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벽 1 - 거대한 슬픔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1980년대, 민중 운동의 한 획을 그은 교육운동이 활발하던 그 시기,
아직도 학교의 주역을 맡고 있는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밑줄 그어가며 읽던 소설, 인간의 벽.
나도 해직된 교사들을 생각하며 군생활을 보내던 시절에 이 소설을 읽으며 교실로 돌아오면 정말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밤들이 있었다. 

이번에 양철북에서 새로 인간의 벽1,2,3권으로 탄생한 신간을 읽다 보면,
20년도 더 전에 이 책을 읽던 가슴벅참과 슬픔으로 가득하여지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단 핑계만 가득하던 내 머릿속 어딘가엔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초반의 일본.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지독한 가난과 부정부패 덩어리의 정치 체제로 시작된 현대 일본의 교사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지독한 가난과 부정부패 덩어리의 모순된 정치로 시작된 현대 한국의 교사와 출발점이 같았다.
한국의 모든 학교 제도가 일본의 그것을 본딴 것이었고,
서양의 학교 제도가 동양으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학교를 본따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모자지간처럼 꼭 닮은 일본과 한국의 교육은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을 모질게 몰아치지만, 효율성은 제로인 국가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본보다 더욱 학교를 지겹게 생각하는 아이들로 가득한 한국. 

교사와 부모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본자리가 어디이며,
마치 담쟁이 덩굴처럼 손에 손을 잡고 넘어야 할 벽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뜨거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감동했다. 

이런 저런 일로 책을 자꾸 놓게 될 때마다 아쉬움에 노란 책갈피를 갈무려두던 일은,
23년째 하고 있는 나의 이 일이,
누군가는 간절히 합격하고 싶어 몇 년을 눈물을 삼키며 공부하는 그 일임을,
그리고 나의 사소한 한 가지 결정이, 몇십 가정에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되는 사업이 되기도 하는 것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 소설의 두 맥락은 교육과 교사운동이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점, 가정과 교실을 어떻게 연관짓고 구별지을 것인가,
학생은 과연 야단쳐야 하는 존재인가, 그저 감싸 안아주는 것만 필요한 존재인가... 이런 관점을 보여주는 부분과,
교육 운동의 문제점과 현황, 방향성을 밝히는 일이 왜 중요한지, 그것에 대한 견해 차이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그 견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할 것이며, 교사 운동의 관료화에 대한 경계는 또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지 하는 부분으로 나눠가며 읽어야 한다. 

5학년 부장인 세련된 교사는 학생을 잘 다스릴 줄 알고, 학부모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냉철하면서도 지적으로 일을 잘 처리한다. 그러나...
B반의 사와다 후미코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부부가 돈을 벌기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한 교사다.
아이들의 가난에 마음아파하면서, 자신도 해직의 위기에 서서 떨고 있다.
C 반의 사와다 선생은 작은 소리로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교사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 자상한 애정이 넘쳐난다. 아이들은 애정에 민감하다.
누군가 자신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주 기뻐한다....
한 마디뿐인 선생의 짦은 말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154) 

이런 사랑스런 구절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이 책을 조심조심 읽으면서, 놓칠 수 없는 구절들을 만나고 느끼는 일은 독서의 즐거움 중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반성의 시간을 운영하면서 와다 고스케가 영화 포스터의 키스 사진 등을 가방에 가득 넣고 다니는 것을 조용히 처리하는 시노다 후미코는 따뜻하면서 현명한 교사다. 그러나 가정의 어머니가 그 <성장을 일그러뜨린 바깥의 억압>임을 이 소설에서는 강조한다.  

그 어머니 와다 스미에는 PTA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자기 아이한테는 관심이 없다. 그 여자에게 PTA는 자신의 허영심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261)

아, 세상은 어느 곳이나 그렇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곳인지... 오랜만에 옛날옛적에 젖어들었던 감상을 오롯이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과 며칠동안은 연애하는 기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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