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날이 차다.
오늘은 아빠도 바쁘고 하니 시 한 편만 읽고 자자~.
오규원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란 시다.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잔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오규원,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이 시에서 '죽음' 사람의 이름으로 쓰였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다의 어간 '살-'에 명사형 전성어미 '암'이 붙어 '사람'이 된 거지.
그러니깐 살아있지 않은 것은 '시체'거나 '미라'지 사람이 아닌 거란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모순되게,
이런 것을 <역설>이라고 했지?
<미스터 죽음>이 살아가는 하루를 상상하고 있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상징으로서 한 사람의 이름을 <Mr. Dead>로 쓴 거지.

이 시에 나오는 <죽음>이라는 사나이 혹은 그녀는
참 죽지 못해 사는 사람 같구나.
정말 재미 하나도 없고 무기력한 사람. 

버스를 타려다가 귀찮아서 택시를 타고,
자신은 할 일이 많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는 일보다 우선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대.
생각할 일도 많지만
우선 한잔 하고 취하면 내일 생각하기로 한다.
자신은 충신도 아니니 회사에 충성을 다할 필요 없다고 합리화 했다.
자신이 오늘 일하지 않고 내일로 미룬 것을... 

한 잔 하다가 내일 생각하려던 것도 작파하고 만다.
미스터 데드는 술이 조금 취해서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내일은 주말 여행을 꿈꾼다. 

속되게 '건강'이나 챙기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고?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어...
이러고 또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 시는 <이 시대의 삶>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주제로 쓴 시야.
그런데 <이 시대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니 역설법으로 봐야 한단다.
삶의 무기력함, 현대인의 자기합리화의 부조리함을
<미스터 죽음>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우화처럼 빗대서 이야기를 지어내 풍자하는 시>가 된 거란다. 

현대인은 늘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해야할 일을 미루면서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세상 탓이고, 그들의 탓이고, 너희들 탓이라고,
합리화하는 부조리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세상은 참 불합리하단다.
그런 것을 부조리라고 그래.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잘 살아야 하잖아?
올바로 산 사람이 잘 살아야 하잖아?
정의는 항상 승리해야 하잖아?
그게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고 조리있는 이야기지.
근데, 실상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니,
비합리적이고, 이치에 어긋나고, 부조리한 세상이라고 말한단다. 

이런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시가 되지 않지.
어긋나게,
역설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죽음 씨>라고 붙인 다음,
그 사람이 합리화하는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나열한단다. 

텔레비전과 신문의 의견을
마치 자기의 의견인 것처럼 내세우고 아는 체 하지.
이런 비주체적인 사람은 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야.
미스터 죽음.

오규원의 시집들 이름을 보면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희망 만들며 살기>,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하늘 아래의 생> 뭐, 이렇다.
수필집은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잠시만 머문다> 이런 제목이었대.  

작품집의 제목들만 훑어보더라도,
큰 것, 위대한 것, 유명하고 소문난 것, 남들이 알아주는 것보담은,
작고 남들이 안 알아주는 구석진 곳에 있고 좀 후져보이는 그런 것에 애착을 보인단다. 
사실은 그런 것들이 인간적이고 사람냄새 나는 거잖아.
오늘의 시도 인간은 그렇고 그런 존재잖냐?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좀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죽음 씨>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인생이란 부조리한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어쩌면, 인생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니,
네 인생이 보잘것 없고, 낮고, 작고, 초라해 보여 쪽팔려 보이더라도,
너무 자신감잃고 비실거릴 것 없어.
이 죽음 씨야!
세상 뭐 있어?
인간은 뭐, 다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존재고, 누구나 다 죽음씨라구!!!
그러니 비실거리는 네 인생을 비관하지만 말고,
세상을 향해 <높고 힘차게> 하이킥 한 판 날리는 건 어떻냐고!!!
이런 외침을 속에서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죽음 씨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멋지지 않니?
내가 너무 멋지게만 이야기했나? ㅋ
그렇지만 이런 모순 속의 진실,
역설법을 통해 삶의 숨은 속살을 읽는 것도 시의 재미란다.
내일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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