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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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조잡하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그런데 제목과 책의 내용은,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다. 

젊은 신문 기자의 독서 체험기인데, 롤랑바르트의 개념의 하나인 '푼크툼'이 강렬한 것들도 있지만,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엮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프롤로그의 '아오마메'이야기는 강렬한 것 중의 하나다.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위미를 가진 풍경"이 있다는 이야기.
토지에서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는 구절을 들이댄 것이나,
무진 기행에서 '외로운 사람은 편지를 쓴다... 이런 구절은 강렬한 푼크툼이 있었기에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런데... 초딩 때, "쟤는 애가 표정이 없네." 이런 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저자는,
아직도 어린애같은 면도 있다.
빨간 머리 앤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마플 양을 설명할 때는 그는 여지없는 소녀다.
그리고 요네하라 마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욕심쟁이기도 하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여고생의 무의식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독서는 몽환적이고 몽롱하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 고향 진주에서 만났던 '유등 축제'의 한 장면처럼... 

 

 그의 이상향은 윤동주 같은 훈남 내지 루쉰 같은 존경스런 사람인 모양인데,
어린 왕자를 남자들의 이야기로 치부할 만큼 그의 속에는 강한 자의식 덩어리가 에너지로 뭉쳐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의 무의식 속엔 또 다른 남성성인 <아니무스>가 강하게 자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리드리히의 '안개낀 바다를 바라보는 나그네'에 대한 애착은 소녀와는 거리가 진 느낌이었다.
장욱진의 자화상이나, 루쉰의 '고향'의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는 구절들에 대한 매료는 느낌이 강하다. 

멜빌의 '바틀비'에서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같은 표현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종류가 통하는 이야기겠다. 

한국 소설 6편, 영어권 소설 8편, 유럽, 중국, 일본소설 9편, 동화 등 7편으로 이뤄진 <그림과 엮인 책읽기> 체험담은, 신선한 이야기들 읽을 때는 자못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펴게 되지만, 금세 자동화되어버리는 읽기에서는 '소녀시대, 여고생,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힌 저자의 의견에 조금 지루해질 수도 있다. 

표지 뒷날개에 <그림이 그녀에게 - 서른, 일하는 여자의 그림 공감>이란 책도 홍보가 되어 있는데, 그 홍보 문구를 보면 그를 조금 알게 될 것도 같다. 

서른 살에 만나는 서른 명의 화가, 서른 점의 걸작, 그리고 서른 개의 공감.
막 서른에 접어든 어느 직장인 여성이 울고 웃으며 만난 그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존재론적 쇼핑, 혼자하는 여행의 쓸쓸함, 서른에 다시 맞는 사춘기, 맹목적인 사랑의 허상,
책을 읽어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결핍, 그리고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기만 한 여성의 자존감 등에 대한 속내를 털어 놓는다...고 되어 있다.

 '책' 또는 '책읽기'로 독자를 꾀는 데야 벗어날 재간이 없지만,
이 책을 글쎄, 저자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인지, 다소 억지스럽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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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쪽. 샤갈의 모국을 러시아라고 적었는데...
뭐, 틀린 건 아니지만, 안중근의 모국을 일본이라 적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샤갈은 벨로루시의 비테프스크 출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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