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아빠 백점 엄마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시집,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동심원 14
이장근 외 지음, 성영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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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상파 방송을 탄 초딩 2학년 시가 아빠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냉장고는 맛있는 걸 줘서 좋고, 엄마는 포근하게 안아 줘서 좋고, 집은 편히 쉴 수 있어 좋은데..
아빠는 왜 있냐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아이를 기른 건, 부모이고, 세상이다.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아이는, 할머니, 부모, 여동생이 자는 집에다가 휘발유를 뿌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엄마는, 아이가 공부 안 한다고 열받아서 목을 매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애비, 삼촌, 할애비, 고모부는 제 딸, 손녀, 조카를 성폭행한다. 

빵점아빠 백점엄마란 제목을 읽고 저 기분 나쁜 시가 생각나면서, 기분이 별로였다. 
물론 그 시의 아빠도 왜 있냐는 소리를 들을 법 하다.
그치만, 억울한 건 엄마만이 아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오랜만에 가게 문을 닫은 날 

엄마가 흰죽을 쑤고
후륵후륵 아빠는 드시고
엄마가 핼쑥한 얼굴로
보글보글 육개장을 끓이고
아빠는 쩝쩝 한 대접이나 드시고 

"설거지는 조금 있다 내가 할 테니
건드리지 말고 푹 쉬어요!"
뻥뻥 큰소리치고는
쿨쿨 푸푸 낮잠 주무시는 아빠 

코고는 아빠 보며
피식 웃다가
수화기 살짝 내려놓고 걸레질하는 엄마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나 

엄마가 편찮으신 건지
아빠가 편찮으신 건지 (빵점 아빠 백점 엄마, 이정인)

 이 시는 얼핏 아이의 목소리를 띠지만, 
엄마의 시선으로 본 시임이 느껴지면, 씁쓸하다.
물론 낮잠 주무시는 아빠가 야속할 수도 있지만,
몸살이 났으면 집이야 좀 어수선해도 쉬면 되련만...
어쩜, 이런 시는 '동시'가 아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쓴 시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쓴 시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이 시는 '바가지 시'다. ^^ 

같은 작가의 '긴말 짧은 말'을 보면,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둔다. 

당신은 회사일만 하면 되지만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 해서 먹이고 학교 보내고 설거지 하고 빨래 모아서 세탁기 돌리고 큰방 작은방 거실 베란다까지 쓸고 닦고 세제 풀어 욕실 청소하고 빨래 털어서 널고 아침 겸 점심 먹고 휴, 애들 오면 간식해 먹이고 학원 보내고 숙제 시키고 씻기고 시장 봐 와서 저녁밥 해 먹이고 또 설거지하고 빨래 걷어 개고......
나, 무척 피곤해요 정말 힘들어요.  

엄마 말 다 듣고 난 아빠
"그럼 당신도 집안일만 해." 

엄마는 짧은 얘길 참 길게도 하시고
아빠는 긴 얘기를 참 짧게도 하신다. (긴 말 짧은 말, 이정인) 

사람 사는 거,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안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안 보인다. 
보려고 눈 뜨면,
별게 다 보인다. 

비 그친 뒤
나무 잎사귀 끝에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툭,
툭,
툭! 

흙 위에 생긴 
동그랗고 오목한
물방울 무덤 

바람에 날려 온
풀씨 하나 

물방울 무덤에 안겨 

꼭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물방울 무덤, 이정인) 

세상은 바람에 날리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눈도 우리에게 틔워 주지만,
사노라면, 교장 선생님이 제 학교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두려운 일도 생기는 법이다.
사는 일은 늘 두려운 일이다.
예쁜 것만 보고, 아름다운 일만 만나고 살고 싶은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사람은 제 뜻에 부합하지 않게 더러운 일도 만나고 더러운 사람도 만나는 법이다.
작은 것들의 눈뜸에도 예민하게 산다면, 더러운 일 덜 만날 수 있으려나. 

큰 감나무 한 그루
주렁주렁 감들이 달렸는데
푸른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고
주황색도 아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 예쁘다
무슨 색깔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익어 가는 색깔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익어 가는 색깔이다 (익어 가는 색깔, 안오일) 

'익어 가는 색깔' 낱말 엮은 하나로 바로 시가 되었다. 그 마음이 곱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주로 동시를 쓰신다.
아이들 곁에 계시니 마음도 아이들과 같이 곱게 구르시는 경우도 많지만,
그 꼬맹이들 속도 많이 썩이시리라.
속 썩이는 녀석의 시가 적은 것이 좀 아쉽긴 하다.
속 썩이는 녀석이 주인공인 시가 더러 있으면, 속 썩이는 녀석들도 세상에 한 움큼 몫을 할 수 있을 거란 말을 들려줄 수 있으련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세상엔 다 필요한 존재일 수 있음을 가르칠 수 있으련만... 

초등학교 선생님도 다들 여선생님인데,
아빠 입장 대변하는 시가 드묾에 조금 아쉽다. 아니, 많이 아쉽다.
나야 가족이랑 남남처럼 지내는 사이 아니라 치더라도,
정말, 아빠는 왜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남성의 활동 영역은 보여지지 않는 그림자 영역이기 쉽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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