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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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징가가 말한 바,
교회는 ‘생활의 모든 소요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고요와 질서로 감싸는’ 중세사회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소요를 생활로부터 충당하고, 모든 것에 시비와 무질서를 떠메는' 현대사회의 한국 교회의 특징적 돌출에 대하여 한 마디로 정리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아니, 한국이란 사회의 현대는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문명의 모순>, <이념의 모순>, <권력의 모순>, <학자의 모순>, <경제의 모순>등이 총체적으로 총망라된 곳이기때문에, 모순의 도가니 내지는 모순의 샐러드 보울이라 할 이 사회에서,
교회란 것 하나라고 '고요와 질서'에 봉사하고, '생활의 모든 소요를 지배'하는 위치에 놓이기를 바랄 수는 없으리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줌마가 있다는 농담도 있고,
어떤 세상엔 남자와 여자와 군바리가 있다는 농담도 있다.
세상의 교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와 '한국 교회'가 있다는 말도 들었을 정도로 한국 교회의 발전상은 독특함이 넘친다.
은마 아파트 상가 건물 하나에 십여 개의 교회가 있었다는 전설로부터, 일요일이면 노선버스의 노선을 재획정할 정도로 인파의 흐름이 큰 '순복음 교회'같은 거대 교회들의 소식도 그렇다. 

한국 교회엔 '믿음'은 없고 '신도'만 득실거리는 건 아닐까?
'예수'는 없고 '예수 믿쓥니다'하는 환자들만 바글거리는 건 아닐까?
왜 예수님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십자가진 면류관의 자리에는 서지 않으려 하고, '돈'과 '권력'이 선 자리에는 출첵 100%를 자랑하는 것일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다니는 일은 왜 그다지도 힘들어서 못다니게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있을 수는 있어도, 그걸 입밖에 꺼내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발화자를 지목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외침을 내지를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풍경'과 '불멸의 신성가족'같은 서적으로 유명한 법학자 김두식이 이번엔, 예수의 제자로서 바라본 '교회 속 한국'과 '한국 속 교회'를 적은 책이다.
외부자로서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부자로서 교회를 까발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이런 책자는 10년 대한에 단비처럼 여겨진다.
내가 교회 관련 서적에 무심하여 덜 찾아본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종교, 특기 기독교 교회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불경스런 일이었으므로, 더욱 신선했던 것이리라. 

김두식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은 부분과, 쉽지 않은 부분이 섞여 있다.
특히 4,5장처럼 중세의 역사를 거론하는 부분은 성경은 여러 번 읽었지만(문학 서적 독서와 유사한 것이었다.) 교회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나같은 얕은 독자에겐 완독이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교회라는 공동체가 한국에서 주는 '심리적 위로'와 '경제적 위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나로서는 교회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하기 쉬워도, 내막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운 부분이었기에 작가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또는 애정으로 가득하여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걱정하는 이런 글을 읽는 일은 한 마디로 황송한 일이었다. 

더 높이 올라가야 많이 베풀 수 있다는 '한국 교회'의 모순.
20년 전 국가 권력자에게 복종하라던 교회가 '사학법', '국보법' 투쟁의 일선에 서게 된 모순.
정말 시민을 사랑하여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를 올리신 어느 시장님의 기도문(154)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지는 데 열성적인 한국 교회.
이런 감동의 스토리가 짬뽕되어 덕지덕지 슬러그 덩어리 진 곳이 그곳인데,
자신의 구제 사역의 업무를 <보험 회사>에 넘겨준 교회에 신도들은 모이지 않는다는데,
한국의 교회는 오늘도 번창 일로에 있으니, 진정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나같은 교회 인근에 몇 번 발걸음을 떼려다 만 인간이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소일거리지만,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의 눈물을 아직도 어루만지며 나날을 기도하는 이에게 이런 책은 한국 교회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주는 희망봉이 될 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나올 수도 없고, 주일마다 빠질 수도 없는 딜레마에서 자신을 구원하여주는 책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기총에서 이 책을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는 소문을 못 들은 걸로 보아, 그 정도로는 가치없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외부자인 나로서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 리 없지만,
교무실 창틀 너머에서 바람타고 넘어드는 금목서의 은은한 향 속에서도 예수님 사랑하라는 목소리는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나 사찰에는 다니지 않지만,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듯 하다.
아이들을 예수로 보고, 가장 낮아보이는 넘, 가장 보기 싫은 넘을 예수님 보듯 하라던 말씀을 기억하는 일로도 나는 어느 정도 예수님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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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 글자를 모으면 헬라어러 물고기를 뜻하는 '익투스'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는 물고기가 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재미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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