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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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문가 조지프 캠벨(신화와 인생, 신화의 이미지, 세계 신화 시리즈 등)은 신화를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고,
'인간의 거대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원형적인 꿈'이라고... 

이윤기가 그리스 신화를 읽어주었듯, 황경신의 자기 나름의 여성적 감각을 한껏 살리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듬뿍 집어 넣어 멋진 레시피로 훌륭한 요리법을 선보인다. 

우선 그가 잡은 아우트라인은 봄,여름,가을,겨울에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봄에 사랑,
여름에 욕망,
가을에 슬픔,
겨울에 외로움...을 배당해 주었다. 일리가 있는 배당이다.
그리고, 각각의 계절과 상징에 또 어울리는 신화속 이야기들을 배치한다. 

봄의 사랑에 '아리아드네, 프시케, 프로크리스, 세멜레'를,
여름의 욕망에 '갈라테이아, 아프로디테, 다프네, 엔디미온'을,
가을의 슬픔에 '에우리디케, 페르세포네, 메두사, 메데이아'를
겨울의 외로움에 '미노타우루스, 에코, 판도라, 시빌레'를 배치했다. 

독특한 것은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미노스의 황소를 빼고는 모두 여성들을 주된 신화의 해석 열쇠로 맞춘 것인데,
그가 일하고 있는 여성지의 패턴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라 하겠다. 

나리키소스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지만, 에코를 전경화시키는 방식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숱한 이름들은 들었다가도 또 까먹고 만다.
그것이 신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읽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이랄까. 

어리석게도 상자를 열어 인간을 재앙으로 몰아 넣은 '판도라'같은 여성도 저자는 적극 변호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정황에 대한 이해와, '희망'을 가두어 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해석.
희망이란 것은 바라고 바라는 마음,
모든 욕망이 흘러나오는 곳, 우리를 눈멀게 하는 마음의 감옥,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불행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희망이란 것은, 그곳에 그것이 있다, 정도로만 족한 것.(282)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 역시, 갈라테이아를 중심에 놓는다.
피그말리온의 끝없는 욕심. 신화는 해피엔딩이지만, 버나드 쇼의 희곡은 야릇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104)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이 아폴론을 쏘아 다프네를 쫓았다는 이야기, 월계수 이야기.
저자는 이것도 재미있게 해석한다. 

당신이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사실 하나.
그 시절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당신의 품속으로 곧장 뛰어들고 싶었지만, 나는 달아나기 시작했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느꼈어요.
나는 순간 당신이 소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야 했어요. 그래서 나무가 된 거죠.
만약 내가 그 날 순순히 당신에게 나를 맡겼다면,
저항을 포기하고 당신의 것이 되었다면,
당신은 나를 벌써 잊어버렸을 거예요.
당신은 나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잊을 수 없었던 거예요.(135) 

신화를 읽고, 또 그림도 찾아 보고,
그 신화 속 인물들에게로 마음을 투영하여 글을 쓰는 작가의 투명한 심사게 연못에 비치기라도 할 듯 하다. 

자식을 죽이는 걸로 잔인한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메데이아.
그도 변호해 준다. 

일생 사랑에 관해 배우지 못한 한 여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조건없는 사랑을 할 수 없었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여자.
마법으로 사랑을 사려고 했던 여자.
그리하여 죽는 날까지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여자.
그를 동정해 줄 수는 없나요.
당신에게는 아마 연민이라는 감정이 있겠죠.
누군가에게 연민과 동정을 받아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에요.(228)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변호는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990년을 살게 된 시빌레.
그는 한 가지 실수를 한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게 해 달라는 부탁을 잊어버린 것.
사망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 시빌레의 비극은 남의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기회주의자이며 도덕적 가치관은 없이 재주만 뛰어났던 다이달로스 이야기.
그래서 신화는 우리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오래 잊히지 않는다.
신화는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에 선행된 경험이며,
인생에 대한 사소하고 거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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