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
무언가가 메말라가면서 끝을 향해달릴 때, 나는 이 시가 생각난단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우선 한번 읽어 보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기도>
단출하게 3연으로 이뤄진 시다.
그리고 처음 부분이 같은 말의 반복이구나.
가을에는 ~하게 하소서... 뭔가 기도하는 경건한 언어처럼 구성되어 있고.
가을이라고 하면 1년의 마무리가 되는 계절이기도 하겠지만,
인생이 저물어가는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뭔가가 끝나갈 때, 사람은 조금 엄숙해지고 경건해질 수 있을 거야.
마치 12월 31일 밤의 마음처럼.
1연에선 그런 가을을 맞아, 기도하게 해 달라고 빈다.
겸허한 마음으로 가슴이 충만해 지기를 비는 마음.
이제까지는 너무 욕심을 내서 살지 않았는가? 돌아보며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는 성찰의 시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구나.
2연에서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고 있어.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구나.
사랑이란 걸 공자의 말로 바꾸면 <극기복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극복하고, 자기의 이기심을 모두 비우는 마음이야말로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겠지.
부처님도 <색즉시공>이라고 세상은 텅 빈 것이니 마음을 모두 비우라고 하셨겠지.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내지 않고,
당신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경지. 그것이 사랑이란다.
3연에선 '호올로' 있고 싶다고 하지.
혼자서 뭘 하겠다고?
영혼의 여행을 떠나는 거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 꽃핀 골짜기를 지나는 일은 다양한 삶의 고비를 넘는다는 의미겠다.
그래서 자신은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하고 있니?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야.
마른 나뭇가지는 욕심을 버린 사람의 경지가 아닐까 싶구나.
욕망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마음을 비운 사람의 경지.
거기 다다른 까마귀는 <고독한 자신의 영혼>이 되겠지.
화자가 추구하는 삶은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매사에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고, 욕망을 버린 구도자처럼 살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이 시는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시로 볼 수 있겠다.
주제라면 <가을의 고독과 기도를 통한 경건한 삶의 추구> 정도면 되겠지.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낼 민우도 스스로 경건하게 지난 2년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다음엔 김현승의 <눈물>을 보자꾸나.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 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눈물>

이 시는 크게 은유법으로 이뤄진 시야.
제목이 눈물이잖아.
근데, 그 눈물을 다양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은유법이지.
1연에서 물방울이 땅에 떨어져 흙을 적시고,
다시 그 흙이 비옥한 토양, 옥토가 되는 상황을 본다.
그래서 <작은 생명>이 열리게 되는 거야.
물 또는 눈물은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여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2연은 <흠, 티, 금>도 가지 않은, 정말 순수한 나의 결정체는 바로 눈물이라고 한다.
이 시의 화자의 측면, 곧 <표현론적 측면>에서 살펴 보자면,
화자는 자식의 죽음 이후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이 주루룩 흐를 때, 그걸 생명, 또는 순수와 연관지었겠지.
3,4연에서 자신의 가장 값진 것. 가장 나아중까지 남을 것은 눈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5연에서, 나무의 꽃이 시들고 열매가 열리는 상황과,
6연의, 웃음을 만든 후에 눈물을 만드신 하느님의 상황을 빗대고 있다.
꽃이 시들면 나쁜 거잖아. 죽음이고 끝인데...
그런데 열매가 열리는 긍정적 상황으로 뒤집으니 <역설>로 보면 되겠지.
<낙화>라는 현상적, 피상적 사실을 보고,
<열매>라는 본질적 의미를 깨닫는 것.
이렇게 삶의 의미를 관찰하면서 얻어내는 것을 <관조>적이라고 한 적이 있지?
웃음을 만든 후에 눈물을 만드신 것도 마찬가지지.
아이를 보고 그렇게 즐거워했는데...
하느님은 다시 눈물을 주시는구나.
그런데, 그 눈물이 슬프고 괴롭기만 한 거라면 시라고 보기 어렵지. 그냥 푸념이지.
