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쇼펜하우어란 작가는 '염세주의'로 알려진 모양인데,
뭐, 그들이 살았던 19세기가 상당히 세기말의 분위기를 풍긴 시대였다면, 근대 철학자치고 염세주의자 아닌 자들을 찾는 것도 어려울 듯 싶다. 칸트처럼 시계마냥 또박또박 삶을 살려고 했던 것도 어찌 보면 세기말의 분위기를 부정하려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이성을 주장했던 독일의 철학자들의 분위기를 상당히 개그스럽게 풍자한 자들 중 하나가 쇼펜하우어로 알려져 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도 함께 읽고 있는데, 쇼펜하우어보고 염세주의 운운한 사람은 질투심이 강했거나,
아니면 자격지심이 강했거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쇼펜하우어가 지금 한반도에 존재한다면, 개그콘서트에서 슈퍼스타로 활약하고 있든가,
아니면 도올 선생 뺨치는 동분서주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편집 의도가 쇼펜하우어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기때문일지 몰라도,
이 책은 결국 그래서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게 된다. 

작가가 편집한 쇼펜하우어의 글들의 토막들은 쇼펜하우어가 얼마나 유쾌한 작가인지를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지도 못하다.
차라리 '문장론'처럼 일관된 주제를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독자에게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의 '웃음론'이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작가가 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이 책을 빚은 충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짜깁기로 인한 단편성은 결국 한 철학자를 바라보는 시점에 신뢰도를 뚝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청취자가 좋아하는 가수를 한 명 골라서 그의 노래를 짜깁기한 음반을 만들어 판다면... 글쎄, 그 음반은 성공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느낌과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유쾌한 철학자의 독설을 읽는 일은 한편 즐겁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 풍토에서 짱짱한 역사를 가진 자들에게 퍼붓는 독설이야말로 왕비호의 특권일 수도 있겠다. 

훌륭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얼마나 발버둥치는지!(21)
그래, 사람은 그런 법이다.
교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며 '지혜'가 아니라 지혜가 있다는 '평판과 명성'을 구한다.
또한 학생들도 지식이나 인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는 척이나 하고 거드름이나 피우려고 배운다.(74)
세상을 시니컬하게 비평하는 자에게 돌아올 몫은 늘 '투덜이 스머프'라는 욕설 뿐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래도... 

그래서
내가 내 비밀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나의 포로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누설하면 내가 그것의 포로가 된다.
침묵이라는 나무에는 평화라는 열매가 열린다.(78)
이런 독설을 내뿜는다. 그러니 왕비호가 될 밖에... ㅋㅋ 

카드놀이, 여송연은 사고의 대용물이다.  그것은 사고의 파산 선언이다.
사람들은 무료함도 나쁜 일 중의 하나라고 여기는 듯 하여, 모이면 무료하다고 카드, 여송연을 나눈다.(81)
날카롭다. 이렇게 정확한 사람에게는 적만 많이 생길 뿐이다. 

인류를 아주 형편없는 종은 아니라고 부추긴다.
다양한 예술과 학문이 태어나고 보존되고 완성되어서, 이 종은 그것으로 자신들이 그 천재들의 가치를 알아보았음을 증명하기 때문(83)이라고 했다. 여기 독일의 철학자는 쏙 뺐다. ㅋㅋ 역시 왕비호답다. 

그는 잰체하는 인종을 경멸한다.
그들은 모두 빌린 의견들만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손에 넣을 기회만 생기면 탐욕스럽게 잡아채서는 자기 것이라 사칭하며 뽐낸다. (85)
이렇게 형편없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한 지식인들이라고 그는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늘 '독서'를 '사색'의 아래 둔다. 
오, 얼마나 생각할 것이 없었으면 저렇게 많이 읽을 수 있었을까?(88) ㅋㅋ 

그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야 그가 세계를 보는 관점을 좀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대의 영향이겠지만, 여성에 대한 그의 관점은 상당히 촌스럽고, 예의에 대한 관심도 좀 유치하다.
그렇지만, 그 시대에 그런 이야기를 표현하지 않았던 촌놈들에 비하면 그의 독설은 시대를 읽어주는 남자 역할도 한다. 

익살과 비유, 풍자로 가득한 쇼펜하우어를 읽는 일은 그래서 신선한 유머집을 읽는 기분이다.
염세주의 철학자처럼 박제된 용어로 그를 만나는 일은 슬픈 일이지만, 또 그것이 현실인 듯 하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볼 가치가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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