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눈감고 살 수도 있지만,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하던 고 전우익 할아버님의 책 제목처럼,
현실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지혜이기도 할 거다.

오늘은 독재 시대의 획일성을 읊은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를 한번 읽어 보자.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 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김명수, 하급반 교과서)

이 시는 참 쉽죠~~잉~~하던 박지선을 흉내내도 되겠다.
아이들이 글을 읽고 따라 읽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다.  

<읽기에도 좋아라>는 반어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화자의 귀에는 <쓸쓸한 책 읽기>로 들리는데 <좋아라>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좋은 시는 쉬운 속에서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정 양'의 '물 끓이기'를 읽어 보자.
민우도 라면이나 자장면 삶아 먹기를 즐기잖아.
집에서 매일 흔하게 접하는 물 끓이기라는 행동 속에서 화자는 대단한 것을 발견하고 있단다.
우선 읽어 보자.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 놈 되는 세상에
열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혈식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가
호랑이보다 구렁이보다
더 기가 막히고 열받게 한다던 다산 선생
오물 수거비 받으러오는 말단에게
신경질부리며 부끄럽던 김수영 시인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흙탕물 튀기고 간 택시 때문에
문을 쾅쾅 여닫는 아내 때문에
'솔'을 팔지 않는 담배가게 때문에
모기나 미친개나 호랑이 때문에 저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배고픈 한 밤중을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호랑이든 구렁이든 미친개든 말단이든
끝까지 끓어올라 당당하게
맘놓고 넘치고 싶은 물이 끓는다 (정양, 물 끓이기)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 놈 되는 세상.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와 울분을 토하는 일이 되겠지.
아빠도 뉴스를 안 본 것이 꽤나 오래 되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끓어오를 일이 너무 많아서 혈압이 높은지도 모르겠구나. 
소시민은 현실 속에서 화가 나는 일이 너무도 많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데,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화자는 자신보다 냄비 속 맹물이 나아 보이고 있다. ^^
국수 끓이는 맹물 속에서 자아 성찰을 하다니... 대단한 내공이지 않니? 

2연에서 다산 정약용의 <증문(모기를 증오함)>과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인용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 시기의 혼란을 비판한 다산 선생이나,
1960년대 독재 사회의 소시민적 자아를 비판한 김수영의 시를 떠올리면서,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더럽게 끓탕을 치고 있고,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이고,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고 느낀다. 

혈식을 일삼는 모기는 '현실의 작은 불편을 주는 대상'으로서 탐관오리가 될 거고,
호랑이, 구렁이는 부정, 불의의 모순의 원인이 되는 존재로서 거대한 권력의 횡포가 될 거다.
국가의 구조적 모순보다 사소한 수탈이 더 열받게 한다는 이야기다.

다산과 김수영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국가가 썩어 빠져서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지식인은 국가가 망해가는 모습을 바로잡는 요구를 해야 옳지만,
그런 큰 일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사소한 일에나 화를 내고 있다는 자기 반성인 것이지. 

그래서 3연에서 '사소한 일에 끓어넘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우랴~ 하는 것은,
거대한 부정적 횡포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심정이다.
국가가 농민의 재산을 착취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비아냥은,
조선 시대에도 '양반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고,
독재 시대에도 '부자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다.
이런 권력의 부정에 속 끓이는 일 없이,
그저 사소한 다툼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바람은 사실 희망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의 소망, 바람은 마지막 연에서 집중되고 있다.
배가 고파 제 배나 채우려는 소시민적 나약함은 잊어 버리고,
<끝까지 끓어올라 당당하게 맘놓고 넘치고 싶은> 것이 화자의 소망이다.
부정한 것과 싸우는 것의 정당함을 잊지 않겠다는 화자의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시는 자기 반성적이기도 하고, 현실 비판적이기도 하다.
물 끓이기를 통하여 <소시민적 행태에 대한 반성과 현실 비판>을 하는 것이 주제가 되겠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 옳은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가 되었다.
바른 소리를 하면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감옥엘 보냈다.
부정한 것에 대한 당당한 비판과 분노는 정당한 삶인데도,
부정적 현실은 그런 비판에 익숙하지 않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소시민적 나약함은 사회의 부정에 대해 묵인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단다.
각종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 그렇다.

작년에 G 20 (group of 20)이란 자본가들의 행사 포스터에
'쥐 20'(발음을 이용한 언어 유희)이란 풍자를 담은
그래피티를 그린 대학 강사를 구속하였다가 벌금까지 매긴 일이 있었단다.
공공 시설물에 낙서를 하는 것은 벌금을 매길 수 있는 일이지만, 구속까지 하는 것은 좀 웃긴 일이었지.

