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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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피를 내뿜으며 쓰러져 갔을 나무의 정령들에 미안할 따름이다... 이렇게 자기소개를 마칠 줄 아는 사람.
그의 독서 이력은 그 스펙트럼이 찬란하다.
한국 소설에 치우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 소설을 짧은 리뷰 안에서 톡톡 건드리는 맛이 제법 가뿐하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고 제목 붙였지만, 대부분은 한국 소설, 그것도 현대의 작품들이다.

간혹 몇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은 마뜩잖다.
소개해 주세요~ 하는 눈빛이 벌써, '난 읽고 싶은 맘이 별로 없걸랑요~' 이런 느낌에 폭 잠겨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읽고 싶은 사람은, 읽고, 또 읽노라면 겹쳐읽고 싶은 책이 있고, 깊게 읽고 싶은 분야가 생겨 나게 마련이다.
책읽는 데 탄성이 붙은 사람이 도서관엘 가면, 저요! 저요! 하고 손드는 책들 통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어있다. 

안양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을 가르친다는데... 힘들 것이다.
중고생 가르치기보다 훨 어려운 것이 대학생 교양 국어 가르치는 일이니. 그것도 좀 변두리 대학의... 

인문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대목에서 읽고싶어지는 책이 왕창 늘어나는 걸로 보아, 내가 요즘 깊게 읽고 싶은 책이 그 쪽에 많이 쏠려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노자와 논어, 장자 류를 많이 찾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요즘엔 짧게 떠오르는 생각을
단속적으로 쓴 '시'나 '청소년 소설' 정도의 독서에도 대뇌 피질이 버거워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낡았거나, 이미 대뇌가 늙었거나... 

무라카미 류의 <69>를 읽으며 루쉰을 떠올린다.
" 그 아버지는 사람은 좋은데 단지 기억력이 좀 나쁜 것 같다. 그 자신도 어렸을 때는 캄캄한 방에 가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때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자기 아들을 가둔다.(83)"
아이들을 때려야 한다고 하고,
제재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음, 기억력이 나쁜 거구나.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99)
야만과 낭만이 맞서는 세계를 그린 빼어난 우화. 현실에서는 야만이 승리를... 이제 낭만이 세상을 치유하지 않는 한 인간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리라... 

에릭 홉스봄, <미완의 시대>(124)
인류는 사회주의를 버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사회주의에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불의는 아직도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네그리 <귀환>은 <제국>을 비롯한 여러 책을 한꺼번에 맛볼수 없고, 첫 징검다리일 뿐. 

크리스토프 라무르, <걷기의 철학> (155)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오르가슴...
이윤기, <꽃아 꽃아 문 열어라>
조안 스파르, <플라톤 향연> 만화로 보는 플라톤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신선한 철학 에세이

래리 고닉,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만화세계사
래리 고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SEX>... 만화 
배병삼, <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겉으로는 주변의 사소한 일상을 다루는 것 같으나, 속으로는 정수리를 겨누는 맛이 있다는...
덩굴식물같은 지식인은... 묻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고...
그게, 學,과 問,의 어려움이다. 배우고 묻느냐, 묻는 게 배우는 거냐... 

김교빈, <한국 철학 에세이> 어려운 사단 칠정 논쟁이 쉽게 되었다는... 

디트리히 슈바니츠, <남자>... 남자가 여덟 가지 종류로 나뉜다니... 궁금하지 않은가?
나탈리 앤지어, <여자>... 여자를 이해하고픈 남자에게 

고종석, <자유의 무늬>...
서울의 풍경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단다. 전자는 장애인, 후자는 전경 ㅠㅜ 

박흥용, <호두나무 왼쪽 길로>... 만화 

죽도록 책을 읽고, 그 책들의 리뷰로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사로잡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간, 외국 유명 저자들의 이런 책들을 보고 부러워했는데,
인문학이 죽어가니 어쩌니 해도,
한국의 인문학은 이제 새싹이 돋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서 나무가 거목이 되기까지, 이런 책들이 더 필요하다.
비록, 새로운 창작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겹쳐 읽을 수 있고, 깊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제시해 주는 그 사람이 바로 노마드 유목 시대의 <스승>이다.
그 제자들이 덩굴줄기처럼 스륵스륵 뻗어 나갈 것이고,
여기 저기서 또다른 새싹을 피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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