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라 몹시 피곤하구나.
민우도 마찬가지겠지?
아빠가 3학년을 여러 번 하다 보니까,
올해 3학년에도 친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부담스럽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는 체 하는 선생님이 많을수록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 바란다.
오늘은 인간들이 서로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노래를 몇 편 골라 볼게.
우선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을 읽어 보자.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鬱鬱蒼蒼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안도현, 간격>



한자로 나무가 모이면 ‘수풀 림 林’이 되고,
나무가 더 모이면 ‘빽빽한 삼 森’이 되지.
이 한자들이 모이면 ‘삼림 森林’이 되는 거란다.

그런데, 우리는 머~얼리서, 피상적으로 관찰할 때는 몰랐어.
그저 나무가 여럿 빽빽하게 모여 있으면 그게 숲이 되는 줄 알았지.
나무들은 숲에서 딱 달라 붙어있는 것인 줄 알았지.

그런데,
산불이 휩쓸고간 숲엘 들어가 보고서야,
나무와 나무 사이엔
넓든 좁든 간격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나무들이 꼭 붙어 있으면
서로 햇빛도 가리고
서로 영양분도 나눠먹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리감, 곧 간격이 필요했던 거지.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고,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 사이의 간격.
그 간격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대.

산불이 난 숲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관조’라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화자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관조란 자연을 보면서 ‘인간사’를 깨닫는 거잖아.
간격이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인데,
과연 인간간의 간격이란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공동체의 인간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나 애정은 맹목적으로 붙어있는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 것이겠지.
거 왜, 남녀 관계에서도 둘이 짝 달라붙었다가 평생 이별한 애들도 있었잖아.
견우와 직녀라고. ㅋ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맨날 짝 달라 붙어 사는 건 어찌 보면 ‘히키코모리’나 ‘오타쿠’같지 않니?
적당히 어른이 되면 떨어져 살아도 봐야겠지.
대학생이 되면 기숙사에서도 살아 보고,
결혼하면 부부가 둘이서 고생도 하며 살아 보고,
그러다 애기 낳으면 방학에 놀러도 오고, 그렇게 말이야.

다음엔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번쯤
겨울 들녘에 가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오세영, 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은 ‘그릇’에서 ‘인간은 죽는 존재’임을,
 ‘등산’에서 ‘인생은 조금씩 밀고 나가는 것’임을,
그리고 이 시 ‘겨울 들녘에 서서’에서 ‘위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각 연은 간단하게 이런 구조로 되어 있어.

~~로 아픈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봐라~
거기엔 ~~가 있다.
~~를 보면 알 수 있는.

이런 똑 같이 생긴 문장 구조.

문제에선 이런 것들을 ‘같은 통사 구조가 반복’된다고 한단다.
잘 알아 두렴. ‘같은 통사 구조의 반복’!

1연에선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보라고,
2연에선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거기 가 보라고 하고,
3연에선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에게 가 보라고 한다.
모두 마음 속에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겨울 들녘’은 ‘텅 비어 보이는 공간’이잖아.
괴롭고,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왜 ‘텅 빈 공간’엘 가라고 했을까?
거기서 무엇을 ‘보고 깨달으라고?’

1연에선 ‘빈 공간의 충만’을 배우래.
역설이지? 빈 공간이 가득차 있음을 배우라니.
비록 ‘텅 빈 들판’이지만,
그는 이미 아낌없이 주어버린 자의 자부심으로 거기 있대.
가을걷이(추수)가 끝난 들판에
낟알 몇 개만 남은 겨울 들녘.

그렇지만 잃어버린 곡식을 아쉬워하지 않는 겨울 들녘.
이런 걸 발견하고 나면,
네가 가진 괴로움, 슬픔, 아픔이 좀 치유될 거라는 말이야.



2연도 마찬가지지.
이별에 슬픈 사람.
땅에서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있대.
현실에서의 이별은 사랑의 끝으로 느껴지지만,
이별은 하늘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안식일 수도 있다는구나.

왜 그런 말 있거든.
이쁜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 옆에 두시려고 일찍 데려 간다는 말.
둠벙은 ‘웅덩이’ 같은 거야. 방언이지.
둠벙에 비친 별빛을 보노라면,
먼 하늘에 욕심없이 비치는 별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사랑하는 이의 안식을 배울 수 있다는구나.

3연에서 ‘그리움’은 ‘임과 함께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마음이잖아.
‘너를 지킴’은 ‘나를 지킴’이래.
‘네가 있으면 나는 없고, 내가 있으면 너는 없’는 관계가 아니라,
‘너도 지키고, 나도 지켜야 하는 관계’란다.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은
역시 역설적 표현이지.
‘홀로’ 있음을 통해서
‘함께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
안도현의 ‘간격’과도 상통하는 의미인지도 모르겠구나.
논둑의 허수아비를 보면,
허수아비는 혼자 쓸쓸히 서 있지만,
그는 외롭기보다는
가을 들녘에서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볏단을 수확하게 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마치 결혼식장에서 시집가는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가
아쉬움과 자랑스러움에 흘리는 눈물같은 쓸쓸함과도 유사할지 모르겠다.

역설적 진리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시.
그리고 사랑과 이별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관조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시.
이런 것이 오세영 시를 읽는 멋이란다.

다음엔 섬의 시인 정현종의 시를 읽어 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다도해가 생각나지 않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대.
그런 걸로 보면, 사람도 섬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런데, 화자는 그 섬에 가고 싶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섬에.

이 시는 극도로 짧은 시지?
사람들의 ‘사이’, 곧 ‘단절된 인간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 같다.
그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표현은 그 ‘단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겠지

그 단절감 사이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줄 수 있는,
의사 소통이 가능한 영역을 ‘섬’으로 표현했단다.
‘섬’에서는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현대인의 대인관계가 조금 무너지고,
비교적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하는 영역 같기도 해.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어부가 잡아 둔 그물 안에 물고기가 가득했대.
그 물고기들은 숨쉬기도 힘들어 헐떡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어찌 그 물고기들이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지 신기해 들여다 보니,
물고기 사이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비집고 다니더래.
미끄럽다고 미꾸라진데,
마치 인간관계의 윤활유처럼 매끄러운 역할로 물고기들을 살려주었다는구나.

인간의 삶에는 이렇게 ‘~과 ~의 사이’가 꼭 필요해.
그 사이엔 ‘섬’도 필요하고 ‘미꾸라지’도 필요하겠지.
민우와 아빠 사이가 그닥 멀지도 않지만,
이 강의도 하나의 ‘섬’이고 ‘미꾸라지’가 될 수 있겠구나.

오늘은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겨울 들녘>, 그리고
섬의 시인 정현종의 <섬>을 통해서,
현대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의 거리감과 간격, 친밀감에 대한
인간의 목마름에 대하여 좀 읽어봤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설명을 읽고 나면 시를 다시 한두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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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3-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글샘님의 타자속도가 궁금해집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듯.

글샘 2011-03-09 12:36   좋아요 0 | URL
손가락은 보여요. ㅋㅋ
군대에서 행정병한 덕으로 타자는 좀 칩니다.
물론 그때는 4벌식 타자기라고 들어나 보셨을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