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벽 2 - 고독한 사람들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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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조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과 인간이 바로 만나서 ...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질 때, 감동같은 걸 느끼잖아요. 그런 감동에 묶이는 거죠. 

 
   

내가 대학다닐 때 알바 두 개 해서 버는 월급이 50만원이었다.
그러다 발령을 받고 초봉으로 받은 월급은 479,500원.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일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마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교사 아닌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수업 시간, 그 고단한 속에 있는 것이다.
뭐, 그 479,500원 안에 보너스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3,4만원을 몇달 뒤에 빼앗아갔지만 말이다. 

   
  교육연구를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단 한 푼의 수입과도 연결되지 않는 순수한 봉사 노동이었다.
일교조라는 집단은 이름도 없이 고생하고 봉사하는 교사들이 지탱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가장 무서운 힘이다.
전교조를 박살내지 못해 늘 아등바등 애쓰는 정권도 그 순수한 힘 앞에서 늘 힘겨워하는 것이다.
교사의 노동조합을 마치 정치 권력인 양 여기는 것은, 그 내부의 순수함을 몰라 그렇다.
그렇지만, 한국의 조합은 또한 정치적인 힘에서 전혀 벗어날 수도 없다.
그 역학관계는 늘 유동적인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교사들의 조합운동을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하며,
정부의 탄압하며,
어쩜 그렇게 1950년대의 일본과 1990년대의 한국이 꼭같아 보이는지,
아니, 일교조는 그나마 90% 가까운 가입률을 보였지만,
전교조는 정부의 탄압 성공에 힘입어 늘 2,30%를 오락가락하는 낮은 가입률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아사이 요시오라는 아이가 단돈 1,2엔을 아끼려고 비바람을 뚫고 찻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다.
아, 이런 날 교사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오자키 선생은 아사이의 가족 중 누구도 아사이를 돌봐줄 이가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교육탑에 아이를 묻는다.
의부와 살게 된 아이의 슬픔과 답답함. 

내가 담임하던 아이 중에 성이 전씨였다 임씨로 바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반에서 늘 임씨였으나, 누나는 전씨였다.
그 아이가 공고에 합격하였으나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통장에서 27만원을 찾아 등록을 하러 보냈는데...
그날 하필이면 방학식이어서 잊고 있었는데,
결국 그 아이는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 아이를 어느 회사에 취직까지 시켜주려 했건만, 녀석은 자장면 집 배달부로 들어갔단 후문을 들었다. 

교사로 살다보면, 이런 일은 숱하게 겪는다.
마음 아프고, 남의 일로 신경쓰다 잠을 설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지만, 언젠가, 녀석이 나의 27만원을 들고 찾아올 것을 믿는다.
그런 것이 교사로 사는 사람의 자존심이다. 

   
 

교사는 사회에서 고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요.
교사의 기쁨은 학생이 아니면 안 돼요. 

 
   

사와다 선생은 장애인 아이를 놀린 아이들을 체벌한 사건으로 곤란을 겪는다.
그렇지만, 교육의 이름으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것 사이엔 종잇장 하나 거리도 없지만, 
교육의 이름으로 바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은 평생을 사는 힘이 될 것이요,
교육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처벌의 결과는
어른이 되어서도 매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저항하는 어른들의 모습만을 남길 것이다. 

현대 한국의 교실에서 강압적 폭력적 체벌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체벌에 대한 저항이 그토록 강한 것은,
지난 시절,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절에 넘쳐났던 그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나는 읽는다. 

교실에서 아이들 손바닥을 때리고, 종아리를 때리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방법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한두 명 손바닥을 맞는 걸 보면서 '허생원'이 파는 것은 '드팀전'도 아니고 '메밀꽃'도 아닌 '옷감'임을 알게 된다면,
한두 명의 손바닥이 잠시 발개지는 것이 과연 죄악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들은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같은 노동자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일반 공장노동자와 교사의 구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단순 노동자가 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공장 노동자는 파업으로 몇 달 씩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교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학생들은 살아 있다.
교육은 쉴 틈이 없다. 

 
   

교원노조 활동을 하면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이런 점이다.
쉴 틈 없이 교육활동을 하면서 인습과 고집을 이겨나가는 일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시작한 학교에 비하면,
교장의 돈과 관련한 비리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고,
학부모회에 의존하는 구조도 거의 사라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 노동 강도가 지나치게 강화된 면을 막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잘못이다.
그러나, 어쩌랴.
노동운동은 언제나 문제점을 대증처방으로 막을 수밖에 없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역사는 늘 선구자적 교사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파면당하고 그들이 구제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하여 겨우 발전이 이뤄지는 것을 보아온 나로서는 그 전철을 밟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여김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데... 

오십 년 전의 소설을 읽으면서,
현재의 문제로 여기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교육처럼 관습적인 활동 속에서는,
수백 년 전의 교사가 느꼈던 갈등이 지금 반복된대고,
나는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읽으며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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