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발전하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던 주제였단다.
역사 속에서 경제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역사가 풍족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올바른 배분의 역사가 있었던 적은 인류 역사상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1인당 국민 소득이 20,000달러가 되니 마니 하는 나라지만,
1인당 2만 달러면, 한국 돈으로 2천만원 이상 되고,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8천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소린데,
글쎄, 부가 편중되어서 그렇게 버는 가족이 그닥 많을 것 같지는 않구나. 

오늘은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의 노래를 한번 보자.
1988년에 올림픽이 열리고, 그 전후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임금인상이 상당히 많이 되었어.
그렇지만, 사장들이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넘겨주기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
더군다나, 정경유착이라고,
정치인들은 경제인들과 짝짜꿍이 맞아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운동을 경찰의 힘을 빌려서 막곤 했단다. 

그러니 아직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 많이 뒤떨어진 편에 속한다고 봐야겠지.
앞으로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많아지고,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사는 시대가 점점 오고 있다고 봐야해.
그런 것이 세계화의 원리이자 결과물이지.
FTA의 결과로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부가 편중되는 것이 심화되는 일은 어쩜 당연한 거란다.
국가 전체의 이익이 많아진다고 해도, 부가 편중되는 것이 심화되면,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결과를 낳게되 되겠지. 

오늘 소개할 시들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시들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반복된단다.
이런 슬픈 노동의 노래들을 다시 부를 시대가 올는지 모를 일이야.
우선 <노동 해방>의 앞자를 따서 이름을 '노해'라고 지은 '박노해'의 '손 무덤'을 읽어 보자.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박노해, 손 무덤>

이 시 속에는 <이야기>가 들어있어.
그런 시를 '서사적'인 시라고 했지? 

화자는 손목을 잃은 사람을 '정형'이라고 부르고 있어.
그런 걸로 보면, 같은 노동자인 처지라고 봐야겠지.
정형은 올해 어린이날은 어린이대공원에라도 가겠다는 꿈을 꾸는,
싸구려 은하수 담배를 피우던(빨던) 소박한 노동자였단다. 

지금은 공정이 많이 자동화 되었지만,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세한 공장들은 위험천만이란다.
프레스 기계로 냄비같은 것을 만드는 공장에선 손목 날아가는 일도 흔한 일이었대.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는데,
더러운 작업복 차림으론 사장님의 고급 승용차도 탈 수 없고,
짐차 트럭의 짐칸에 실려 병원으로 간대. 

화자는 기계 사이에 끼어있는 정형의 '손'을 장갑 속에서 꺼내고,
비닐봉지에 싸서 정형의 집으로 가.
봉천동은 가난한 사람들의 산동네였는데,
거기서 정형의 아내와 아들을 보면서 손을 전하지 못했대.

하릴없이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산업재해(산재) 관련 서적을 찾아보는데,
큰 서점에도, 산더미같은 책 중에도, 노동관련법은 찬밥이야.
변호사들도 '노동법'은 모른대.
판사들도 '노동법'은 모르면서 되는대로 판결을 내린다더구나. 

책을 찾으러 종로엘 간 화자는 마치 미국이라도 온 듯,
세련된 남녀들의 멋진 모습에,
작업화 신은 스스로를 '탈출한 죄수'처럼 이물감 느끼며 쫄아들었대. 

한 노동자는 오늘 손을 잃었는데,
세상에선 멀쩡하게 사우나, 술집, 백화점, 야구장에서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해.
노동자들이 일할 시간에 즐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자는 비속어를 막 내뱉지.
노랫말 속에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어... 아, 아, 대한민국, 아, 아, 우리 조국, 아, 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이런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있었는데,
어느 재벌 총수의 첩이 되어 무슨 백화점을 하나 얻었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웃기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데, ㅋㅋ
그건 할아버지의 첩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니 말이지.

화자는 자신이 <탈출한 죄수>같다가, 이번엔 <이티>같대.
그리고 다시 노동 현장으로 돌아와서 연장노동을 시작한대. 

