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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터키의 정치 역시 어지럽기 짝이 없는 모양이었다.
필화 사건에 얽혀 '유배형'을 받은 아지즈 네신.
그는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이 작은 책에 적고 있는데,
그가 뛰어난 작가인 이유는 그 고난의 시절에서 결코 비통한 슬픔이 우러나지 않고,
가벼운 우스개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고 있는 점에 있다.
H2O도 모르고 HOH도 몰라서 호흐란 별명의 사관생도 시절의 친구를 어려운 시절에 만났으나, 그는 아는 체도 않는다.
나중에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다시 만난 그가 부정부패에 불평을 털어놓을 때,
아지즈 네신은 묻는다. "댁은 뉘시오?"
유배온 그에게 "내가 책을 많이 안 읽은 게 다행이야. 안 그랬다면 나도 화를 입었을 거야."하고 자위하는 경찰도 한심한 시절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에게 바위처럼 단단한 저항 정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며
어쩌면 부당한 처분일지도 모른다.(53)
어려운 시대를 겪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인간에 대하 욕심을 줄이게 되는 모양이다.
정해진 시각이면 국가가 연주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한국 상황과 비슷해서 어쩌면 독재자들이 하는 짓은 모두 비슷한지...
"당시 터키 국민들은 모두 극심한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남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만 빠져나가려고 했다."(96)
너무도 춥고 배고픈 시절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변에서는 유배자의 몇 푼을 울궈먹으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치킨을 나눠먹지 않으려고 이웃 청년을 심부름 시키는 대목처럼 웃기는 이야기들 속에 담긴 시대는 참으로 쓰라리다.
어떤 생각이 국가 이익에 어긋나거나
국가 이익에 들어맞는다는 것은,
그 생각이 발표된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당신들은 미국의 원조가 터키에 이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조라는 핑계로 우리 나라를 착취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생각이 맞는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아직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이 확연히 밝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형을 선고받는 것은 부당하다.(218)
이렇게 독재정권과 말도 안되는 투쟁을 벌였으나, 결과는 당연히 독재자의 승리다.
당시에 그가 쓴 팸플릿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단다.
지금의 한국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시 그는 교도소와 유배지로 갔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 문학을 읽는 일은 유쾌한 경험이지만,
정말 형제처럼 꼭 닮은 정치 지형도를 가진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참 씁쓸한 경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