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즌 비나 되쇼셔.
������ 각시님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십시오.
주인공 금잔디는 임을 위해서 달이 되겠다고 했어.
근데 금잔디의 친구는 바보같은 금잔디를 보고 화를 낸단다.
"야, 이년아! 니가 지금 그넘을 위해서 기도하게 생겼냐?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지~.”
이렇게 말하는 거야.
금잔디는 임을 위해
거리가 있더라도 환하게 임을 밝혀주는 달이 되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 환하게 비치는 달빛은 잔디의 슬픔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
그러니 친구는 ‘궂은 비’나 되라고 이야기한 거야.
궂은 비는 일단 임의 옷을 적시더라도 임에게 가까이 갈 수 있잖아.
그리고 화자의 슬픔이나 눈물과도 관계가 있어 보이고 말이야.
잔디의 사랑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이런 대화체를 개발했다고 봐야겠지.
지난 시간에 배운 사미인곡은
부유한 화자가 스토커처럼 임을 따라다니겠다는 노래였다면,
오늘 배운 속미인곡은
기둥 뒤에서 지나가던 구준표가
우연히 금잔디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처럼 처리했단다.
곧, 사미인곡은 화자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독백체’를 썼고,
속미인곡은 화자의 대화를 통해 진심이 전달되는 ‘대화체’를 쓴 거지.
연속극이라면, 뭐, 어떤 드라마가 더 인기있을지, 추측이 되지?
게다가 사미인곡에선 부유한 여성의 언어로,
어려운 한자어나 중국의 고사성어, 한시 등이 많이 인용된 반면,
속미인곡에선 순수한 우리말이 소박한 여성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어서,
훨씬 솔직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특징이 있단다.
정철이 사미인곡(전미인곡)을 쓰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속미인곡(후미인곡)을 썼대.
자기가 봐도 스토킹은 좀 아니었다 생각된 모양이지.
가사는 시조(서정시)를 한정없이 늘인 형식이라고 했잖아.
4.4조의 노래고 말이야. 4음보가 되겠지. 시조도 그러니깐.
근데, 시조에서 출발한 형식이라서,
긴 가사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시조랑 같단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정철, 훈민가)
이 노래는 늙은이를 공경하자는 성리학적 윤리를 나타낸 시야.
윗사람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되지.
그래야 ‘왕조국가’인 조선이 안 흔들리지.
이 시조의 마지막 행(종장)은 글자 수가 <3,5,4,3>이잖아.
가사 몇 편의 마지막 행을 보자꾸나.
아모타/ 백년 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정극인, 상춘곡)
명월이/ 천산만락에/ 아니 비쵠/ 대 없다. (정철, 관동별곡)
님이야/ 날일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정철, 사미인곡)
각시님/ 달이야 카니와/ 구즌 비나/ 되소서. (정철, 속미인곡)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 규원가)
이렇게 가사의 마지막 구절을 ‘낙구, 떨어질 락 落, 글귀 구 句’라고 하는데,
낙구는 상당히 시조의 종장을 닮았어.
이렇게 시조의 종장을 닮은 낙구를 가진 가사를 <정격 가사>라고도 부른단다.
뭔가 맞추려 노력한 거겠지.
이 경우에도 낙구의 첫 글자 석 자는 고정불변의 세 글자란다.
자, 속미인곡의 대화 주체를 늘어 놓으면 이렇게 된단다.
갑녀(보조 화자) : 선녀님 아니세요? 어디가세요?
을녀(주 화자) : 나 임이랑 헤어졌어. 다 내 잘못이야.
갑녀 : 그리 생각 마세요.
을녀 : 임 걱정돼 죽겠어. 산에도 가보고, 강에도 가보고, 꿈에도 봤지만.
난 임을 비추는 달이 되고 싶어
갑녀 : 님 쫌 짱나는 듯, 달은 무슨 달, 궂은 비나 되시지.
어때, 아빠의 설명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학 수업 같지 않니?
고전도 어렵거나 멀기만 한 건 아니란다.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누구에게나 빈번하게 반복되어 일어나기 때문이야.
그 일이 희극으로 결말지어지기도 하고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힘들 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비극으로 일어난 거구나.”
그렇지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너무 자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이렇게.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희극으로 일어난 거네.”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했어.
나쁜 일도 전화위복이 되고, 좋은 일에도 호사다마인 법이지.
자,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란 노래 가사를 보면
어떤 순정이 나오는지 가사를 한번 음미해 보며 오늘의 ‘가장 쉬운 고전 수업’을 마치자.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내가 미웠지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돼 보였고
오랜 꿈들이 공허한 어린 날의 착각 같았지
울먹임을 참고 남몰래 네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희망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허약한 내 영혼에 힘을
날개를 달수 있다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