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있고 나도 이런저런 행사가 겹쳐서 한 열흘 쉬었구나.
이제 기말고사도 마쳤고, 제대로 고3 올라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기간이다.
학생 시절에 내내 공부만 하는 일은 참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아빠는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마지막 고교 1년은 좀 열심히 살아주었으면...
너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탐구과목 강사로 유명한 손주은 씨 말대로 '스스로 감동받는 공부'를 해봤으면 한다.
그런 경험 자체가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으므로... 

오늘은 조금 어려운 시들을 살펴보려 해.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우선 읽어 보자.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니? 
느낌이 어때?
뭔가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뭔가가 과연 뭔지, ㅋㅋ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 같다. 결혼식장의 조금 경건하고 신비스런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시를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낭송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다.
그게 오히려 가장 좋은 방법이야. 
시를 꼭꼭 입에 넣고 씹듯이,
딱딱한 부분은 한참을 입에 넣고 불린 뒤에 쪽쪽 빨아먹을 수도 있겠지.
아빠가 설명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고,
시를, 그리고 문학을 읽어가는 방법 중의 하나니깐, 편안하게 읽기 바란다.

이 시는 우선 제목이 멋지다.
꽃을 위한 서시, 캬,

우리 나라 시 중에 젤 유명하고, 젤 멋진 시가 뭐겠어?
여기서 다른 시 대면 안 되지?
윤동주의 <서시>라고 해야지. ^^
윤동주가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음을 부끄리며 쓴 시.
그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시집이고, 그 처음에 올린 시가 바로 <서시>야.
서시의 뜻은 시집의 <서론>격인 시란 뜻인데,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권두시란다. 

꽃을 위한 서시니깐, 이 시를 누구한테 바친다고? 바로 꽃이지.
그런데, 똑, 잘라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지?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라고 했단다.

이 시는 꽃에게 바친 시인데, 그 꽃을 한 단어로 뭐라고 비유했다고?
신부. 

아, 신부...
결혼식 첫날밤 이야기를 어린 시절엔 다들 궁금해 하듯,
신랑...이란 말에 비하자면, 신부...란 말은 뭔가 조금 신비스럽고(발음도 비슷하네 ㅋㅋ)
비밀스런 구석이 있어 보이고, 순수하고 깨끗하면서도 모든 걸 알수 없는 존재.
아름다우면서도 함부로 가까이하긴 어려운 존재... 이런 느낌이 있지 않을까?

사실 결혼식은 신부를 위한 거란다.
엄청난 가격과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비하면,
양복이든 턱시도든... 신랑이란 참, 들러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
이 시는 꽃을 위한 서시,이면서, 신부를 위한 서시이기도 해.
아, 얼마나 매력적이야.
아내도 아니고(음, 아내 하니깐 느낌이 팍 삭지. 한 순간에 ㅍㅎㅎㅎ)
신,부.
신부는 말 그대로 결혼식의 꽃이란다.
환하게 웃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날의 꽃.
그날 찍는 수백 장의 결혼식 사진은 사실은 신부를 위한 거야!
야외촬영, 특수분장 촬영 모두 그런 거지.

그 신부를 사랑하는 화자는 신부를 꽃, 같대.   

자, 여기까지... 읽고 나서,
이 시의 첫 구절을 읽으시면, 허걱, 할걸.
아깐 안 보였던 구절이 바로보이니깐. ㅍㅎㅎ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캬, 요즘 유행이 짐승이지?
'내 귀의 캔디'를 속삭이는 백지영 뒤로 보여주는 짐승돌의 식스팩!!!@_@
꺅~~~, 짐승 중에서도 <위험한 짐승>.
드디어 첫날밤이 시작되는구만.
오늘의 꽃, 신부와 '시방 위험한 짐승'의 한판 승부. 

자, 19금은 요기까지.

