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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정래라는 이름 속에는 격정의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있다.
그의 태백산맥은 '이데올로기 분단국의 역사'가 담겨 있고,
그의 아리랑은 '식민지 시대의 고난의 역정'이 담겨 있고,
그의 한강에서는 '현대화 과정의 팍팍하던 삶'이 담겨 있었다.
이제 큰 어른의 목소리로 현대 한국의 모습을 그려 낸다.
그러나... 이전의 소설들에서 주된 서술의 대상이 '민중의 역사'였다면, 이번에 그린 것은 '골든클래스의 삶'이며,
그것들의 허청대는 짓거리를 '허수아비춤'이라고 비꼬아 풍자해 내고 있다.
돈을 향한 모든 권력의 일렬 행보는 이미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세세하게 설명된 바 있었지만,
조정래의 이번 소설은 '삼성을 생각한다'에 구체적인 권력관계의 유착을 형상화 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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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루쉰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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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드러낸 그의 의사 표현이 이 글의 주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적 정의'를 이야기하는 자조차 없는 현실.
88만원 세대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골프에 중독되어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
아파트 평수가 점차 넓어지고, 가진 자들의 욕망에 못가진 자들의 욕망도 '명품' 사냥에 휩쓸리는 마음들.
그 팍팍한 현실을 '일광 그룹'의 '문화개척센터'라는 홍보기획실에서 벌어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통렬하게 풍자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돈에 대한 숭배'와 돈-정치-경제-언론-대학의 유착과 재생산 구조를 몇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 his story를 통해 재구성한다. 그 허구성의 재구는 바로 역사 history가 된다.
한국이 어떡하다 이렇게 정의를 실종해버린 나라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조정래를 읽으면 된다.
그를 읽는 일은 가슴 한켠에 금속성으로 박혀있어, 도무지 나와 융화될 수 없는 '양심'이라는 놈의 압박을 받으며 살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허수아비들이 둘러서서 춤을 춰대는 것을 보고 그 춤사위에 같이 너울대는 것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그렇지만, 한국이란 나라의 오늘,
뉴스에 등장하는 재벌이란 이름의 허수아비들의 작태는 더할나위없이 꼴불견이다.
온갖 지식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나무는 녹색이듯, 조정래의 소설을 읽는 일은 생명수를 흡수하는 나무의 잔뿌리를 우리 몸에 돋게 하는 일이다.
조정래 다운 입담도 맛볼 수 있고,
정말 오랜만에 대자보의 격문을 읽는 듯한 세상보는 눈도 기를 수 있다.
마지막에서도 결말이 닫히지 않은 구조로 독자를 시험하고 있다.
과연 전인욱은 낚시바늘의 미늘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사람일 것인지, 허민 교수의 충고를 받아들여 술을 끊게 되는 것인지...
험한 세상 술 없이 어찌 살랴마는, 허민 같은 믿음직한 술친구하고 마시는 외의 경우엔 늘 경계의 눈을 풀 수 없을 노릇이다.
세상 허망하다.
허수아비들의 춤사위는 현란하기 그지없지만, 헛되고 헛되다.
허수아비들의 앞날에 이미 그림자는 드리웠지만, 자본의 힘을 타고 너울대는 허수아비들의 춤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경제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아직 그 주춧돌 하나 마련하지 못하였으니 허수아비들의 너울거림을 맥놓고 지켜볼 뿐...
그렇지만, 허수아비가 인간을 지배할 수는 없으리라는 믿음이 이 책의 시니컬한 주제 의식일 것이다.
양심의 금속성
- 김현승 -
모든 것은 나의 안에서
물과 피로 육체를 이루어 가도
너의 밝은 은(銀)빛은 모나고 분쇄(粉碎)되지 않아
드디어 무형(無形)하리만큼 부드러운
나의 꿈과 사랑과 나의 비밀을
살에 박힌 파편(破片)처럼 쉬지 않고 찌른다.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醉)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밤……
너의 차가운 금속성(金屬性)으로
오늘의 무기를 다져 가도 좋을,
그것은 가장 동지적(同志的)이고 격렬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