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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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자 ‘큰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5일 별세했다. 향년 81.

지병으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에 입원했던 리 교수는 이날 오전 0시30분께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의 평생은 ‘반지성에 맞선 치열한 싸움의 역정’이었다. 근무하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해직됐고, 모두 다섯 차례 구속됐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ㆍ투옥했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리 전 교수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불렀다.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난 리 전 교수는 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삶을 시작했고, 64년부터 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일했다. 69년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기사를 썼다가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군부독재ㆍ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던 71년 합동통신에서 해직됐다.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76년과 80년에도 각각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의 압력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리 전 교수는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이사 및 논설고문을 맡았다. 방북 취재를 기획했던 89년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ㆍ기소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160일간 복역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무기는 ‘관념’이 아닌 ‘사실’이었고, ‘이론’이 아닌 ‘실천’이었다. 그는 글쓰기를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그는 오직 진실과 균형의 날개로 이념적 도그마에 저항했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 <우상과 이성>(1977)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베트남 전쟁의 실체와 중국의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당대의 대표적 금서로 탄압받았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서 함께 일했던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은 “리 전 교수는 미국이 만들어낸 뉴스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대에 남북문제와 외교문제 및 베트남ㆍ중국 문제에서 독자적 탐구와 분석을 토대로 용기 있는 기사를 써냈다”며 “한국전쟁 후 우리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 언론인”이라고 평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몸이 마비된 뒤로도 시대를 염려하는 그의 발언은 그치지 않았다. 올 초 간경변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부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에 전념해 왔다. 자신의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던 리 전 교수는 그의 책이 필요 없는 사회를 끝내 보지 못한 채 이날 숨을 거뒀다.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ㆍ건석씨, 딸 미정씨를 세상에 남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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