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설날이다.
원래 음력설을 쇠던 것이 조선의 풍습이었겠지만,
을미사변 이후 개혁을 한답시고 양력만 쓰라고 억압을 하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러고 놀았다.
까치가 왜놈을 지칭하게 된 사연이야 정확하지 않지만 그런 사연이야 늘 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독재를 하면서 구습을 쓸어버린다고 해서 음력설을 폐지했다.
법적으로 휴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양력설(신정)은 쉬고, 음력설(구정)엔 출근을 하는 쇼가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음력설날 아침 일찍 차례를 올리고 출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는 '민속의 날'이란 희한한 이름으로 설날이 부활되었다.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는 아예 '설날'과 '추석'을 3일 연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추석 무렵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이 원래 공휴일이어서
대기업의 불평이 많아지자 국군의 날과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제외시켜 버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휴일 하나에도 역사적 굴곡이 담겨 있단다.
오늘은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이 잘 각인된 시를 몇 편 보자.
뭐, 지금이라고 넉넉하진 못한 살림들도 많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궁핍한 나라들 축에 들었으니 그런 상황을 그린 시들이 많다.
우선 박용래의 '시락죽(시래기죽)'을 읽어 보자.
바닥난 통파
움속의 降雪(강설)
꼭두새벽부터
降雪(강설)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木手巾(목수건) (박용래, 시락죽)
팥죽을 끓여 먹던 풍습이 있던 날, 동짓날. 양력 12월 22일.
통파(대파)가 바닥나고 만 저장고(움) 속에 눈이 내렸다.

꼭두 새벽부터 마당의 눈을 쓸고 시락죽(팥죽이 아닌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이나 끓여야 하는
후살이하는 여인(이 시에서는 박용래의 누이를 칭한다)의 고단한 삶을
목수건(무명으로 만든 수건)에 집약시켰다.
박용래는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는 평이 많다.
이 시는 짧고 간결한, 지극히 절제된 시어들의 나열 속에서 느껴지는
후처 사는 여동생의 가난함을 안쓰러이 지켜보는 오라비의 아픈 가슴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동짓날 / 시락죽이나 / 끓이며 / 휘젓고 있을... 후살이의 / 목수건.
그저 마음이 아프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마음은 분명히 두뇌에서 인식하는 것인데, 실제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다음엔 같은 시인의 '저녁눈'을 읽어 보자.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저녁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 이야기다.
눈발이 '붐빈다'고 했다.
눈송이가 바람에 설렁설렁 날리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휘날리는 풍경을 이렇게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
박용래의 <소묘법>이 잘 드러난 시다.
마치 동영상으로 마구간 호롱불에 붐비며 휘날리는 눈송이,
그래서 조랑말 발굽 아래 붐비는 눈송이가,
여물 써는 소리와 함께, 마당 가 빈터로 몰려 다니며 붐비는 모습이 비쳐지는 듯한 느낌이 잘 살아 있다.
뭔가 마음 속이 흐뭇한 풍경이다. 설날이라도 된 것일까?
요즘 시인 중에 함민복이란 시인이 있다.
그는 강화도 동막골(막다른 동네란 뜻)이란 곳에 산다.
시를 쓰기만 하여 먹고 사는 사람이라 가난하다.
그렇지만 그는 가난을 천직인 양 그저 그렇게 산다.
자기는 가난하다고 시를 쓰며 산다.
그렇지만, 돈 없어서 죽겠다는 소리 안 내고 산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그에게 시는 곧 '밥'이다.
그런데 시 한 편 써봤자 3만 원 밖에 안 준다.
하루에 시가 한 편씩 나오는 것도 아닌데...
참 보잘것 없는 액수다.
그런데도 화자는 그 '불행'을 '행복'으로 금세 바꿀 줄 아는 마법의 혜안을 가졌다.
쌀이 두 말(20되)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적은 돈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든든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시집 한 권을 쓰려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이십 년이 걸린다.
그런데 그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참 보잘것 없는 액수다.(요즘엔 칠천 원 정도 한다.)
그렇지만 삼천 원이면 국밥이 한 그릇인데 하고 생각해 보면,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반성해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 그런 사람이 달인이 아닐까?
가고 가도 계속 길 위에 놓인 사람.
계속 가고 있는 그런 사람.
시집 한 권 팔리면 삼백 원 남는다고 속이 상하다가도,
박리(낮은 이윤)여서 돈이 안 되니 기분 나쁘다가도,
그 돈이면 소금 한 됫박 살 수 있으니,
소금은 세상을 상하지 않게 하는 존재고, 또 자신의 속도 상하지 않게 해 준다는 이야기다.
부정적인 현실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운용'을 아는 지혜의 눈이 본 세상 이야기다.
세상은 <그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더럽다고 욕하면 항상 부정적으로 보인다.
