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광규의 70년대 시 이야기를 하다가 황동규와 황지우 이야기가 나왔다.
나온 김에 이야기를 계속 하자.

황동규의 시는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조금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단다.
바퀴는 원래 굴러가라고 만든 것인데,
왜 화자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 것인지... 한번 읽어 보자꾸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어렵니? 아니면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한지... 

바퀴는 원래 마찰력을 줄여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
그러니, 바퀴는 잘 돌아야 하는 것이야. 잘 굴러가야 하는 것.
그런데, 이 바퀴가 잘 구르지 않는구나.
뭔가 문제가 많은 현실이지?
그래서 화자는 세상이 잘 굴러가기를 희망하는 거야. 

3연에서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이런 구절이 나오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상반된 주장이니까, 한 문장 안에 상반된 주장을 나타내는 것.
역설법이지.
근데, 뭐가 '안 보이고, 보이는' 걸까?
3연의 <숨찬 공화국>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공화국>이란 말은 <republic>을 옮긴 말인데, '함께 공', '화할 화', '나라 국'을 쓴단다.
말 그대로 옮기자면 '함께 사는 나라'라고 볼 수 있지.
정치의 대상은 'public'일거고... 대중. 민중을 위해 함께 살도록 정치를 하는 나라.
반대는 군주제겠다.
민주주의 국가를 용어로 만든 것이 공화국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떤 나라든, 약한 계층이 있게 마련이니 그들에게 복지적 차원이든 시혜적 차원이든
국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미의 소극적 공화국에서부터,
인종과 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적극적 공화국까지...
참 바람직한 정체 체제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부패 공화국> 이니 <삼성 공화국> 같은 말은 어불성설(말도 안 됨)이지.
어떻게 공화국이 부패할 수 있겠느냐고... 

그 공화국이 <숨찬 공화국>이 되어버렸구나.
말로만 공화국이지, 사실상 <독재국가>였던 시절.
너무도 구르지 않는 사회를 보니 굴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 



반복되는 문장 구조(통사 구조라고 부르기도 한단다)를 통해 시상을 강조하고 있지.
마지막 구절.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이 말은 조금 숙연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구나.
모든 존재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만들어진 그릇은 깨어지게 마련이고,
낙엽은 떨어지게 마련이고... 인생도 그렇지.
모든 건 마침표를 찍게 마련인데,
그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화자가 하고 싶은 것은?
바퀴를 굴려보고 싶은 거겠지.
삐걱거리고 사고투성이인 이 세상에 윤활유가 되듯,
제 한몸 바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그래서 세상이 구르는 모습을 보면, 화자는 <떨어져 한번 날아가서> 끝이 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 같구나.

다음엔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쓰는구나>를 읽어 보자.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썼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암기하게 하였으며,
'교련'이라는 수업으로 학생을 군사화하였다.
무엇보다도 아침 저녁으로 국가 게양과 강하식을 하면서 온국민에게 '얼음'을 외치기도 했지.
길거리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모든 사람이 스톱하게 되어있었단다.
무서운 사회였지.
우스운 것은 '가장 은밀한 곳' 영화관에서 조차도 영화보기 전에 '애국가'를 틀었단다.
블랙 코미디지. 

그 애국가 장면을 보던 화자는
화면 속에서 자유롭게 나는 새들과,
애국가의 노래 가사와,
국민의 삶의 현실이 어디선가 삐걱거리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아름답기만 하고,
'을숙도의 새떼들'은 자유롭기만 한데,
'민중의 삶'은 부자유스럽고 가난하기만 하지.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애국가는 끝이 나는구나.
그래서 좌석에 앉으면서, <주저 앉는다>는 표현을 하여 <좌절감>을 나타냈단다.

강요된 애국심, 군사문화의 맹목적 복종... 이런 것에 강하진 않지만 반발의식을 드러내고 있지. 

오늘은 황동규와 황지우의 시 두 편을 간단하게 살폈다.
책을 읽는다는 일은...
시험 공부를 하는 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뭘 외워서 시험을 치는 일은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한다는 전제가 들어있어.
근데, 평생 살면서 인간답게 살고, 보이지 않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렉산더 대왕이
자유로이 살기로 유명한 '통'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저쪽으로 비켜 서 주십시오. 그늘이 집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대왕은 자신이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다고 하는 말도 그렇고... 

자유롭게 산다는 일은 어떤 것일지...
평생 머릿속에 담아두고 살 만한 가치있는 구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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