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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 - 4부 2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잔인하고
비천하고
탐욕스럽고
향락적이고,
그리움이나 사랑같은 것이 그 중에서
얼마만큼 무게가 나가는 건지 도시 모르겠다.
내 자신도 내가 뭣인지,
적당한 곳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오가다 지로는 사촌 지에코 앞에서 이런 넋두리를 한다.
삶 안에는 먹고사는 일 말고도 다양한 일들이 둥지를 틀곤 한다.
먹고사는 일의 무게는 그 내용의 비루함이나 저속함을 이기는 것이어서 구차함을 극복할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전기작용의 결과인 마음과 감정은
순간적으로 또 꽤나 오래 스스로에 자부심을 주기도 하고,
또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한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특히나 과도기나 격동기의 사람들에겐 그 고뇌가 더 깊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뚫고 글을 쓰는 작가의 고뇌는 더 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토지를 읽으면서 한다.
소지감의 역사에 대한 상념 끄트머리의 정리는 정수리가 쭈뼛 설 정도로 시니컬하다.
그러면 역사는 무엇이냐.
역사란 정의를 날조한 문서다.
역사란 것은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사관의 관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다.
시니컬하게 보자면, 그야말로 날조된 문서에 불과한 종이조각일 뿐...
역사가 답해주리라. 역사에게 물어보라...
이런 기대는 그래서 과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은 그저 묵묵히 걷는 일일 따름이지,
결코 역사 따위에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할 노릇이다.
4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여성은 임명희다.
부유한 친일파 조씨 가문에 시집가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1930년대에 이혼녀란 도장은 어떤 것이었을지... 그 낙인 효과를 상상하기도 힘들다.
결국 그는 친구를 찾아가는 길에 바다에 몸을 날리기도 하지만 죽음은 아직 닥치지 않는다.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임명희라는 신여성의 삶과 사고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오리무중을 헤매이긴 매한가지다.
대대로 고귀했던 조씨 가문에 중인 계급의 여자가 들어온 것도 뭣한데 난 요물이었단 말이야.
내칠 수도 둘 수도 없는 악연.
그래 내 자신에게도 그건 악연이었나봐.
그는 바람같이 떠나간 인연 김상현을 그리워하면서,
현실 속에서는 시동생과 감정을 섞는 악연과도 끝없는 투쟁을 해야하는 운명에 놓였던 슬픈 여성이다.
그에게 남편 조용하의 부유한 가정도 안식처가 되진 못하였고,
세상이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편견도 삶을 행복하게 하진 못하였다.
죽음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신여성의 삶에 대한 관찰은 맥빠지는 슬픔같은 것이 밀려들게 한다.
계급을 뛰어넘어 자꾸만 강가로 달려가는 윤국의 사춘기를
타는 듯 뜨거운 회초리로 다스리는 최서희의 매질은 계급 감정의 골을 타고 찌르르 아프게 흐른다.
현대 사회에서도 돈이 계급이 되어버린 곳.
돈 몇 푼이면 부조리도 쉽게 스러져버리는 곳.
역사 속에서, 오래된 사람들의 삶 속에서만 그 이유를 비쳐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떤 논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근저를 소설 속 사람들의 삶에서 비쳐나는 핏빛 억울함과 붉은 노여움에 섞여 읽어낼 가능성을 찾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