불만투성이로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바꿔먹으면 세상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이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한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고,
세상에 오로지 '나의 마음'만이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세상이 객관적으로 여기 놓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주관과 객관 같이 복잡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인데도,
시인은 간단하게 말했다.
세상이 아무리 허름하게 자신을 홀대해도,
자신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반전의 어법을 지닌 시인이다.
그의 시 중에 <눈물은 왜 짠가>는 산문시다.
수필이나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있는 듯 한데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살아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양념장)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제목이 '눈물은 왜 짠가'이다.
그런데 시이기 때문에 눈물이 짠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게 된 경위를 죽 늘어놓고는,
가난을 탓하거나 세상을 탓하는 논설을 가져다 대지 않고서,
눈물은 왜 짠거야?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여 이모네 집에 모셔다 드리려고 가는 길에,
고기를 먹으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어머니가 고깃국을 사먹자고 갔던 데서
가난하지만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고 울부짖던 신경림의 이웃집 청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일본의 소설 <우동 한 그릇> 이야기처럼 주인 아저씨는 슬그머니 깍두기나 가져다 주는 인정을 베푸는데,
화자는 가난에 속이 상하고,
돈 없으면 인간적으로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에 속이 상하고,
돈 없어도 시 잘 쓸 수 있는 시인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에 금이 가서 속이 상한데,
그걸 드러내 놓고 표현할 수 없어 그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 한 마디에
자본이 자본을 낳고,
자본이 인간을 짓누르는 세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서정주는 <무등을 보며>에서 '가난은 남루(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화자가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고 살려고 해도,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고,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사회다.
함민복의 시는 그런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이 시는 박재삼의 '추억에서'의 '엄마 생각'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 시다.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물이 깔리는 해다진 억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삼, 추억에서)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화자는 어린 아이다.
열무 삼십 단이면 참 보잘 것 없는 상업이다.
밭에서 기른 열무를 삼십 단 팔려고 시장에 간 엄마는 해가 져도 안 오신다.

해가 시들었다는 것은
해가 지는 시각적인 표현을 시들시들한 감각(촉각)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표현 되시겠다.
(시각의 촉각화)
해가 지기 시작한 것도 오랜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안 오신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겼다.
차가운 밥은 뭔가 환영받지 못한다.
따끈한 밥, 고슬고슬한 밥의 풍족함에 비하자면
찬밥 신세는 왠지 서글프고 서럽다.
빨리 숙제를 하면 엄마를 기다릴 시간과 어두움이 두려워서 천천히 숙제를 한다.
요즘이야 투니버스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어린이의 친구들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예전에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집안엔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들리는 것처럼 환청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안 들린다.
여기서도 청각적 심상을 배추 잎이란 시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심상이 쓰였다.
(청각의 시각화)
공감각적 표현은 언어를 훨씬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心) 속에 생생한 상(像)을(심상, 이미지) 떠올리게 한다.
어린 마음은 어둡고 무서워 진다.
창에는 금이 갔는데... 가난한 집이다.
그리고 유리창 깨진 것을 갈려면 아빠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빠도 없는 것 같다.
이제 저녁인데 고요히 빗소리도 들린다.
화자는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며 운다.
'찬밥'은 '빈방'과 어울려 쓸쓸함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쓸쓸함의 심상을 더 강하게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는 시어가 직렬 연결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윗목'이다.
내 유년을 떠올리면 '찬밥'처럼 '빈방'에서 훌쩍이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마치 싸늘한 방의 '윗목'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시인의 어린 시절,
지금도 생각만 하면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가난과 쓸쓸함의 트라우마(무서운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가 떠오른다.
그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시어가 바로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인 것이다.
간결한 시어를 통하여 건조한 시 속의 어린이는 참 외롭고 쓸쓸하다.
기형도 시인의 시들은 이렇게 퍼석퍼석한 뻥튀기처럼 쉽게 바스라질 것 같은 촉감을 가지고 있다.
그 뻥튀기는 고소한 냄새나 바스락, 경쾌한 소리를 내는 뻥튀기가 아니다.
칙칙하고 퀴퀴한 냄새와 눅눅함으로 무장한,
가난의 뻥튀기랄까.
다음엔 기형도의 잿빛 시를 몇 편 살펴 볼게.
그의 시에는 이런 개인적 가난의 경험과
시대적 어두움(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독재시기)도 함께 작용한 것들이어서
참으로 눅눅하고 습기가 가득한 것들이다.
요즘 나오는 싸구려 커피는 조금 경쾌한 느낌이나마 들지.
청년 실업의 시대가 풍기는 비애가 느껴지는 장기하 노래보다도 훨씬 암울했던 시대를 노래한 어두운 시인 기형도.
그 이름을 기억해 두기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