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출장을 가느라 며칠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오늘은 간단한 시 한 편만 같이 읽자.
이수익의 <승천>이란 시야.
승천, 이라면, 하늘로 오른다는 뜻이겠지.
우선 한번 읽어 보렴.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에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企圖)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하산(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다니면서
소리의 승천(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한(恨)을 토해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이수익, 승천)  

이수익의 이 시는 왠지 영화 <서편제>를 생각나게 한다.
영화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의 유명한 영화란다.
1969년이 한국인에게 영화를 가장 많이 보던 해로 기록된 것은 텔레비전의 영향이었다.
텔레비전이 가정에 보급되고 영화보러 가는 일은 급격히 줄었고,
1980년대 가정에 비디오가 들어오고는 영화 산업이 급속히 가라앉았다.
그런데 1993년 여름에 발표된 임권택의 <서편제>는 '전통'과 '한'을 주제로 하여 백만 관객의 시대를 열었지.
그리고 십 년이 지나지 않아서 <학교 괴담> 열풍으로 시작해서,
<쉬리>가 500만을 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단다.
이후 한국 영화는 <가문의 영광>같은 코미디 영화도 툭하면 500만을 넘는 양적 발전을 보였고,
시나리오도 튼튼하고 사운드도 많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곤 한다.  

서편제란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아이 송화는 판소리를 배우는데,
한이 맺히게 한다고 약을 먹여 눈이 멀게 된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
배다른 오라비와 헤어지게 되는데, 이 오누이가 다시 만나 한맺힌 소리를 들으며 영화는 닫힌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숱한 전란에 휘말리곤 했는데,
그래서 사람들 가슴에 '한'이 서리는 일이 많았다.
그 한이 가장 절절하게 표출되는 장르가 바로 <판소리> 같은 곡인데, 참으로 절절한 소리는 절창이다. 

그 가인들은 소리를 얻는 경지, 곧 득음(得音)을 위하여 폭포수 앞에서 연습을 한다고 그래.
폭포수 떨어지는 그 큰 소리를 뛰어넘는 소리가 목에서 터져 나와야 명창이 될 수 있다는구나.
이 시에서 '시적 화자' 인 <나>는 바로 그 가인이야.
그의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올라야만 한다>는 것이 현실을 보여주는구나.  

그 가인은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에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고 하여
쉽게 득음의 경지에 오를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쉽게 포기하면 명창이 되는 날은 오지 않겠지.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企圖)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에서 보듯,
한계를 느끼고 폭포 앞에 무릎을 꿇을 뿐이야. 

그래서 그는 <끝내> 하산하고 만단다.
아비가 죽어 뱃속 아기를 홀로 낳아야 하는 서러운 과부 같이,
절망의 유복자처럼 여겨지는 <가인의 노래>는
득음에 닿지 못해 마음이 아프구나.
결국 그는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다니면서> 살아 간다.
뜨내기처럼 돌아다니다 시비도 붙었을 게고,
남이 집에서 품팔이도 해서 겨우 먹고 살았을 거야.
그러다 우연히 잔칫집이라도 만나서 술 한 잔 얻어 마시고는 노래 한 자락을 했으렷다!
<소리의 승천(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한(恨)을 토해냈을 때,> 

이 가인은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좌절해버린 그의 소리를 듣고도,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고 부르더라는 이야기야.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은 <서사적>인 시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가인의 삶을 생각해 보면,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과연 인생에서 성공이란 남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스포트 라이트를 환하게 받는 무대의 주연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의 가인처럼,
최선을 다하여 삶을 가다듬노라면,
어느 날엔가는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사람>이란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빠는 이 시를 만날 때마다,
하루하루를 참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차곡차곡 쌓아가기는 힘든 게 삶의 보람이지만,
그걸 한 순간에 흩어버리기는 쉽기 때문이다.

이수익의 '결빙의 아버지'라는 시도 좋은데 다음에 나희덕의 '못 위의 잠'과 묶어서 한번 이야기 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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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3-11 09:37   좋아요 0 | URL
감동 씩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