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4 - 1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게임의 법칙을 알면 게임이 즐겁다

마흔 명의 숙녀들, 안녕.
새 학년도의 담임을 맡은 정영섭 선생님이다. 입시 준비에 긴장감이 가득할 우리 교실에 들어서서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어려울 거 같아서 몇 자 미리 적었다.
12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해야할 가장 중요한 1년을 우린 같은 배에 올랐다. 미리 바란다면, 내년 졸업식에 모두 즐거운 얼굴로 행복한 졸업을 맞기 바란다. 너희와 반가움을 나눌 시간조차도 아껴야 할 지금, 선생님이 붙인 제목이 좀 희한하지? '게임의 법칙을 알면 게임이 즐겁다.' 1년간 너희 고3 생활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게임이라고 여겨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 제목이다.

우선, '게임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하나 생각해 보자.
게임의 법칙 하나. 모든 게임은 시작할 때 레벨 1에서 시작한다. 내가 레벨 1에서 버벅거릴 때 높은 지력과 마법을 쓰는 사람도 원래는 1이었던 거다.
게임의 법칙 둘. 모든 게임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어떤 때는 한 시간 투자하면 한 레벨을 올릴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두 시간 투자해도 별로 소득이 없을 때도 있고, 누구는 좋은 아이템을 잘 얻는데, 난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인정하면 맘 편하다.
게임의 법칙 셋. 게임은 레벨이 오를수록 어려워진다. 레벨 2로 오르기 위해서는 아주 허약한 몬스터 십여 마리만 처치하면 된다. 레벨 3으로 오를 때는 이십여 마리…. 레벨 10정도 되면 100여 마리. 여기까진 재미있고 쉽다. 하루만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레벨이 20이 넘어서면 하루에 1레벨 올리기도 어렵다. 3,40 레벨 정도 되면 한 레벨 올리기가 정말 어렵다. 이 때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찾는다. 아니면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새 아이디를 만들거나.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레벨이 오를수록 게임은 어려워진다는 것. 인식해라.
게임의 법칙 넷. 게임을 하다보면 캐릭터가 반드시 죽는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너무 어려운 상대를 찾아가서 무리하게 득점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죽지 않으려면 적절한 상대를 찾아 꾸준히 득점하는 것이 요령이다.
게임의 법칙 다섯. 누구나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예외는 없다. 게임의 법칙 두 번째에서 게임은 공평하지 않다고 했지만, 게임은 마지막까지 참고 진행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다.

자, 이 쯤 해 두자. 내가 첫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언지 눈치 챘을테니깐.
1. 너희는 모두 비슷한 머릴 갖고 태어났다.
2. 그러나 너희의 가정 환경과 지적 조건, 사회 환경 등은 공평하지 않아서 지금 많은 차이를 보인다.
3. 학년이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는 어렵게 마련이다. 그렇다는 걸 알면 스트레스가 적다.
4.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헤매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5. 꾸준히 노력한 자에게 행복한 결과가 온다.
고3 생활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1,2학년 때 재미있게 생활했듯이 3학년 생활도 충분히 즐겁다. 차분히 준비해 나간다면. '너'의 옆엔 다른 서른 아홉의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으니깐.

다음엔, '개구리 법칙'을 이야기하고 몇 가지 잔소릴 하자.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죽을 힘을 다해 <팔짝> 뛰쳐나온다. 그러나,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따뜻함을 즐기다 그만 익어서 뒤집어지고 만다. <나쁜 습관>은 이와 같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희-떡-' 뒤집어지게 만들고 만다는 거다. 나쁜 습관은 깜짝 놀라서, 과감히 '확' 버리자. 도둑들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집중>하고,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잠을 설쳐대는데, 우리처럼 가치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몹쓸 일이다.

잔소리 몇 가지.
첫째, 재수하지 말고 올해 대학 가려면, 남은 8개월 정말 열심히 해라.
둘째,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라. 아침에 정해진 시각까지 입실하고, 영어듣기 시간에 절대 딴 짓 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졸거나 건방지게 다른 과목 공부하지 말고, 자율학습 충실히 하고, 열 시에 귀가해라. 학원에, 독서실에 목숨거는 녀석 치고 좋은 대학 간 놈 없다.
셋째, 자신감을 가져라.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미래는 밝다는 생각을 갖기 바란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오늘을 망치게 되고, 미래를 그르치는 길로 간다.
넷째, 나는 '오늘'밖에 살 수 없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말 것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과거와 미래는 후회하고 걱정해도 너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열심히 산 자만이 소득이 있다.
다섯째, 상담은 수능 치고 나서 해라. 친구에게 상담 많이 하는 사람은 그것이 다 공부하기 싫은 '핑계'임을 깨달아라. 정말 상담할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오너라. 기름이 떨어질 때 들르는 주유소라고 생각하고 부담없이 찾아오기 바란다.
여섯째, '자신의 꿈'을 사랑하자. 지금의 내 성적과 가정 환경과 경제적 형편을 모두 고려하다보면 보석같은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고, 지금의 내 성적이 충분히 좋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넉넉하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그걸 하거라. 꿈을 갖는다는 건, 바로 이거다.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 이 종이 버리지 마라.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한 장씩 나눠주는 잔소리를 쓰지만 달게 받아들이는 예쁜이들이 되면 고맙겠다.

정말 좋은 학급을 맡아서 고마웠다고 졸업식장에서 인사하고 싶구나.
너희를 만난 첫 날에 새 담임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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