<19 금>이 표지에 적힌 책을 오빠 방에서 본 여동생이
긴장하면서 그 페이지를 넘겼더니, 뭐가 나왔게요?
<20 토>

이제 수능 모드로 돌입해보자. 수능 320일 전이니까. 좀 경건하게 ㅋㅋ
여기서 '위험한 짐승'은 '윤리적'으로 위험한 짐승이 아니야.
이 위험한 짐승은,
지적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가진 인간,을 뜻하는 말이란다. 

갑자기 재미없어졌지?
자, 정말 알고 싶은 신부, 오늘의 주인공 꽃, 그의 베일을 걷고 싶지만,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순간, 그 <존재>는 알 수 없는 존재로 되어버리고 만다는 거야답니다. 

내가 엄마랑 결혼한 때
원래는 아빠 친구들 중에 여자라곤 어머니밖에 모르는 두 녀석에게 미팅을 제가 주선했거든.
그랬는데 대전 카이스트 있던 한 녀석이 펑크를 낸 거야. 토요일인데 못올라오겠단 거지.
그래서 내가 대타로 미팅을 했는데, 그 중의 한 여인이 지금 너의 엄마란다.

처음엔, 얼굴과 이름과 직업 정도만 알았지.
그러니깐, 그 아가씨가 '아는 아가씨'가 된 거지.
그런데, 그날 새벽 1시까지 놀다가 택시로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이때부터 흑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매너남 ㅋ)
집에 왔는데, 잠자리에서도 계속 얼굴이 얼른거리는 거야.
전번도 못 땄는데...ㅠㅜ
그래서 다음날 엄마가 근무하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해서 아내를 바꿔달라고 했지.
그래서 그날 오후에 또 만났어.
아, 둘이 만나니깐 얼마나 좋던지. ^^
근데, 그날 딱, 만나니까...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지는 거야. 
그래서 묻고 또 묻고... 그게 사랑인 모양이지.
알고 싶어요...가 무한대로 나올 수 있는 거.
듣고 또 들어도, 또 묻고 묻는 거... 그래서 엄마랑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면서 급 친해졌지.
그런데, 만나고 만날수록 정말 궁금한 건 계속 생기더라고. 

이런 이야기를 이 글의 화자는 하고 싶은 거란다.
인간의 <존재>의 본질은 알고자 하면 끝도 없이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거.
나는 쟤 알아~ 라고 하지만, 그 사람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정말 아는 건 없는 거잖아.
심지어,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하고 뻐기지만,
정말 곤란에 빠지면 정신과 가서 '제가 누구래요?' 이렇게 묻게 되는 거. 
나를 알려고 절간에 들어가서 '스님,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 왔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큰 스님은 '너를 가져오너라, 네가 누군지 가르쳐 주마.' 이러실 걸?

'위험한 나'는 너를 정말 알고 싶어 해.
그런데, 내 손이 닿으면, 너는 까무룩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그리고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피었다 지는 꽃.
그 아름다운 꽃은 '이름도 없이'(無名 무명) 피었다 진다.
그 예쁜 것들의 한 송이 한 송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아, 그것들은 그 아이들의 특색을 깨닫기도 전에 져버리고 말아. 

그래서 이 맘 보드라운 아저씨는 눈물이 난대.
그 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존재들을 인식도 하기 전에, 져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이 <이름없음 無名, 무명>의 존재들을 기리기 위해서
나는 불을 밝히고 한밤내내 운단다.
아, 어떡하면 너희 존재를 내가 알아챌 수 있겠니~~

이렇게 우는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지.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바로 옆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외면하고 살아간단다. 슬프게도.
그래서 울던 이 화자는,
밤늦게 어떤 앎의 문을 두드린다.
돌개바람처럼 탑을 흔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탑의 본질을 알 수는 없어.
그렇지만, 그 정성이 돌에 스며들면
그 탑의 돌이 의미있는 존재, 금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금과 가장 연관있는 탑이 뭘까?
한자로 '쇠 금 金'자와 비슷하게 생긴 '금자 탑'은?
바로 피라미드란다.
보잘것없는 나의 관심이
상대의 본질을 알고자 노력한다면... 피라미드처럼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지도 모르지.
크기가 모든 것의 다는 아니지만...