아직 화자의 품 속에 있는 '손'은 식었는데,
그래서 그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담벼락 밑에 정성스레 묻어.
그 싹둑 잘린 노동자의 손을 보면서,
일 안하고 놀고 먹는 하얀 손들(백수),
그들에 대한 원한의 눈물을 흘리게 된대.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이 마지막 구절에서 화자는
노동자가 일한 만큼 대접받는 세상, 그 기쁜 세상이 될 때를 바라며,
손을 묻는다는구나. 

이런 사회 비판적이고 참여적인 시를 썼다고 해서,
박노해는 감옥살이를 하게 돼. 한 일도 별로 없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지.
뭐, 나중에 풀려나지만.
무슨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사노맹)'이란 단체를 만들었다는구나.
그렇지만, 그 단체가 한 일은 기껏 이런 시 몇 편 노동자에게 읽히고,
파업해야할 때 파업하는 것의 정당함을 이야기한 것 뿐이지.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이란다.
메이데이라고 하지.
미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운동 중에 많이 희생된 날을 기념하는 날인데,
한국에선 '노동절'이란 말을 엄청 싫어해.
자꾸 '근로자의 날이란 말을 쓰지.
'노동자'는 '사용자'와 반대입장에서 싸우는 의미가 강하거든.
'근로자'는 시키는 대로 온순하게 일하는 의미가 강하고.  

이런 단어 하나에서도 화자의 의도는 그대로 드러난단다. 

박노해는 1958년 개띠야.
58년 개띠란 말을 많이 쓴단다.
그 해에 태어난 사람도 많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이라,
너무 흔하고 귀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리를 일컫는 용어로 쓰여.
또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란 사람이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 입시도 없어지고,
그래서 공부를 안 했겠지? 58년 개띠들이?
그래서 열공해서 명문고 들어갔던 선배들이 무시하는 뜻으로 썼겠지. 58년 개띠. 이러고 말야.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섬유 · 금속 · 정비 노동자로 일했대.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고,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동시들은 바로 노동자 자신에 의한 시쓰기라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어.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간행하여 완전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그의 시 <노동의 새벽>을 한번 읽어 보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가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박노해, 노동의 새벽>

화자는 몇 살이지? 
3연에서 나오지. 29세.
그 젊은 나인데, 어투는 마치 49세쯤은 되어 보이는구나.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찬 소주나 마시는 노동자의 싸구려 인생. 

그러나 그 인생을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해.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에서 보이잖아.
그러나 그들에게 절망만 있는 건 아니야.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단다. 좀 억지 희망이긴 하지만,
그들은 <차가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 동지들이 있어. 

그러노라면, 노동자에게도 <햇새벽>이 밝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이지.
노동자들이 1988년 노동자 대투쟁때 내세웠던 이슈가 뭐였는지 알아?
'두발 자율화'였대.
머리도 제대로 기르지 못하던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삶이 잘 드러나 있지.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들의 마음을 드러낸 신경림의 <파장>도 한번 읽어 보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 파장>

'못난 놈들'에서 농민들의 동류의식이 잘 보인다.
'참외, 막걸리'같이 서민적인 음식을 나누면서,
'가뭄 걱정, 빚 걱정'을 이야기하지. 

그러면,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이촌향도라고 촌을 버리고 도시로 향하던 시대였잖아.
시골에선 먹고 살기도 힘들고,
도시 위주의 개발을 하니 죽을 맛이겠지. 

농무의 시인이잖아.
답답하고 울분이 터지던 농민의 춤사위. 

마지막에서 사든 것은 '고무신 한 켤레'임을 볼 때,
장터에 온 것은 꼭 물건 구입은 아닌 모양이지.
삶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 나온 거지.
<절뚝이는> 장터는 농촌 현실의 <파행(절뚝걸음)>을 보여주는 시어야.
술에 취해 비틀거리듯, 엉망으로 망가진 농촌 말이지.

