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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신경숙은 아마도...
제목에 '언젠가'를 밀어 넣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을지도 모른다.
새벽 세 시부터 아침 아홉 시까지 온 몸으로 쓰려고 했던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 언젠가.
그런데, 어떤 과정에서인지, 언젠가는 너무 시적인 제목이라선지,
여기 쓰여진 서사의 제목에는 '언젠가'라는 시간적 상념이 밀려나고,
'어디선가'라는 구체적 공간의 상념이 핵심 자리에 들어서 버렸다.
이 소설을 다 읽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가 오후 세 시에서 저녁 9시까지 소설을 썼더라면... 언젠가, 그가 다시 그 시간에 소설을 낸다면...
단이도 미루도, 미래 누나도, 명서 마저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을... 이런 생각을...
글을 읽는 내내 쓸쓸함이 가슴을 휘젓고 갔다.
그가 유리창에 검은 도화지를 붙이고 지냈던 시절,
나는 온 마음에 검은 도화지를 붙이고 찬바람부는 세상에서 이만큼 떨어져 지낸 기억을 끄집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표정없는 미루를 만났을 때부터,
미루는 불안했다.
외자 이름인 단이도 그랬다. 처음부터 뿌리가 없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결국 그 뿌리없는 삶은 '훅' 부는 입김에도 날아가 버렸다.
삶은 '풀뿌리'처럼 끈질긴 것인데, 신경숙의 '인물들'은 너무 가볍다.
윤교수의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풀뿌리같이 끈질김에 대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비록 강물을 건너야 하는 불안한 존재이긴 하지만,
억세게 삶을 부여안고 긍정해야 하는 존재 말이다.
이미 지나간 '언젠가'가 그렇게 가벼운 것이라면, 다가올 '언젠가'도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잖은가.
지나간 '언젠가' 내가 그에게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가올 '언젠가'도 그 말은 언어가 되어 미끄러지지 못하고, '가슴처진 여자가 슬픈' 것처럼 콤마 속에 끊긴 생각들로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내,가,지,금,...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언젠가'
신경숙의 글은 이래서 안 보려고 하지만, 또 안 볼 수 없다. 베스트 셀러니깐.
국어 교사는 내가 깊은 독서를 해서 깊은 수준의 학문을 가지기 이전에, 얄팍한 독서라도 넓은 수준의 독서가 미덕이라 여기기 때문에 베스트는 읽어야 한다는 굳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차가운 날씨처럼 스산한 소설을 읽자니, 마음이 시리다.
따끈한 바닐라 향 커피로도 녹아내리지 않는 마음...
정윤처럼 하염없이 세 시간쯤 걷고 나면 조금 나을까 싶은데,
신경숙이 다 죽여버린 젊음들 사이에서 가득 남은 수업은 오히려 무겁다.
다 죽고 말았는데, 오히려 고양이 에밀리는 살아 남았다.
신경숙은 에밀리에게 자신을 투영시킨 것일까?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양이의 20살은 인간의 100살에 맞먹는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개나 고양이의 수명은 15년 안팎이다.)
사촌 언니의 뱃속 아이가 대학생 채플 시간에 앉아있었다면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건데,
자의식이 에밀리 속으로 들어앉은 건지 아프다고만 하고 고양이는 살아 남았다.
새벽 세 시에서 아침 아홉 시 사이의 시간이 고양이에겐 견디기 즐거운 시간이었던 걸까?
신경숙이 다음에 '언젠가' 쓰게될 소설에서는 젊은 시절이, 청춘이 더 가볍고 경쾌했으면 좋겠다.
외딴 방에서 일곱 시에 떠나갈 기차를 생각하는 우물같은 여자, 신경숙.
그의 프리 허그가 부디 성공하기를...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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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새해 첫날에 불길에 휩싸여있던 숭례문... 그 밤을 누가 잊을 수 있으랴마는...
숭례문이 불타던 2008년 2월 10일(일)~11일은 새해 첫날이 아니었다.
7일이 '설날'이었으니까, 6,7,8일이 연휴였고, 토요일까지 끼었다면 설 연휴 5일의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가 그렇게 착각했을 법도 하다.
42쪽. 청솔모... 청설모, 청서라고도 한다. 오타가 바로 잡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