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두어 편 읽어 보자. 

수녀...
수도자의 길에도 몇 종류가 있지만,
가톨릭에서 여성은 신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야.
이름이야 신부든 목사든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이 땅에 뿌리신 선한 마음의 씨앗을 싹틔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곳이 곳 수도원이겠지. 

우리와 가까운 광안리에서 매일을 하느님께 바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시를 써오신 수녀님의 시를 읽어 보자.
아빠가 고딩때 좋아하던 시야. 살아 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제목부터 딱 보면, 긍정적이지.
살아 있는 날은... 엉망으로 살자... 이런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엔 향기롭게 맑고 투명하게
정말 인간답게 살자.  

사랑하며 살고, 나쁜 짓 하는 사람 꾸짖으며 살자는 이야기가 등장하겠지.
물론 수녀님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겸손까지 가미해서 말이야. 

마른 향내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화자는 경건하고 반성적인 삶을 떠올리게 된단다.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이게 화자가 추구하는 인간상이야.
이 시에서 당신은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그분.
운명이랄까. 하느님이랄까.
암튼 우리 삶을 건방지게 살지 말고,
겸손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살자는 태도가 아주 역력하단다. 

오늘이 4.19 기념일이야.
이승만의 독재에 저항해 싸우던 51년 전의 이야기.
삶은 늘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소유하는 것과 행복하게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 

꼿꼿하게 살겠다는 다짐.
한번쯤 깊이 생각하며 읽어볼 만한 시란다.
다음엔 기~인 산문시를 한편 마음을 비우고 읽어 보렴.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대며

                                         이해인

1

하늘은 구름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나는 세월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날엔 항상 하늘이 열려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2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3

아아 하늘, 하늘에다 나를 맡기고 싶다. 구름처럼 안기고 싶다. 서러울 때는 하늘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순하게 흑흑 느껴 울고 싶다.

4

하늘에 노을이 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온통 피로 물들이듯 타오르는 노을. 나의 아픈 그리움도 일제히 일어서서 가슴 속에 노을로 타고 있다.

5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다. 타다가 타다가 검붉은 재로 남은 나의 그리움이 숨어서 숨어서 노을로 지고 있다.

6

‘하늘’이란 말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하늘빛 향기. 하늘의 향기에 나는 늘 취하고 싶어 ‘하늘’, ‘하늘’ 하고 수없이 뇌어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또 하늘을 생각했다.

7

하늘을 생각하다 잠이 들면 나는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 연두색 부리로 꿈을 쪼으며 하늘을 집으로 삼은 따뜻하고 즐거운 새.

8

하늘은 환희의 바다. 날마다 구름으로 닻을 올리고 당신과 함께 내가 떠나는 무한의 바다. 하늘은 이별의 강. 울어도 젖지 않고, 흐르지 않는 늘 푸른, 말이 없는 강.

9

하늘은 속일 수 없는 당신과 나의 거울. 당신이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나의 얼굴. 내가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당신 얼굴. 하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도 흔들림이 없다. 깨어지지 않는다. 자주 들여다보기가 갈수록 두려워지는 너무 크고 투명한 나의 거울.

10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11

하늘이 내려 준 하늘의 진리―

하늘은 단순한 자에게 열린다는 것.

하늘은 날마다 노래를 들려 준다. 티없는 목소리로 그가 부르는 노래. 나 같은 음치도 따라할 수 있는 맑고 푸른 노래. 온몸으로 그가 노래를 하면 나는 그의 노래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다.

12

오늘도 하늘을 안고 잠을 잔다. 내일도 하늘을 안고 깨어나리라. 나의 모든 것, 유일한 기쁨인 사랑. 사랑엔 말이 소용없음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살아 있는 동안은 오직 사랑하는 일뿐임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13

오늘, 당신은 몹시 울고 있군요. 나의 모든 이를 위해서 통곡하고 있군요. 그래요, 실컷 쏟아 버리세요. 눈물 비를 쏟아 버리세요. 세차게, 아주 세차게.

당신이 울고 있는 날은 나도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마음으로 함께 울고 있어요.

14

하늘의 파도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오늘의 내 슬픔 위에 빛으로 떨어지는 당신의 푸른 소리. 당신의 파도 소리.

15

나는 늘 구름이 되어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 “나의 집이 하늘인 것도 다 당신을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높이 떠도는 외로움도 어느 날 비 되어 당신께 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멀리 멀리 있어도 부르면 가까운 구름인 것을.”

16

꼭 말하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세상 것에 너무 마음 붙이지 말고 좀더 자유로워지라고. 날마다 자라는 욕심의 키를 아주 조금씩 줄여 가며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 배우라고―

구름처럼 쉬임 없이 흘러가며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구름이라면.

17

하늘은 희망이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댄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18

내가 소리로 말을 걸면 침묵으로 대답하는 당신. 당신을 부르도록 나를 지으셨으며 나의 첫 그리움인 동시에 마지막 그리움이기도 한 당신. 당신은 산보다도 더 높은 내 욕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세상에서 치닫는 나의 허영의 불길을 단숨에 꺼 버리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일체의 그리움도 당신이 거두어 가신 뒤에 나는 세상에서의 자유를 잃었으나 당신 안에서의 자유를 찾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에서 희망을 날리는 노란 새가 되었습니다.

19

하늘색 연필을 깎아 하늘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아침. 행복은 이런 것일까. 향나무 연필 한 자루에도 온 세상을 얻은 듯 가득 찬 마음. 내 하얀 종이 위에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빛 바다. 나에겐 왜 이리 하늘도 많고, 바다도 많을까. 어쩌다 기도도 할 수 없는 우울한 날은 색연필을 깎아서 그림을 그렸지. 그러노라면 봉숭아 꽃물 들여 주시던 엄마의 얼굴이 보이고, 소꿉친구의 웃음소리도 들렸지. 오늘도 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을 생각한다. 하늘을 기다린다. 하늘에 안겨 꿈을 꾸는 동시인(童詩人)이 된다. 끝없이 탄생하는 내 푸른 생명의 시를 하늘 위에 그대로 펼쳐두는 시인이 된다.

이 시는 풀이를 하지 않을래.
어떤 연이 가장 맘에 드니?  

아빠는 10번 연이 가장 맘에 든다. 맘이 뜨끔하지. ㅋ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고 거짓되지 않게,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며 산단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평가받게 되거든. 



화자는 연약하고, 그리움에 애태우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절대자 앞에선 왜소한,
그러면서도 절대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화자.
절대자는, 하느님은 화자가 아무리 두레박으로 우물물 긷듯 욕심을 내도
모든 것을 허락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구나.  

절대자 안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강을 얻는 이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모든 것을 그이 앞에다 내려놓고,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의 마음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운명이 내려온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말이야.
교회를 다닌다고 되는 건 아니고,
이런 건,
스스로를 믿으며 삶의 철학을 가다듬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
이런 시를 읽으면서, 겸허하게 삶을 돌아보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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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0 08:42   좋아요 0 | URL
어제도 읽었는데... 새벽 4시 40분에 깨어있는 인간이... 기자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