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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의 토지는 '이념'의 허망함을 '삶'을 통해 그대로 형상화한다.
조선이 쥐어잡고 있었던 '양반'의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김훈장'을 통하여 발겨내고 있으며,
부처를 팔아서 부를 불리고 '공'을 팔아서 '색'을 거둬들이는 절간의 허사를 '법회'를 통하여 살을 붙이고 있다.
박경리의 이야기를 따라 흐르노라면,
바리데기가 지옥 끝까지 가서 떠온 생명수와 빨간 꽃, 파란 꽃이 뼈를 되살리고, 살을 되살리고, 숨결을 불어 넣는 신비를 부리듯, 백년 전의 살림살이들이 오롯이 떠오른다.
독립운동 하겠다는 자들의 허망한 탁상공론과,
그 사이에서 논쟁에 재미만 붙였을 뿐, 실상이 없는 이론의 헛된 놀이.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일파의 앞잡이가 되는 지식인과 무뢰한들의 모습에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작가가 되살려낸 인물들 중에 원래 그렇게 잔인하게 태어난 놈은 없다.
거복이도 잔인한 본성을 가진 자처럼 보이지만, 살인 죄인의 자식으로 목매달아 죽은 어미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몽당나무를 만들어버린 이웃들의 강파른 성정을 보지 않았다면 평범한 농민이나 장사치로 살다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용정에서도 걍팍해져만 가는 임이네와 당하기만 하는 월선이를 용이가 힘차게 떼어 놓아서 다행이다.
남도 사내 주갑이가 등장하여 불행한 인물들의 군상이 점점 무채색으로 살아가게 될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림에 제법 살뜰한 채색을 입혀준다.
일은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사필귀정'도 역시 인간이 억지로 만드는 노릇같다.
일은 바르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키고 설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것이 강물의 흐름이다.
곡류 하천은 원래 더 곡류를 심하게 휘도록 발달하게 되어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곡류가 그저 곧은 흐름으로 통해버리고, 강하던 곡류의 커브 부분은 우각호처럼 퇴화되기도 하는 것이 강물의 도리이거늘...
이렇다 저렇다고 원칙만을 되뇌는 삶의 강파름을 나이 들면서 알아 가는데,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일은 그래서 썩 상쾌한 일이 된다.
어제 결혼식 뒤풀이 자리 덕택에 영화 <해운대>에 등장했던 미포의 멋진 빌딩에 올라가서 회를 한 점 했다.
그 빌딩의 건조에 파묻힌 이야기들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거기서 내려다본 등대와, 바닷새와, 반짝거리며 눈길에 오래 남은 바다 물결에 얼비친 햇빛은 한결같은 그것이었으리라.
비틀리고 뒤틀리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련만,
또한 쉬이 풀리고 스러지는 것도 인연이고 연기인 셈이다.
필연적인 얽힘의 원리가 있기도 하는 법이지만,
또한 개별적인 풀림의 원리가 있어서 삶은 눈물 속에서도 싹이 트는 모습을 보게 되는 법인 모양.
올 겨울 토지를 읽으며, 마음에 싹이 트는 기분이다.
길상이와 함께 뱃속 뜨거운 독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