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8
황수대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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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고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책들을 읽던 내 뜨거운 젊은 날들이 생각나고,
자라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학이란 것들도 생각난다. 

이오덕 선생님의 비평은
비판적이면서도 날카롭지 않았고,
체계적이면서도 한편한편의 각편의 시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으셨다. 

황수대의 평론을 읽노라면,
오랫동안 '어린이 문학'을 노심초사 연구하신 이오덕 선생님을 좀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은 자칫 시인을 주눅들게 할 수 있고,
두루뭉술한 칭찬은 시인의 자존심을 치켜세우긴커녕 평론의 본령을 망각하는 일일 수도 있다. 

황수대의 평론을 평할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을 즐겨 읽던 내 눈에는 아직 그의 글이 꼭지가 덜 떨어진 과실처럼 보였다.
애정이 지속되다 보면, 선생님의 글처럼 농익어 떨어지는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으리라. 

78쪽과 90쪽의 서덕출의 글에 대한 비평에서 '7.5조의 정형시'란 말을 두 번이나 썼다.
'7.5조의 외형률'은 말이 되지만, 그런 걸 두고 <정형시>라고 할 순 없다.
<정형시>란 '한시'나 '하이쿠' 또는 영어의 '소네트' 같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평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못마땅하다. 

할머니가 옛날 사탕을 하나 주면서, 사탕 하나에 든 달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긴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맛의 길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되물었더니, 걸으면서 재 보면 운동장
열 바퀴도 넘는다고 했다 뛰면서 재면 스무 바퀴도 넘겠다고 했더니, 자동차를 타고
재면 서울에서 천안도 갈거라 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도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탕 하나 물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 할머니 (곽해룡, 맛의 거리) 

이런 시들은 재미도 있고 아이들을 생각하게도 하는 시다.
문제제기로 좋은 시들이다.  

좋은 시란, 좋은 동시란 어떤 것인가를,
지나치게 <환경 생태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차피 인간은 환경 속에서 파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심정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 모습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줘 좋은 시도 있다. 

환경 문제를 제기한다고 좋은 시도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가 얼마나 시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시인가... 이런 관점을 평론가가 정립해 나갈 필요성을 정면으로 돌파하였는가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들고 긁적이는 일은 '가죽신 신고 가려운 발 긁는' 격화소양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평론가라면 자신의 관점을 세우고,
그 관점에서 시인들의 시를 조물거려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오로지 생태주의를 논하는 것은, 남성보다 더 뻣뻣한 페미니스트를 보는 일처럼 재미없다.
친환경적인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말랑말랑하게 다가서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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