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지 18 - 5부 2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8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 강점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점,
시대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강퍅한 성품의 인간상이 이 권에선 돋보인다.
홍이네 집으로 쳐들어온 임이는 온갖 포악을 부린다 주질러 앉는다.
그러나 홍이 부부의 구속으로 임이는 만주에 남게 되는데...
 |
|
|
| |
집을 나서다, 상의는 되돌아섰다.
"외삼촌 잠시만."
하고 그는 집으로 달려간다. 지갑을 꺼낸 상의는 돈을 다 털어냈다.
"고모 이거 받아요."
하면서 눈물을 닦고 급히 달려나왔다.
|
|
| |
|
 |
어린 상의가 노인 임이보다 낫다.
비록 임이가 횡포를 부리긴 하였지만, 그리고 지 에미와 같이 물질욕으로 번득거렸지만,
수전노였던 임이네와 달리 임이는 악랄하다 할 수 없는 정신박약이었다.
어린 아이가 정신박약을 돌보아주는 대목은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영광이와 양현이가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한탄을 하다가 "허송세월"이란 낱말을 입에 담는다.
허송 세월이라... 그렇다면 세월을 가득 채우는 길은 무엇인지...
영광이 극단 선배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는 거지. 사는 거요. 산다는데 누가 말려? 염라대왕말고는 아무도 못 말려."
이렇게 되뇐다.
맞상대인 여성은,
"나 남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살고 있어요.
생각해 보아요. 운다고 해서, 웃는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 없잖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데 집착할 것 없더.
문이 닫혀있으면 발길 돌리고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고 그러는 데야 누가 뭐라겠어?"
<허송세월>과 <삶>의 거리는? 한 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느끼는 인간의 마음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이겨내지 못할 듯, 힘겨웠을 것이다.
백정의 자식과 기생의 사생아라니...
영광은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데,
"한 위인이 살다간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가 아닐까? 시일까?
타인에게 투영된 그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갖가지 정서로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자체는 보는 사람에게는 풍경이며 시다. 위대하다는 그 자체가."
홍이 찾아온 평사리는 많이 변했다.
굴곡진 역사로 가득한 평사리.
섬진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홍이는 "산천은 무릉도원이되, 사람들은 무릉도원에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를 참 잘 비유한 구절.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떠나 <경자 유전>을 믿는 땅의 사람들은
세대를 타고 넘어 거기서 죽고 또 땅을 파고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세월은 무상하여 마을을 두 쪽으로 갈라 놓았는데,
개동이 에미는 한복이네 인호를 탐내어 행패를 부린다.
책읽는 내가 다 흥분이 될 정도로 말종이다.
그런 흥분은 양현을 무시하는 시누이 덕희를 읽으면서도 일어난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서있는 곳이 한 뼘 높다고 낮은 곳에서 떨고있는 사람을 야멸차게 능멸할 수 있는지...
험난한 시대, 뱀 혓바닥처럼 위험스럽게 돌아치는 배설자 같은 인간이나
일동이 개동이와 그 에미 우서방댁네 같은 인종 말자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살아가는 꼬락서니는,
백년을 넘어 오늘 일어나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나머지 인간들도 또 두 패거리로 나뉘어 이러쿵저러쿵 싸우는 모습도 역시 꼭 같고...
역시, 산천은 무릉도원이되, 인간은 무릉에 살지 못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