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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평점 :
초등학교 졸업식 날,
한눈 팔지 말고 하나의 길을 가다 보면 어느 날 자신이 바라던 곳에 이르게 되는 법(17)이라는 선생님의 마지막 훈화를 들었음을 아직도 기억하는 그는 행복하다.
삶은 늘 미완성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진학을 하고,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노인이 되고, 죽음을 맞곤 한다.
그런데, 하나의 길을 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자신이 바라던 곳에 이르게 됨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도 지혜롭고,
그걸 평생 가슴에 담아둔 지은이도 훌륭하다.
이 책은 윤대녕이 어떤 잡지에 실었음직한 글들이 토막토막 모인 것이다.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은 없지만,
윤대녕이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지금'에 놓여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들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면,
입춘에 만나기 좋은 사람, 초복에 만나서 한잔 합시다. 이런 시으로 만남을 가지게 된다는 그는,
어찌 보면 즉흥적이지만, 그런 것이 또 사람 사는 운치가 아닐까 한다.
그는 참 운치있는 사람이다.
김혜자의 신발끄는 소리를 들으면서,
사소한 몸짓에서부터 깊은 맛이 우러났으면... 그런 삶을 살면 좋겠다는 세밀한 마음을 내는 사람.
어찌 보면 참 짠한 사람이지만,
뭐, 사는 일은 스스로가 짠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 짠한 시간들을 무연히 바라보는 일임을 인정하면,
비록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도,
순간에 몰입해서 긴 시간 이상의 감동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연의 회복은 타다 남은 것들을 가지고 조각조각 이어 다시 만드는 것'이라는
미당과의 인연에서 얻은 구절도
어찌 보면 짠한 삶에 몰입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조각보가 아닌가 한다.
퀼트라는 예술이 있더라.
쓰다 남은 것들을 가지고 조각조각 이어 다시 만드는, 인연의 회복과도 같은 작업.
요즘엔 퀼트를 아예 이쁜 천들을 조각내서 이어 붙이는 사치재가 되어버린 느낌도 강한데,
마르고 남은 자투리를 활용한 퀼트에서 삶의 지혜가 우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타다 남은 조각>이 인연이 되는 것이지,
<일부러 조각낸 자투리>로는 인위적으로 되기 힘든 것이 인연이기도 하다.
박완서의 이야기에서, '자연이 한 일은 모두 옳았다.'는 표현을 찾는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건방지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연에게, 스스로 그러한 한 세계를 이룬 시간 앞에서,
건방지게 옳고 그름을 들이밀다니.
선악과를 따먹고 아직도 인간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언 아닌가 하고...
반면, 중국 고대 미학서 ‘화화미학’이란 책이 있다는데,
거기서 '천지는 크게 아름다우나 말하지 않는다.'라고 적은 구절은 한 시절을 얻은 문장임이 느껴졌다.
천지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주체는 천지일 수도 있고, 화자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천지고, 자연이다.
자연이 일으킨 지진, 해일 등의 일에는 그저 '스스로 그러했을 뿐'이라고 여겨야지.
자연이 잘 했고 잘못 했음을 붙이면 안되지 않을까?
'화이트 아웃'이란말이 있단다.
눈의 빛 때문에 방향 감각을 상실해버리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는데,
방향 감각의 상실은 곧, 판단력을 잃게 됨이고,
곧 선악의 판단을 내려 놓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안도감, 평화로운 느낌, 상실해버린 느낌의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긴데,
고은의 <눈길>에서 얻은 <어둠>의 상태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이 재미있다.
열 살의 봄, 스물의 여름, 서른의 가을, 마흔의 겨울을 그린 책이라는데,
어쩌면 김기덕이 이 책을 읽고 '봄여름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중천에 떠있는 어스름 달, 동녘 바람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거지 법사이다.
겨울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잘 갈아 긴 겨울 달. 얼음과 가루눈에 갇힌 산위의 호수, 그리고 거지 법사다.
어쩌면 <정중동>
멈춰선 거기, 그 순간에서 세상의 움직임을
인간의 마음, 제 마음이 움직임을 주시하는 일.
이것이 도를 닦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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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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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종군 기자, 로버트 카파가 남긴 말이다.
이 구절은 숱하게 만났더랬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만난 이 구절은
당신의 지금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삶의 매 순간에 충분히 다가서 집중하여 주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로 읽혔다.
이 책을 '마음 공부'에 넣어도 될 법하다.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는 모든 책이 마음 공부가 될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