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이다.
오랜만에 열 시까지 자습을 하고 오려니 좀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이제 적응해야 하는 생활이니, 그러려니 하기 바란다.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뭐, 모두 좋을 수야 있겠냐마는,
거기도 적응 잘 하기 바란다.
오늘은 좀 쉬운 시를 몇 편 보자.
맨날 사회에 불평 많거나 문제점 제기하는 시들을 들이밀면 마음이 무겁겠지.
또는 인생에 쌓인 고뇌를 더듬노라면 아빠의 수업도 쉽지만은 않단다.
<왜 사냐건, 웃지요>로 유명한 시를 우선 보자.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화자 김상용(金尙鎔,1902~1930)은 스물 아홉에 죽은 아까운 시인이다.
화자의 시는 자신과 자연의 동일성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나와 자연의 어떠한 대립도 있을 수 없고,
나와 자연의 화해,자연의 품에 안긴 삶,
어떠한 인위적인 삶도 극복하면서 남으로 창을 내어 푸르고 고요한 안식처인
자연의 품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조명하고 달관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동경한다.

화자가 살아간 시대는 이 땅의 민중에게 가장 척박한 역사를 던져주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그는 햇볕 잘 드는 남으로 창을 내고,
웃으며 산단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사는 건 무의미 하잖아.
일제 강점기인데,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지않겠어? 넌 도대체 뭘 위해 사니?
이러고 물으면, 그저 웃겠대.
아빠는 저 웃음이 가슴아프게 이해가 간단다.
아빠가 대학다니던 시절엔 누구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에 참여하곤 했어.
아빠도 광주에서 학살을 일으킨 정권에 저항하는 집회엔 매번 참가했지.
그렇지만, 지식인의 길을 버리고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겠니? 이런 풍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것 역시 내 길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거든.
넌, 왜 그따위로 사니? 이렇게 묻는 사람은 암튼간에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잖아.
화내거나 짜증낸다고 이해해 주지도 않을 거잖아.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겠지. 딴 데 쳐다보고...
화자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나 부역자가 아니란다.
그저 자신의 나날을 평온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이야.
욕심도 없다. 구름이 꼬여도 갈 리가 없다.
그저 자연의 노래를 공짜로 들으며 살아갈 따름이래.
그런 사람더러,
너 일제 강점긴데 이따위로 살아서 되겠냐, 도대체 넌 뭔 생각으로 사냐?
이렇게 묻는다면, 글쎄. 아빠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구나.
세상은 반대와 투쟁으로 이뤄져 있어.
가진 자들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못 가진 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힘을 합치고 말이지.
그렇지만, 그 반대와 투쟁의 길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란다.
맨 앞에서 주먹쥐고 목숨걸고 나서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뒤에서 눈치보며 소리나 질러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어찌 보면 싸우지 않는 듯이, 세상 일에 무관한 듯이
한눈 감고 세상을 관망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란다.
한 편에서 다른 편을 무조건 욕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
다음의 <사슴>도 마찬가지야.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 사슴>
화자는 사슴을 관찰하고 있어.
사슴은 슬프고 점잖게 말이 없고, 좀 고상하지.
뜻이 높고 우아해 보이는 사람을 고상하다, 고고하다 이렇게 말하잖아.
물 속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낸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은?
나르시소소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인물.
이 시의 주제는 그런 <자기애> 또는 <나르시시즘>과 관련 깊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프단'것은 이상이 높단 이야기 일거야.
'슬픈 짐승'은 감정 이입으로 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독한 화자를 반영하고 있단다.
1연에선 사슴의 외면이, 2연에선 사슴의 내면이 표현되고 있어.
주제라면 <이상향에 대한 동경, 이상적 생명에의 향수> 같은 것이 되겠지.
이 시는 노천명을 문단에서 중요한 시인으로 확정시킨 유명한 시란다.
사슴과 고독의 시인, 노천명.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사슴처럼 고고하게 살다간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숙명적으로 결정지어진 여자로서의 슬픈 운명을 수용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상적 향수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슴'은 고고함과 귀족성을 상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에선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단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시인의 고독한 내면을 '사슴'을 통해 형상화 한 시가 되겠지.
다음엔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는 관조의 시 한 편 보고 마치자꾸나.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을 회복한다. <박성룡, 과목>
과목은 과일 나무고, 과물은 과일이다.
나는 '과일이 열린 것'을 보면 깜놀한다.(경악)
뿌리는 비옥하지 않은 땅(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시련(비바람) 속에 놓여있는 과목과 과물.
모든 것이 소멸하는 가을에,
과일은 홀로
황홀한 빛깔을 띠고, 황홀한 무게의 은총을 보여주는구나.
4연에서 수미상관으로 일단락이 된다.

마지막 연.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무기력하게 보내버린 부정적인 현실을 돌아보지만,
화자는 이 과목의 과물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있단다.
이렇게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경탄을 드러낸 시들은 참 많단다.
그렇지만 이 과목에서 보여주는 직접적인 경이와 경탄의 소리는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얻게 되지.
과목, 과물, 경악, 박질 같은 시어들은 보드라운 시어들이 아니지.
투박하고 생경한 한자어의 사용을 통해서 화자는 강인한 자신을 드러내고 있어.
'사태', '경악' 같은 용어도 독자에게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다.
시에서 늘상 쓰는 용어들이 아닌 말들이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지.
오늘 다룬 시들은,
시대의 핵심에서 조금은 어긋난 듯한 시들이다.
그렇지만,
삶의 핵심은 무엇인지,
<남으로 낸 창>을 통해서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사슴>을 관찰함으로써 자기애를 확인하는 삶을,
<과물>의 익어감을 보면서, 힘빠지는 시의 힘을 회복하는 시인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단다.
삶은 그런 것 같아.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누구나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똑같은 월급을 들고도 누구는 불평하고 누구는 감사할 줄 아는 것.
똑같은 성적표를 보고도 우는 아이도 있고 웃는 아이도 있는 것.
그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 줄 아는 지혜를 얻는 것. 그런 것 말이야.
열 시까지 자습이 힘들더라도 힘내서 하자.
누구나 다르지만, 또 남들 다 하는 걸 못하는 것처럼 힘빠지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