어린 왕자에서 생 텍쥐베리가 그러잖아.
길들이면,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고.  

자, 이 시를 다시 읽어보자.
이 시는 사실은 꽃,을 위한 시도 아니고, 신부를 위한 시도 아니란다.
이런 시를 <철학시>라고 한대.
헐~ 철학은 또 뭐람... 금속 공학이면 몰라도...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철학, 종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중의 가장 기본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하더라. 
그 <존재의 본질>을 새침떼기이며, 말해주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는 <신부>에 비유하는 시란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뭔가 좀 알 것 같아? 알쏭달쏭 하다고?
그럼 이런 시 중에 또 유명한 게 있으니 같이 보자.
하는 짓은 비슷하니깐, 그냥 한번 읽어 보자고. 
신동집의 <오렌지>라는 시야.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오렌지 ,신동집)

역시 똑같은 상황이 나온단다.
이렇게 알려고 하는 순간부터, '어떤 상태'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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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든 <진리 탐구의 상대>는 <의문 덩어리>라는 걸 생각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좀 복잡하겠지? 
그렇지만, 노력하면,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기도 해. 잘은 아직 몰라도.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새, 부분> 

박남수의 <새>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란. 
'새'를 소유하고 싶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포수가,
그만 새의 순수를 겨냥하여 빵! 하고 쏘아 봤자...
그러나, 새의 순수, 새의 본질, 새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전에,
포수의 한덩이 납,이란 방법은, 도구는, 모두 존재의 본질을 상하게 하고 만다는...

 

좀더 유명한 김춘수의 <꽃>을 다시 한번 보자.
이 시는 워낙 유명하고, 주제도 쉽게 드러나니깐,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싶다. <김춘수, 꽃> 

아까 꽃을 위한 서시에서 <무명>이란 말이 나왔거든.
기억 나니? 이름 없음. 無名.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에게 이름도 없이 스러지게 해서,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이런 거였잖아. 

삶도 마찬가지일걸?
우리 모두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저 거기 있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따름이란 거야.
친구들이 네 이름을 불러주면 괜히 금세 친해지잖아.
특히 칭찬이라도 해주면...
이름을 불러주면, 그렇게 신이 나는 거지. 그게 바로 알아주는 거니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지.
그게 바로 <명명 命名, 이름붙임>의 힘이란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마르코만 인들과 싸울 때 용맹스런 사자들을 데리고 갔대.
마구 달려오는 사자를 난생 처음 본 마르코만 인들이 장군에게 물었어.
저 괴수가 뭐냐고.
그랬더니, '저것은 개다. 로마의 개다.'이랬대. 결과는 뻔하지?
로마의 개를 몽둥이로 다 때려 잡았다는 거야.
사자라면 무서워했을 텐데, 개라니깐 우습게 보고 때려 잡을 수 있었던 거지.

명명의 힘은 그렇게 크단다. 이름을 불러주는 일. 상대를 알아주는 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칭찬은 '빈말'과 완전 다르잖아?
정말 그 사람의 장점을 들추어 칭찬해 주는 일. 얼마나 사람을 기쁘게 하겠어?
휴 =3=3 선생님들이 제일 못하는 게 이거야. 꼬집기는 도가 텄는데 말이지. ㅎㅎㅎ   
가끔 아빠가 조금 미안하기도 하구나.

조지훈의 <민들레 꽃>이란 시가 있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 민들레 꽃> 

마음이 한없이 외로울 때,
아, 내 존재는 도대체 이게 뭐야~~~>?
아, 짱나~~~ 이런 날,
까닭없이 마음이 외로운 날이 있지?
그런 날, 지금은 이별했는지, 사별했는지 내 곁에 없는 그대가 생각나고.
그대는 민들레 꽃 안에서,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있구나.
당신과 나 사이엔 저바다 보다 먼 아득한 거리가 있지만,
그대는 조용히 나를 찾아온단다.
그대와 내가 말했던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가 나의 존재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시야. 

