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이다.
매일매일이 그저 그렇고 그런 날이지만, 인간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
음양론으로 이야기하자만, 음기가 기운을 다하고 양기가 발하기 시작하는 이 때,
그 때를 한 해가 시작하는 때로 정하였다.
'동지'가 그렇게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이기도 하였고,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를 시작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
누구나 특별한 기분이 들 수 있겠다.
민우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니?
오늘은 그런 의미로,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부터 한번 읽어 보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설날 아침에)


 

화자는 '새해는 매양(매번) 추위 속에 가고 오고 하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맞'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리고 '꿈도 좀 가지고 맞'자고도 하는구나. 

아직은 봄이 오지 않았지만,
원래 '봄을 시작하는 이 때'가 '음양설'에서 '태양'에 속한단다.
한창 봄이 무르익어 철쭉이 온 강산을 물들일 때는 '소양'에 불과하지.
곧 '음'이 다가설 미래를 본다면 그렇다는 거야. 

얼음이 아직 얼었고, 미나리 싹도 봄을 꿈꿀 뿐인 이 추위에,
아직도 추위는 맹위를 떨치지만, 그래도 '참고 꿈을 가지자'는 이야기.

설날 아침에 떡국과 '차례' 지낸 후의 따끈한 '음복' 한 잔 앞에 두고,
부족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생각하자는 것은,
현실은 춥고 배고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단다.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이런 역설이 있나! ^^
험하고 각박한 곳이면, 살기 힘든 곳인데...
어차피 살아야 할 곳인데,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거 뭐 있나? 이런 의도겠다.
김남조의 '설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살자' 이런 것.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아, 이 부분이 이 시의 '백미'겠구나.
어린 아이들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잇바디(이가 난 치열)로 들쭉날쭉한 이가 돋는 자기 새끼를 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살맛나는 일이란 걸 안단다.
새해는 그렇게...
가장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제 자식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시작하자는 시 같구나.


시의 화자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이 시를 썼겠다.
가난한 시기에 쓴 풍요로운 노래.
현실은 힘들지만 마음 속에서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소박하고 넉넉한 의지.
이 시의 특징은 '교훈적'이지?
삶은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자꾸나... 이런.

김종길의 시로 시험에 잘 등장하는 것이 '성탄제'다.
'성탄절'은 연말이고, 왠지 흥성거리는 들뜬 마음이 들게하는 시기겠다.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성탄제)


   <산수유 열매와 꽃> 




 

이 시는 시각적 이미지, 곧 색상의 확연한 대비가 나타난 시다.
'어두운 방 안'과 '빠알간 숯불'의 대조적 이미지.
'늙으신 할머니'와 '어린 목숨',
'흰 눈'과 '붉은 산수유 열매'
'서느런 옷자락'과 '열로 상기한 볼' 

이런 시각적, 촉각적 이미지들이 화자의 마음 속에선 그대로 살아 남았다가,
서른 살이 넘은 현재.
도시에서 쓸쓸한 성탄절을 맞는 오늘, 과거의 장면이 시각적, 촉각적으로 살아난다는 시란다.

'서러운 서른 살'은 '언어 유희'가 되겠지?
'서럽다'와 '서른'이 발음이 유사하니깐... 뭐, 서른 살이라고 서럽겠니? ㅋ 

화자는 나이가 들어 고향의 아늑한 방 안과,
그 시절의 '정감'이 그리워 지는 것이겠지.
왠지 도시 생활에서는 느끼기 힘든 그런 정감 말이야.
'혈액'과 비슷한 색의 '산수유 열매'가 주는 그런 정감의 유전자.

다분히 문명 비판적인 시이기도 하단다. 

서러운 서른 살...을 읽노라니,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의 시가 생각나는구나. 

옛날에 김삿갓이 떠돌다가 밥을 얻으려 하는데, 춘궁기라 밥 얻기가 어려웠단다.
그러던 어느날 몇 집을 거쳐 수무나무 있는 집으로 또 갔단다.
수무나무는 가시에 찔리면 아무는데 20일 걸린다하여 수무나무라 불리기도 하는데,
한자로는 수무(壽無, 목숨이 끝이 없는)의 뜻으로 쓰인 나무이기도 하다. 

가서 또 요란스럽게 “주인 계시오. 밥 좀 주시오.”하고 야단을 쳤대.
주인 놈은 거지가 와서 시끄럽게 자꾸 야단을 하니까 할 수 없이 “그럼 한 술 줄게 먹고 가라.”
하고는 먹다 남은 쉰 찬밥 덩어리를 더럭 내 주었댄다.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보니까 퀘퀘 쉰 찬밥이었으니, 화가 나서 이런 시를 썼다는구나.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四十家中五十飯   사십가중오십반
이라고 글 한 구를 지어 들여보냈단다.  

 <수무나무>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수무나무 아래 서른 손이(서러운 손님)
마흔 놈의(망할 놈이라는 뜻) 집에 쉰밥’ 이라는 욕이었지.

주인이 받아 보니까 이런 욕이 없거든.
‘야 이놈 봐라 글 잘 하는 거지로구나!’ 하고 따라 나와 보니까 벌써 달아나고 없더란다. 

힘겨웠던 조선 후기의 삶과 지혜로운 민중의 지혜가 함께 드러난 이야기로 볼 수 있겠지. 

사는 일은 힘들다.
그렇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즐겁기도 하단다. 

민우도 네 젊은 날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 것인지, 잘 고민해 보기 바란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네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세우고,
일년의 계획은 연초에 세우라고 했다.
하루는 두 번 오지 않으니, 마땅히 인생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그랬다.
그 공부는 '국영수'가 아니란다.
민우가 수능 마치면, 인생에 꼭 필요한 책들을 아빠가 소개해 주고 싶다.
흔히 하는 말로 '고전'이란 것인데, 그런 것들은 살면서 두고두고 친구처럼 읽어나가야 할 것들 같다.
올해, 계획 잘 세우고, 뜻한 바 잘 이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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