그러면, 위에서 나온 김에 정약용의 '증문'을 한번 읽어 보자.  

사나운 범 울밑에서 울부짖어도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었고
구렁이 꿈틀대며 처마 끝에 매달려도 드러누워 그 모양 볼 수 있지만
한 마리 모기 소리 귓가에 들릴 때는
간담이 서늘하고 기가 막혀서 오장이 죄어들고 끓어오르네.//
부리박아 피를 빨면 그로 족하지
어이하여 뼛속까지 독기 불어놓는고
베이불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는데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서 보골보골 부처님 고수머리 되고 마네.//
내 뺨을 때려 봐도 헛치기 일쑤이고
넓적다리 때려 봐도 모기 이미 달아난 뒤
힘든 싸움 공은 없고 잠만 못 들어
지루한 여름밤이 일 년보다 더 길구나.//
지극히 작은 몸에 그렇게도 천한 것이
어이하여 사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고
밤에만 다니는 건 도적을 배운 거고
혈식은 한다지만 성현이라 그렇겠나.//
지난 날 대유사서 교서할 적에 푸른 솔 하얀 학이 마당 앞에 벌여 있고
유월에도 파리 얼어 날지 못할 때 대자리 깔고 앉아 매미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내가 부른 모기이지 모기 허물 아니로다. (정약용, 증문(憎))

 이 시를 5부분으로 나눠 보았다.
5번째 부분에서 정약용이 <대유사서 교서>란 벼슬을 할 때는 파리 한 마리 얼씬도 못하더니,
지금은 귀양가서 권력을 놓치고 나니 모기(탐관오리)가 덤빈다는 이야기다. 
정약용은 귀양이란 힘든 상황에서도 온갖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특히, 그는 조선 후기 사회의 어지러운 '관리'들에게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니,
그리하여 <목민심서>라는 책도 지었던 것이다. 

다음엔 김수영의 시를 읽어 보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1연)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2연)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3연)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4연)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5연)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6연)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7연)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8연)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연에 <왕궁>, <왕궁의 음탕>을 욕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등장한다.
왕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바로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3연에서 <언론의 자유>나 <월남 파병>처럼 반대해야 할 사안에 정당하게 저항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화자는 그러지 못하고 만만하고 사소한 일에만 화를 낸다.

2연의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은 만만한 대상이고,
3연의 <야경꾼>은 만만한 대상이고,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7연의 <이발쟁이>도 욕을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4연에서 <나의 옹졸함>은 유구하고(오래되었고) 이제 나에겐 '정서'처럼 익숙해 졌다.
포로수용소 병원에서 간호사들과 거즈나 개고 있는 화자에게
옹졸하게 남자가 간호사들 옆에서 시시한 일이나 한다고 놀린 적이있는데, 그때부터 난 옹졸했다.

5연에서 자신은 여전히 옹졸하다고 말한다.
아주 자조적(스스로를 비웃음)이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어린애 녀석의 투정에도 진다>
화자는 스스로 너무도 자신감이 없기에 은행잎도 가시밭길처럼 여겨진다.  

6연에서 화자는 <절정>위에 있고 싶지만,
지식인이라면 뜨거운 화제에 대하여 <부글부글 끓고> 싶지만,
화자는 비켜서있고, 비겁하게 살고 있다. 

마지막 8연에서 스스로의 왜소함을, 부끄러운 나약함과 소시민성을 반성하고 있다.
바람보다 먼지보다 풀보다 자신은 작아 보이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 의식을 깨닫는 진지한 자기 반성>이 되겠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발견한 새로운 관점을 자랑하듯 써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화자는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드러냈다.
자조적인 어조로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이렇게 강렬하게 스스로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을 반성한 것도 되지만, 시대와 지식인에게 반성을 촉구한 것도 된다.
주제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 의식을 깨닫는 진지한 자기 반성> 정도가 되겠구나.  

화자는 <절정>위에 서는 삶을 지향하지만,
<절정>위에 선 삶은 언제나 가혹한 시련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오늘 읽은 시들 역시 시대를 아파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시들이다.
시를 읽고, 해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언어가 화자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유사한 경험을 빗대서 <비유법>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래서 글을 쓸 때,
유사한 것을 찾아 쓰는 <유추>하는 글쓰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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