존재의 외로움은 근원적인 것이겠지.
본질적인 거. 
어차피 '너 날 수 있어?' 이렇게 묻는다면,
'응, 나는 너 일수 있어...'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되겠니?
만일, 있다면, 정말 아끼고 사랑해야겠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ㅎㅎㅎ  

그렇지만. 또 우리는,
서로는,
영원히 단 하나의 세포도 공유할 수 없는 남남인 것이란다.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해 눈물짓는 것보다는,
민들레꽃처럼 한 순간이라도 서로 위로해 주는 존재가 되면 그것도 성공한 존재들 아닐까? 

아, 얼마만한 위로이랴! 

이렇게 말이야.
또 정공채의 <간이역>을 잠시 보자.
우리는 서로의 존재들에게 <목적지>는 될 수 없을 거야.
나의 목적지는 <나의 완성>일텐데,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완성을 어떻게 꿈이나 꾸겠어?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 하다 그리 되어버리는 것'이 인생인데 말이지.
그나마, 서로가 잊혀진 얼굴들 사이에서
간혹 스쳐지나간 것으로 기억되는 <간이역>으로 남는 것도 뭐, 괜찮겠지. ^^
꿈도 슬림하게... ㅎㅎ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때 펼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랜 동안 걸어온 뒤에
돌아다 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여숙(旅宿)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수표처럼
기억의 언덕 위에 잠간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었던가

간이역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정공채, 간이역)

<존재의 본질> 하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봉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정말 이쁜 만화거든. ^^ 
어렸을 때 같이 보러간 기억 나니?

 

일부러 일본어로 적었는데.
센과 치히로는 한자로 한 글자 차이야. 센 또 치히로 노 카미카쿠시...
'센'은 음으로, '치히로'는 뜻으로 읽은 거지.

부모님이랑 즐겁게 지내던 치히로는 이상한 할망구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네 이름은 너무 거창하구나.' 이런 명령에 뒷글자를 잃고 '센'으로 전락하고 만단다.
그런 뒤에 센은 맨날 목욕탕 때밀이를 하지.
목욕탕을 들락거리는 괴물들은 모두 '가오나시(얼굴없는)'들이고 말이야.

존재의 본질을 망각한 존재들은 모두 센이 되어서 무의미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단다.
친구로 나오는 하쿠가 그런 말을 반복해.

<네 이름을 절대 잊어서는 안돼!> 
이 말은 곧,
너는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센이 아니야.
너는 행복했던 때의 너,
치히로란 너의 본질을 찾아 가야해~~ 이런 외침 아닐까...  

아빠는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단다.

 

자, 오늘은 좀 어려운 시를 다루고 나니, 나도 정신이 좀 멍~ 하구나.
그래도, 암튼, 만화영화 이야기도 나오고 하니 좀 맘편하게 읽어 주렴. ^^
센과 치히로 이야기 하면, 수업 시간에 아이들도 진지하게 듣거든.
김춘수, 신동집, 또는 박남수의 <새> 같은 시가 나오면 아이들이 울상이 되어버리는데,
그때 <센또 치히로노 카미카쿠시> 이야기 해주면 또 헤헤거리더라구. 

이 세상에서 아빠와 민우로 만나고 가족이 되었는데,
한국에서 사는 것. 학생으로 사는 것. 21세기에 사는 것.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사는 일이 복잡하고,
어떨 땐, 내가 뭔가~~~
이렇게 <센>의 무의미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그렇지만, 우리의 하루하루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센처럼 목욕탕 청소나 하는 사람으로 살진 않을 거야. 그치?
좀더 의미있고 재미있는 날들을 만들면서 행복하게 살자꾸나.
또 시작된 아빠의 강의를 재미있게 읽어주기 바란다.
추운 날씨에도 힘내서 살자~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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