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는지
날씨가 몹시 변덕스럽다.
꽃이 피는 일을 시샘하여 추위가 온다는 의인법을 쓴
꽃샘추위는 말은 예쁘지만,
고 성깔은 꼬마 마녀가 부리는 성질머리같다. 

날이 며칠 추울 모양이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렴.
오늘은 얼마 전 기형도의 '안개'와 함께 다뤘던  '그날'의 시인 이성복 작품을 몇 편 살펴 보자.
우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대표작, '남해금산'을 읽어 보자.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해금산>

남해대교로 유명한 남해섬에 가면 비단 금 錦자를 쓰는 멋진 산이 있다.
바로 남해 금산이다. 
남해 금산은 바위가 멋지게 튀어나와 많은 전설을 담고 있는데,
이성계가 임금이 되도록 해달라고 빌었다는 전설도 있고,
특히 금산의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은 유명하다.

금산의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에서는 호남지방과 생활권을 같이 했던 남해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여수 돌산에 사는 한 총각이 남해에 고기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과수댁을 사모한 끝에 상사병에 걸려 죽을 처지에 있었다
이를 안 과수댁은 상사병을 고칠수 있다는 이 바위에서
총각과 만나 사랑을 나눈 뒤 백년해로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상사바위>는 잊지못해 상사병에 걸린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바위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전설을 떠올리면서 이성복의 남해금산을 읽어 보자. 

이 시는 전설 한 토막을 듣는 듯 하다.
한 여자가 바위 속에 있었고, 그 여자를 사랑한 나도 돌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랑은 순탄치 않아 그 여자 울면서 떠나갔다.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 주었고,
나 혼자 남은 남해 금산,
나는 바닷물 속에 잠긴 섬이 되었다는 이야기... 

남해섬 앞바다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다도해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남해금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노라면 이런저런 전설이 떠오르기도 하겠지. 

화자는 돌 속에 묻힌 한 여자를 사랑했대.
돌 속에 묻힌 여자란 건, 그 여자가 쉽사리 사랑해선 안될 존재라고 상상해 보자.
그러다 그 여자가 떠나가고, 나 혼자 남아 오른 남해 금산.
거기서는 <상사 바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들을 이어준다는 전설을 품고 서있어.
화자는 떠나간 그 여자를 해와 달이 잘 끌어 주었기를 빌었나봐.
이별했다고, "에잇, 고얀 년, 고만 가다가 확 자빠져서 다리라도 부러져라~"
이런 심술을 부린 건 아니고,
"해님, 달님, 그 여자 앞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빌어 주세요~" 이런 순정한 마음이겠지.
혼자 남은 화자는 하늘 가까운 남해 금산에 올라 푸른 바닷물을 바라보며
혼자서 잠잠히 침묵에 잠겨 시를 쓰겠지. 

이성복은 개인적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시인이란 평을 받고 있어.
먼저 이야기한 <그날>이 그런 시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이런 구절은 시대의 아픔을 드러낸 구절이었단다. 
다음엔 어머니의 사랑을 드러낸 시를 한 편 보자.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 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또 비가 오면>

이 시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
마치 <아버지의 사진>이 중의성을 띠듯.
이 사진은 아버지를 찍은 사진, 아버지가 찍으신 사진, 아버지가 사들인 사진, 아버지가 빌린 사진,
아버지가 소유한 사진, 아버지가 소지한 사진, 아버지가 훔쳐온 사진, 아버지가 주웠다 버린 사진... 등
무한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랑하는 어머니>도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 또는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등으로 볼 수 있지. 

그 어머니가 비에 젖고, 물에 잠기신대.
이 얘기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니?
평소엔 늘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 자식이 죽은 어미가 "강가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해서
그대로 말을 듣곤, 비가 오면 어미 무덤이 떠내려갈까 슬피 운다던 이야기. 

이 시에서 어머니는 무덤 속에 계신 것 같아.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슬픔이 되어 애상적 분위기를 심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어 운율을 형성하고 있지.

다음은 이성복의 <꽃 피는 시절>을 읽어 보자.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꽃피는 시절>

아빤 이 시를 첨 읽고, 이별하는 상황을 떠올렸어.

1연 : 당신은 멀리 있어요.
2연 : 자꾸 당신이 고개를 들어요.
3연 : 내 안의 당신은 나를 벗어나려 하지만
4연 : 내게서 당신이 떠나면 내 몸 다 찢어져요.
5연 : 온몸이 당신과의 이별을 아파해요.
6연 : 어떻게 당신을 보낼까요.
7연 : 당신을 어떻게 보낼까요...

뭐,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 같구나.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5연)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7연)

히야~ 민우는 사랑하다 이별하는 심정이 어떤 건지 겪어 봤니?
이렇게, 울다가 웃다가 토할 지경이 되고, 벌컥벌컥 물 마시고 길길이 날뛸 지경,
이별해 본 사람은 알 거야. 이렇게 육신이 아픈 지경을...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아, 얼마나 애절한 이별의 메시지인지~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을 보렴. 제목은 '꽃피는 시절~'이야.
꽃피는 시절에 이별을 한 걸까?
이 시를 다시 읽어보자. 



이제 나는 <나무>로 변신을 할 거야. 

나는 뻣뻣한 나무입니다.
내 안에서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려 움트고 있겠지요.
다시 1연 : 겨울에도 나는 꽃이 올 것을 알아요.
2연 : 봄이면 당신은 당연히 올 거예요.
3연 : 내 안에 너 있다~
4연 : 꽃이 피려면 내 몸으 갈라지는 고통을 겪어야 해요.
5연 : 희고 고운 꽃이 잎잎이 피어날 거예요.
6연 : 그러나, 어떻게 꽃잎을 떨굴까요? 미치겠네~
7연 : 내게 매달린 조그만 꽃잎과 어떻게 이별할까~

이런 노래야.
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것을.
나무에서 꽃이 솟아나고, 이별하는 것을,
남녀간의 이별의 상황과 유사한 점들을 추출해서,
<이별>이란 추상을 <낙화>란 구체로 비유한 것!

이런 것이 비유의 짜릿한 전율이 아닐까 해.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이별하는 사람처럼 시를 써 놓고는
제목을 <꽃 피는 시절>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시인은 늘 삶의 장면들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지를 가다듬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겠지.
삶의 어떤 면과 언어의 어떤 것을 연관지어서 표현하면 멋진 작품이 될지를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삶의 어떠한 단면을 발견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시를 읽으면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지.
삶은 혼자서 살 수 없으니,
늘 사회를 이야기하고, 사회는 늘 변하니깐,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런 거야.
자, 새학기다.
부디 건강하게 힘내서 잘 보내라~
힘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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