이 시는 낮시간부터 파장 무렵까지 <시간 경과>에 따라 시상이 흐르고 있어.
이러던 시절에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썼지.
간절히 민주주의와 자유를 원하던 노래 말이야.
그 시의 원류가 된 폴 엘뤼아르의 시를 한편 읽어 보렴.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누더기가 된 하늘의 옷자락 위에
태양이 곰팡 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방앗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무미한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깨어난 오솔길 위에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 켜진 램프 위에
불 꺼진 램프 위에
모여 있는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내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 강아지 위에
그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의 흐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화합한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넘어선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엘뤼아르, 자유>

세상 만물의 자유를 갈구하는 의지의 목소리로 외치는 이 시는,
김지하 시인에게 같은 열망을 표현하는 시를 쓰게 했지.

22개의 연에서 모두 단 하나의 초점(포커스)를 위하여 달려오고 있어.
바로 그것은 간절하게 <자유>를 원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지. 

이 시는 엘뤼아르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면서 발표한 저항시래. 

시인은 시간적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지상의 미세한 사물에서 저 하늘에까지
모든 것에 자유를 쓰고 있지.  

그러한 `자유'라는 이름을 쓰는 행위가 무려 20연에 걸쳐 행해지고 있어.
게다가 모든 연의 마지막 행은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고 말야.
그러나 이러한 반복에도 불구하고 자유라는 이름을 쓰는 그 구체적 사물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어서
오히려 상승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단다.
시인이 모든 사물 위에 `자유'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은
곧 모든 사물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는 뜻이고,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기를 갈망하고,
아울러 자유라는 깃발을 들고 자유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야.

이 시의 원래 제목은 `단 하나의 생각'으로,
주제는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것이었다고 그래.
어찌 보면 `님'에 대한 절실한 사랑은 한용운 스님의 시와 비슷하단다.
인류의 공동 가치에 대한 절실한 애정과 일맥 상통하는 법이라,
자유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나,
애인에 대한 '단 하나의 생각'이나 한줄기로 통하기도 하지. 

유사한 시, 김지하를 읽어 보자.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2연의 <소리>들은 억압받던 현실을 감각적으로(청각) 잘 살리고 있지.
<푸르른 자유의 추억>도 자유 민주주의 실현 열망이 감각적으로(시각) 잘 나타난 표현이고 말이야.

2연의 <외로운> <눈부심>은 역설적 표현이지?
외로움, 괴로움, 답답함과
눈부심, 환함, 희망, 기대감은 상반되고 모순된 표현이니 말이지.
투쟁하는 이의 앞길은 <외로운 감옥의 길>이기도 하고 심하면 <죽음의 길>이기도 하지만,
그 길은 옳은 일을 행하는 <눈부신> 길이기도 하고, 희망을 추구하는 <삶>의 길이기도 하니 말이야. 

이런 저항시들로 인하여 김지하는 박정희의 하수인인 법원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게 돼.
전두환 때의 박노해보다 더 무섭던 시절이지.

민주화를 의인화시켜 표현한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많이 불리우곤 했단다.
아빠가 대학생이던 시절엔 지하 주점에 앉아 이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곤 했지. 

이런 <손무덤>이나 <노동의 새벽>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시들을 읽으면서,
불의와 부정에 맞서려는 의지를 가지던 사람들이,
1987년 드디어 6월 항쟁을 통해서 군사독재에 이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물론, 미국의 개입으로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긴 했지만,
상당히 민주화된 국가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지.  

 

 

1980년 광주에서 총과 탱크로 짓밟힌 국민이
7년만에 권력자를 무릎꿇게 한 일은 대단한 것이란다.
1953년 전쟁을 마친 국민이 7년만에 독재자 이승만을 하와이로 보낸 일도 대단한 일이었고. 

한국인은 7년만 열받으면 100도씨까지 끓어서 보그르르 넘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어. ^^ 

오늘은 민중의 노래, 저항시 몇 편을 읽었다.
역사는 오락가락 순서가 없는 것 같아.
좋은 일도 일어나고 나쁜 일도 함께 벌어지고 말이야.
과거의 역사를 아는 일은 그래서 힘들 때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란다.
거기서 미래에 희망을 가지는 힘도 생기는 것이고.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책도 읽고 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