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부산시 교육청과 시민도서관 등에서 협동하여 '원 북 원 부산 스타트'라는 독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한 권의 책을 정하고, 그 책 읽기를 홍보하는 것으로, 몇 년 전 '책을 읽자' 캠페인을 벌이던 느낌표! 에서 삘을 받은 프로그램 같아 보이는데, 해마다 가을이면 그 독후감 대회가 열린다. 

오늘 그 본선 심사가 열려서 고딩들의 독후감 170편을 읽고 덤으로 책까지 얻어서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만, 도서관 사서 샘들이 부탁한다고 이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나는 뿌리치질 못한다. 그래서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시민도서관에서 부탁하는 심사는 대충 참석하는 편이다. 리뷰 읽는 즐거움도 한몫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치만 수고비도 얼마 안 주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ㅠㅜ)

170명의 고딩들이 쓴 독후감을 읽노라니, 읽지 않은 책의 줄거리나 세부까지 머릿속에 콕콕 박혔다.
어쩌면, 감상문들도 내 뇌리에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감천동은 어렸을 적,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자주 갔던 동네다.
지금은 이쁘게 지붕을 색칠하여 원경 사진을 찍으러 전국에서 몰려드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그 동네의 살림 살이는 여전히 열악하다.

  

이런 동네의 특징은,
정상 부모는 맞벌이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많은 부모는 싸움 끝에 정상인 어머니는 가출하고 비정상 아버지가 아이에게 폭행을 일삼는 동네이며,
그 끝은 조손가정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가득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 동네에서 산너머 학교인 토성 중학교(현 경남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그 동네 사정을 잘 안다.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최수연 씨는 서른이 좀 넘은 나이에 수녀가 되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의 옆에서 살기로 작정을 하고 근거지도 아닌 부산의 감천동이란 산동네에 쳐들어온다.
그래서 우여곡절끝에 험악한 동네에 일곱 평(휴, 일반 교실이 스무 평이다.) 짜리 공부방을 열었는데,
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 아이들은 미어터지고, 아이들이 들이닥치면서 고민과 즐거움은 아우성을 친다.
물론 공부방을 통해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 적었으리란 이해는 하지만, 글의 틈새에서 놓쳐버린 아쉬움이 가득한 최수연 님의 마음을 교사인 나는 놓칠 수 없다.
원래 재미있는 척 너스레를 떨어도,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느낄 수 있는 직감이란 게 있는 법이다.
아마도... 저자가 그간 놓쳐버린 아이들, 더 마음써주지 못해 마음 터지게 아픈 아이들 이야기를 생각해서 쓰기 시작하면 공부방 문 닫아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범위가 넓어져 동네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도 학생이 되는 곳,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 되는 곳으로 성장한 공부방.
한방 진료도 넣고, 내킨 김에 주례도 서는 처녀 원장님. ^^
천사가 따로 없지만,
역시 천사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은 <지옥도>다.
지옥이 없는 곳에 천사의 존재는 빛나지 않는 법.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교사가 되고 싶어하던 아이들이, 과연 이런 훌륭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만났던 것인데,
나의 대학 시절, 그런 고민들로 대학원 공부를 접고 졸업 후 바로 발령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치열하게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며,
방학 중에도 아이들 생각에 뒤척거리게 되고,
늘상 아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개학하는 날이면 아이들 만날 꿈에 잠도 못 이루던 교사 시절을 시작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는 나는...
이제 22년차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초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인지...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처음의 그 마음을 지니고 사는 일이라는데...  

집안 어렵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그렇고 그런 사정으로 맨날 지각하고, 도망가고, 사고 뭉치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벌레 보듯 보고 있는 교사가 되어버린 나를 응시하는 일은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두렵다.
이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
열심히 일하여 땀방울 흘리는 일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혹하게 몰아치는 일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 마음이 쓰려 술잔을 몇 잔 삼킨다. 

아이들의 편이 되지 않는 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게 내 초심이었는데,
과연, 나는 아이들의 편이 되는 교사 생활을 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내일은, 오늘 심사비 포함하여, 후원금으로 몇 푼 기부를 하고 차근차근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이 글 보신 분이라면,  

요기로 후원금 좀 보내주시길...
천사에게 후원금 보내주시면, 복이 돌아올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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