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1 - 애장판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봄방학을 이용해서 깊은 독서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오랜만에 두꺼운 만화의 고전을 집어 들었다. 내용을 대략 알고 있던 만화였지만, 자세히 보고 나니 참 잘 그린 만화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무리를 짓지 못한 이유도 알 것만 같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이슈는 '홍천녀' 무대의 주인공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이다. 천재소녀 마야와 완벽한 조건을 가진 아유미 사이의 연기 대결도 볼 만하고, 홍천녀의 스토리와 하야미와 마야의 애정도 흥미롭다. 결론은 어느 것도 나지 않았지만...

츠키카게 치구사의 이 한마디 말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상상력은 지식 이상을 주는 법이다.' 이 한마디는 모든 인간의 가능성과 지적 허영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기에 이 만화 속의 천재소녀 마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조건이므로.

마야가 성장하는 과정은 수많은 반동인물에 부딫혀 흥미진진하면서도 언제나 걱정할 필요 없이 만든다. 그의 뒤에는 '보랏빛 장미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장금이 인기인 가장 큰 이유는 대장금의 고난이 길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고난이 너무 길거나 결정적이면 그 스토리를 보지 않는다. 영화 '챔피언'이 실패한 이유도 그것일 거다. 결국 사람은 희극을 바라는 본능을 가졌다고나 할까. 람세스도 마찬가지다. 람세스를 읽다보면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권능이 혈관을 타고 느껴지면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 만화의 가장 큰 재미도, 어떤 고난 앞에서도 보랏빛 장미의 사람과 마야의 재능이 결합되면 즐거운 결말을 보여준다는 기대감 때문일게다.

이 책의 한켠에 <모차르트>가 등장한다. 천재성의 대명사이기
때문에 그의 등장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가 아유미의 고뇌를 이해할지도 모르고... 시기상으로 본다면 작가 스즈에 미우치가 그 영화를 본 뒤의 작품일 것도 같다.

세상에는 천재가 있어 나머지 평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난 평준화, 평등을 너무 지나치게 외치는 자들을 증오한다. 그들의 평준화, 평등은 언제나 열등하고 부족한 자기들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니었음이 100%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유미와 마야의 대결, 하야미의 약혼식장에 쳐들어간 마야의 운명은 차라리 안 보고 대미를 내리는 것이 아름답다. 이 책의 다음 권이 간행되더라도 별로 보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만큼 마야에게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새학기가 온다. 내가 만날 아이들. 내가 괴롭혀야 할 아이들의 마음 속에 싹트고 있는 마야들을 내가 짓밟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한마디 말, 작은 몸짓 하나가 그들의 마야를 짓밟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무서운 사실을 떠올리며 이 책에 내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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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2004-03-0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와 정말 대단한 선생님 이셔! '(혼잣말)
맨 마지막 구절이 와닿습니다. "작은 몸짓 하나가 그들의 마야를 짓밟는 결과가 낳을지
모른다"
님과 같은 선생님을 둔 제자들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