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적 화자(流行歌的 話者)]와 시대 흐름
   - 노래 가사를 통한 세상 보기

올림픽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여성 궁사들의 저력이 돋보인다.
결승전은 볼수록 재미있는 장면들인데, 그 원인을 혹자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집중력의 승리라고도 혹자는 한국 사회 아줌마의 뚝심의 발현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대단한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전엔 기다림의 미학, 순종과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이라 표현해 왔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아직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유행가의 가사를 통하여 세상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시에서 [시적 화자]는 매우 중요하다. 시는 [나(서정적 자아)의 독백] 형태로 이루어지므로 시적 화자의 처지를 고려함은 시를 이해하는 핵심인 것이다.
최근 발표되는 노래들의 화자를 편의상 [유행가적 화자]라 부르고, 그 특징과 남성, 여성 화자의 가사 내용을 몇 가지 대비해 그 특질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유행가적 화자]가 [시적 화자]와 다른 점을 대조해 보면, [시적 화자]의 언어에 비해 훨씬 직설적이란 것이다.
이런 노래가 있다.
{I just wanna be loved, someone like you, Driving me crazy.}
난 너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날 미치게 만들만큼. 대략 이런 뜻인데, 이 [유행가적 화자]의 어법은 얼마나 직설적인가. 김소월이 '산유화'에서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라고 하면서 나의 고독과 소외감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데 비한다면, [유행가적 화자]는 훨씬 직설적 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너의 집앞에 오고 만거야}
사랑은 행복하고 가슴뛰게 하는 호르몬도 내보내지만, 가슴 찢어지는 이별도 경험하게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만나면 헤어지기가 정해져 있다고. 이별의 아픔을,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기억하려 했던 지난 노래들에 비해 이 노래의 제목은 사뭇 충격적이다. 이별의 슬픔을 <사랑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숨가쁜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감을 타고 흐르는 {그대여, 왜 망설이나요∼}(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한 번 들어보세요.)라는 노래에서 한(恨)의 정서, 기다림의 정서가 얼마나 직설적으로 바뀌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또 하나, 요즘 노래들에서 두드러진 점은 여성 화자의 강세이다.
이정현의 3음보격 가사를 들어보라.
{ 이세상에 많고많은 여잘대신해/ 한마디만 하고싶어 새겨들어봐./
사랑이란 이름으로 장난치지마/ 너 역시 사랑땜에 울수도 있어/ (와우)}
마지막의 비명소리는 여태까지 음악에서 듣지 못한 섬찟한 경고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도 있다.
{너 나를 쉽게 봤어, 그렇지 않니?} 상당히 도전적인 말투이다.
{끝낸다면 내가 끝내, 기억해.}
여성이 수동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유행가적 화자]로 우뚝 서는 순간이다.
이런 노래도 있다.
{내가 먼저 이런 얘길 한다면/ 언제나 남자들은 부담스러워하지.
너 역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넌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이런 반면 남성들의 노래에서는 한결같은 수동성, 피동성이 감지된다.
god의 노래에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라는 게 있다. 뭘 기억할까?
{떠난 게 후회될 땐, 언제라도 내품으로 돌아와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거다.
{다시 내게 올 수 없겠니, 너 없는 세상 어디에서도 견딜 수 없는 날 위해.}
D.O.C의 노래에서 그렇게 용감하고 씩씩하게 남성적인 어조로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역동적으로 'bounce with me, bounce with me' 하고 외치지만 노래의 내용은
{달려가겠어 훨훨날아 가겠어. 널 안아 주겠어 내 모든 걸 주겠어. I want you. I need you. I'll run to you}란 것이다. 네가 부르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한(恨?)이 절절하지 않은가.
내용이 좀 어색하면 영어로 잘 알아듣지 못하게, {낯설게 할} 뿐이다.
컨츄리 꼬꼬에 가면 남성적 왜소함의 극치를 만난다.
{오 가니, 오 가니, 오 가니, 왜 가이∼(여기도 들어봐야 안다.)}
지난 시대는 남성성(男性性)의 시대였다. 전쟁, 힘, 돈…. 오로지 남을 누르기.
그러나 이제 여성성(女性性)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포용성, 평화, 환경, 그리고 통일. 함께 살기.

물론 몇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여기서 벗어나는 예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써 본 이유는, {뭐든지 좀 깊이 생각하자}는 것이다. 노래를 들어도 생각하며 듣고, 책을 읽어도 생각하면서 읽자는 의도 외의 어떤 불순함도 없다.
세상은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삶이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라야 [나의 인생]이 되지 않을까. 그러자면 내 방식의 세상 읽기가 필요한 것이다.
너무 교과서밖에 모르는 범생이(부정적 의미의)로 살면서 닫힌 사고, 갇힌 사고를 해서는 안되고, 세상을 향해 마음과 눈을 열어야 됨을 역설하는 노래로 끝을 낸다.
{간듯했던 네게 수퍼초울트라 펀치.
반듯했던 네게 수퍼초울트라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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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에 아이들에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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