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4 - 4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스승의 날에 부쳐

마흔 명의 숙녀들에게...
이제 숙녀란 말에도 좀 익숙해 졌겠구나.
빨리 지나간다는 오월이 벌써 15일이나 되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라, 너희가 하루 홀가분하게 지낼 것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즐겁다.
요즘은 사람 사이의 정이 없다는 둥, 세상은 삭막하다는 둥 해도, 우리  교실을 보면 늘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하다. 맨날 3학년실에서 떡 얻어 먹던 아이들이 떡을 해 와서, 요즘 며칠은 선생님들 허리가 날로 굵어지고 있단다. 선생님들이 너희 떡 먹으면서 5반 아이들은 정이 많다고 칭찬도 하셨단다. 우리 반 보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우선 아이들이 패거리를 짓지 않고 두루두루 친한 거 같아서 가장 좋고, 청소 시간에 누구 하나 눈치보지 않고 열심히 해서 좋다. 지난 번 북녘 룡천 사고 돕기 성금을 걷을 때에도, 난 처음에 아이들이 무관심하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만 액수가 189,740원이나 되는 걸 보고 다른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단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니 만큼, 스승님 말씀을 경청하기 바란다.
우리 나라의 '先生님'은 서양처럼 teach - er(영어, 가르치는 사람), ler - er(독일어)처럼 가르치는 사람에 한정하지 않는 호칭이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먼저 났기' 때문에 선생님이 된 거다. 너희보다 먼저 나신 선생님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바란다. 그게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이제 날도 서서히 더워지고 몸도 나른해 질 시기다. 보통 오월을 잘못 넘기면 마음이 해이해지기 제일 좋은 때란다. 저도 모르게 한 달을 허송세월하고 나면 마음의 정리를 하게 되지. '아무大'로 가기로.
이제 평가원 시험도 이 주 정도 남았다. 앞으로 절대로 아프지 마라.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일교차가 크니깐 감기도 쉽게 걸리고 하는데,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배가 아프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고,  허리가 아프면 미리 복대같은 걸 준비하고, 감기가 잘 드는 사람은 미리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아프고 열나면 뇌세포가 팍팍 죽는단다. 그리고 조만간 등교 시간도 조금 늦출 것을 학교에서 협의하고 있으니 잘 때 푹 자고, 정신 번쩍 차려서 공부하면 좋겠다.
스승의 날을 빙자한 선생님의 부탁 하나. 월요일부터 좌석을 바꾸기로 하자. 그런데 지난 번처럼 친한 친구랑 앉지 말기 바란다. 아무래도 친한 친구랑 앉다 보면 한 마디라도 더 떠들게 되잖아.
두 번째 부탁, 시간을 좀 정확히 지키자. 아침에 일곱 시 반. 아침조회 아홉 시, 수업 시작 시간, 자습 시작 시간을 잘 지켜 주기 바란다. 체크하는데 빈 자리가 보이면 선생님의 마음이 아파온다.
너희가 자기 소개서에 적은 그대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선생님은 너희의 진로 탐색과 진학을 도와주는 사람이지,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너희의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토대로 최대한 진학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게 선생님 몫이고, 너희는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잘 얻어오는 게 너희 몫이다. 나중에 주례 설 때를 대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6월 2일 시험까지 졸지 말고 열심히!
담쟁이 장미가 탐스럽게도 핀 오월,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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