근데, 화자는 그 눈물은 <가장 순수한 것>, <가장 희생적인 것>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킨단다.
웃음이라는 표면적이고 외면적인 가치보다는
눈물의 내면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화자의 시선이다.
관조적 시선의 깨달음이 주는 깊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시란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끓어 넘쳐 울분을 토하는 시가 아니다.
감정이 지극히 절제되고 있는 시로 보면 좋겠지.
주제는 <슬픔의 종교적 승화> 정도가 되겠지. <눈물을 통하여 본 순수의 의미> 이런 것.
다음 시는 '양심의 금속성'이란 시다.
모든 것은 나의 안에서
물과 피로 육체를 이루어 가도
너의 밝은 은(銀)빛은 모나고 분쇄(粉碎)되지 않아
드디어 무형(無形)하리만큼 부드러운
나의 꿈과 사랑과 나의 비밀을
살에 박힌 파편(破片)처럼 쉬지 않고 찌른다.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醉)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
너의 차가운 금속성(金屬性)으로
오늘의 무기를 다져 가도 좋을,
그것은 가장 동지적(同志的)이고 격렬한 싸움! <양심의 금속성>
양심이 뭘까?
양심적이다. 양심에 맡긴다...
한자로 '어질 량 良'에 '마음 심 心'을 쓰니 <어진 마음>이란 뜻이다.
착한 마음.
착하게 살자.(이거 조폭들이 팔뚝에 잘 새기는 건데... 음... 조폭들은 역설적인 기법이겠지? ㅋ)
인간은 늘 욕망에 휩싸이는 존재란다.
1연이 그런 이야기지.
사람은 물과 피로 이뤄진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온갖 욕망에 지고 마는 존재거든.
그런데 2연의 너는 곧 '양심'인데,
양심은 '은빛'이고 '분쇄되지 않'는 속성을 띤 것이어서, 곧 금속성을 띤 것처럼...
인간의 마음 속에서 반짝 빛나고 튼튼하게 박혀 있는 거야.
3연에서 나의 <꿈, 사랑, 비밀>은 바로 자신의 욕망이겠지.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을 <욕구>라고 한다면, 불필요한 것까지 뻗치는 것을 <욕망>이라고 한단다.
욕구는 만족시켜야 할 것이지만,
욕망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
그 욕망에 박혀 파편처럼 <쉬지 않고 찌르는> 것이 바로 양심의 역할이래.
양심에 찔린다~ 이런 표현도 있구나.
4연에선 모든 것이,
세상 모두가 다 욕망의 불길에 연소되어 버리고,
술에 취한 불나방처럼 욕망에 취하여 등불을 향하여 달려들지만
양심을 가진 존재만이 호올로 눈물을 맺는 밤을 이야기한다.
이 '밤'은 여느 시에서처럼 '부정적' 의미가 아니지.
양심을 지키는 삶의 고독한 시간을 뜻하는 '밤'이구나. 긍정적 의미.
부패하게 쉬운 세상과 <격렬한 싸움>이라도 벌이려는 화자는
동지가 필요하다.
그가 바로 <너, 곧 양심>이란 말이지.
<차가운 금속성>이란 무기로 무장한 양심으로, 세상과 한판 싸움을 벌이려는 화자의 삶의 자세.
역시 좀 경건하다고 볼 수 있겠지?
김현승의 시는 일반적으로 사회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란다.
위의 <가을의 기도>나 <눈물>에서도 경건하게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쪽이지.
김수영이나 신동엽처럼 현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지.
그런데 이 시는 부패한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시로
김현승이 비판적 현실 인식을 내비친 조금 특이한 시다.
그만큼 세상이 비양심적인 인간으로 가득차 있겠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 보면
착하게 사는 형 철호에게 동생 영호가 그런 말을 하지.
착하게만 살면 오히려 세상이 비웃는다고...
양심따윈 버려야 잘 살 수 있다고 말이야.
과연 혼란한 시대에 양심을 지키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한번 되돌아 보자꾸나.
이번 주말엔,
발이 아프다고 며칠 게을렀던 마음을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