분으로 나눠보면 의미가 들어 오기도 하니 말이다. 

우선 첫 부분.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화자는 '자정'이 되었대.
밤 12시면 잠들 시각이잖아.
화자는 잠들어 쉴 시각인데, 겨울 자연은 깨어서 우는 거야.
여기 이미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불현듯 느끼기를,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려는 이 시각에도,
어떤 존재인가는 아직도 깨어서 맹렬하게 울고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화자를 발견하게 되는 것.
다음 부분을 계속 보자.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다 어디 갔느냐.

겨울 산.
눈으로 하얗게 덮인 겨울 산은
푸르른 잎사귀로 자신을 장식하거나,
붉고 누른 단풍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지 않는다.
하얀 눈 덮은 겨울산은 들처럼 납작 엎드리고,
들에는 끝없이 눈이 내린다.
세상엔 풀과 나무가 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말았구나.
이런 느낌일까. 

해체되지 않은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해체되지 않은 영원.
좀 멋진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의미가 쉽게 와 닿지는 않는 구절이다.
이런 말로 읽어 보자. 

해체는 흩어지는 것이고 풀어지는 것이고 없어지는 것이잖아.
영원은 영원히~ 이런 말이고.
겨울 자연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있는 존재고,
눈 좀 쌓인다고 해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야. 

겨울 자연의 '꿈'.
겨울 자연은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해체되지 않는 거라고 했어.
그 겨울 자연의 꿈은 떠다니고, 어딘가에 살아 있어서,
매운 겨울 바람이 겨울 나무를 가르는 소리로
자정에,
편히 잠들려는 나의 자정에 나를 부르는 거지.  

대조적으로 설명하자면,
겨울 자연은 영원히 깨어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존재로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데,
화자는 자정이 되면 금세 잠들어 버리는,
꿈 같은 것 정도야 금세 잊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시란다.

이 정도 들어 보고 앞부분을 다시 읽어 보렴.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다 어디 갔느냐.
해체되지 않은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요기까진 조금 이해가 가니?
그럼 뒷부분을 마저 보자. 

따순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광막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자연이 되어 나를 부르기까지는
너의 무광의 죽음,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

'따순 피가 돌던 사랑 하나'는 '광막한 자연'이 되었대.
'따뜻한 피가 흐르던 사랑 하나'는 평범한 존재, 일상적인 자연의 하나겠지만,
<광막한 자연>은 겨울인데도 쉬이 얼어붙지 않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존재로 변화한 것 같구나. 

일상적이던 자연이,
겨울 자연이 되어 나에게 깨우침을 주기 까지,
너, 겨울 자연은 '무광(無光)'의 죽음을 무수히 겪었을 것이래.
무광의 죽음은 빛도 없이, 영광스런 순간도 누리지 못하고 죽어감을 의미하겠지.
그리고 구름처럼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채로,
쓸쓸하고 유폐(아주 깊숙히 가두어 둠)되어 있었던 존재였다고 하는구나.  

파릇파릇 새싹돋고 꽃피우고 광합성하던 나무들이,
한 겨울 광막한 <겨울 자연>이 되기까지는,
그 <겨울 자연>이 자정이 되어 편히 쉬려는 나를 부르기까지는,
영광을 누리지 않고, 쓸쓸하게 걸어왔던 <무욕>의 시간들을 거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뒷부분도 계속 보자. 

허나 세상을 깨우고 있는
잠 속에서도 들리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잠들려는 화자를 깨운 저 소리,
겨울 자연의 매서운 소리는
푸르던 산도 산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
풍요롭던 들판도 들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
그리하여,
온 세상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고 하는구나. 

화자는 자신의 삿된 욕망과 잡다한 일상사에 파묻혀 살고 있었는지도 몰라.
집을 새로 사야하는데,
융자도 얻어야 하는데,
딸내미는 성형수술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아들 녀석도 돈이나 부쳐달라고 해서 속이 시끄러운데, 
그래서 도무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사는 게 뭔지 모르겠을 때, 

산도 변하고,
들판도 변하고,
세상 만사는 원래 그렇게 변하는 것.
<무상(無常)>한 것임을 겨울 자연이 세찬 바람 소리로 가르쳐 준 건지도 몰라. 

그렇게 겨울 자연한테서 배우고 보니,
융자 얻어서 갚을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고,
딸내미 성형수술할 돈도 그리 큰 돈도 아니고,
아들 녀석에게도 이제 일 년만 부쳐주면 되니 금세 끝날 거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맘이 편안해 지는 거지. 

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살고,
그러다 보면 한 세월 훌쩍 지나는 것이 삶인데,
맨날 바뀌고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뭐,
거기 끄달려서 고민하고 맘 조릴 것 있겠냐는 좀 똥배짱이 생기더라는 이야기인지도... 

그래서 화자는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는지도 몰라. 

꽁꽁 얼어붙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겨울 자연에서도 생명력은 존재하듯,
모두는 돌고 도는 것.
사라지면 다시 태어나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니,
기쁜 마음이 들어 삶의 시련이나 고난의 울음도 한결 후련하게 풀리는 건지도 몰라. 

화자가 잠들려는 순간 들려온 <저 소리>
그것은 화자가 일상 속에 매몰될 때,
단순한 삶의 오밀조밀한 귀퉁이에 부딪혀 고민할 때,
화자의 마음을 넓고 넓게 만들고,
부드럽고 매끄럽게 만들어 주는 그런 소리인 것 같구나. 

겨울 자연의 저 소리를 통해서 새로운 모습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노래.
겨울 자연.



민우도 겨울 자연의 소리를 들어 봐.
지금 세상은 누구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 없어 보이지만,
가만가만 겨울 자연의 소리를 듣노라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감을,
순간순간 변화하고 변화하는 것임을,
그래서 너무 깊이 고민만 할 필요는 없고, 
다만 때가 되었을 때 생명력을 꽃피우며 살면 되는 것임을 생각해 보자꾸나. 

이 시는 다소 복잡하지만,
화자인 <나>와
화자를 일깨워주는 존재, <겨울 자연>의 심상에 집중하면서 읽노라면,
그래서 여러번 읽게 되면,
서늘한 겨울 바람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시이기도 하단다.
몇 번 읽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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