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랑 경주엘 갔다 왔어.
지난 주엔 하동 쌍계사 벚꽃길을 보고 왔는데,
경주 보문단지엔 벚꽃이 다 졌더라.
참 금세 지지.
사람도 금세 늙는단다.
믿을 수 없겠지만.
엄마랑 돌아오는 길에 카이스트 학생들 이야기가 나왔어.
영어로 수업한다는 이야기 끝에,
과연 영어로 수업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건지...
외국인 교수라면 당연히 영어로 수업을 하겠지만, 특히 카이스트야 특별한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말이지.
한국인 교수라도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건, 글쎄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겠지.
오늘은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은 시를 한 편 읽어 볼게.
나희덕의 '허공 한 줌'이야. 우선 한번 읽어 보렴.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나희덕, 허공 한 줌>
보통 액자 소설이란 말을 많이 쓴다. 소설의 서술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내는 경우를 말하지.
이 시에선 액자 시처럼 시가 전개돼.
처음엔 '이런 얘기를 들었어~'로 시작하지.
그리고 마지막엔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하고 말이야.
그러면서, 화자는 이 시 속의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비어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어.
화자는 손아귀에 아무 것도 없을 때조차도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던 모양이지.
텅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있곤 했다는 걸 보면 그렇게 보여.
화자는 버스 안에서,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자신이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려 욕심을 부렸구나.
어리석게도 집착에 눈이 멀었구나... 반성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려 노력했나봐.
'허공 한 줌' 까지도 자기 소유로 가지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그 허공 쯤이야 허공 속으로 돌려주려고 했던 거겠지.
허공 한 줌.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할 필요도 그다지 없는 것을 뜻하는 말이겠구나.
그렇지만, 화자는 그걸 소유하려고 했던 일을 돌아보고 헛됨을 느끼는 거야.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시 속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 보자.

이야기 속엔 우선 <엄마>가 등장해.
엄마가 깜박 잠든 사이 아기가 난간 위에 올라갔지.
난간 밖은 허공이었고,
잠깬 엄마는 깜놀했고, 이름도 못 부르고... 안타까이 아가를 바라보았단다.
엄마가 아기에게 다가가 끌어안았어.
그런데 엄마는 아기를 잡지 못했단다.
엄마는 그 뒤에 나오지만, 이미 죽은 엄마였기 때문이야.
엄마가 아기를 받으려 내민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 줌> 뿐이었지.
그래서 엄마는 그만 <숨이 멎어> 버렸단다.
이미 죽은 엄마지만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했단다.
다행히 아기는 난간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이쪽으로 떨어졌대.

아기가 놀라서 울자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대.
아까는 죽은 엄마 손에 아기가 받아지지 않았지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달린단다.
오로지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만 가득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결국 이 이야기는,
이미 죽은 엄마지만 아기의 안위를 걱정하려 차마 죽지 못하고 눈감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기가 안전하게 자라는 것을 믿게 되어서야 죽은 엄마는 마음놓고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겠지.
엄마는 죽어서도 아기만을 위해서 자신을 잊고 애쓰는데,
화자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을 위해서 애쓰고 살았던지를 되돌아 보았단다.
그러자 자그마한 손아귀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을, 많은 지위와 많은 재물과 많은 상들을 얻으려 애썼겠지.
허공 한 줌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을 말이야.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허공 한 줌까지도 놓아준다는 화자의 목소리가 쟁쟁 울린다.

국어교과서의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가 생각나는구나.
여친을 위해서 해도달도 다 따다주던 머저리가 여친의 꾐에 빠져 '니 애비의 심장'도 빼오란 말을 듣고 실행하지.
여친을 위해 달려가던 머저리는 그만 엎어져서 심장을 땅에 떨구었는데,
그 땅의 심장이 말했다잖아.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하고.
민우를 바라보며 기르던 엄마의 심장이 그런 심장이었을 거야.
하마나 엎어질까, 깨질까 조심조심 기르던 엄마 말이야.
민우가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도 언젠가는... 민우 곁을 떠나가겠지.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즐겁게 잘 지내자. ^^
엄마 아빠는 네 옆에 있지 않더라도, 저 시 속의 죽은 엄마처럼 민우의 행복을 위해 힘쓰고 있을 거야.
멀리 떨어져 살든,
오랜 뒤에 세상을 떠나서든,
우리 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저렇게 너를 안아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래.
그러면, 삶이 조금 팍팍해도,
폭신한 구석이 있음을 느끼게 될 거야.
폭신한 주말 밤이다.
일 주일간 고생 많았어.
푹 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