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창비시선 310
송경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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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제목만으로도 숨이 컥, 막힌다.
사소한 물음.
1. 용산 철거민들은 왜 좋은 집에서 편하게 안 쉬고 거기 올라가 불타 죽은 거야?
2.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왜 전자제품 조립 안 하고 데모나 하는 거야?
3. 이경해 씨는 왜 멕시코까지 가서 배를 가르고 죽은 거야?
4. 평택 대추리 사람들은 왜 욕심도 많게 땅 안팔고 개기는 거야?
5. 택시 운전수가 뭘 안다고 FTA 반대해서 분신하는 거야?
6. 왜 민중의 대통령이 핵폐기장,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국민 목을 조르는 거야? 

왜왜왜???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무허가, 전문)

 

허가받아야 사는 인생.
세상은 허가 받아야 사는 곳인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허가받고 사는 곳인지... 그 사소한 질문에 답할 자, 누군가... 

무허가 주택, 그리고 허락된 폭력. 그것이 국가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면 국가를 부정할진저...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그려줄까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보여줄까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줄까
어떤 상징으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어떻게 그럴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부분)

고양시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좌판을 벌인 아저씨의 붕어빵 틀을 빼앗기고 목매 죽은 사건을 듣고 쓴 시다.
이 시를 읽은 네티즌들이 시청 홈피를 다운시켰고, 노점상들이 시청 입구를 불태웠고, 결국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이 감옥살이를 했다.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정말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의 시 작법은 고통 속에 오롯이 놓여있다.
그의 묘사는 <대상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는 시선의 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루카치 왈, 전망을 상실한 사람들이 묘사의 언어를 선택한다고...
고통 앞에서 어떤 전망을 서사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한때 선진 노동자로 여름 볕처럼 짱짱했지만
이젠 갈 곳 없이 변두리 운짱으로...
기억나지 않는 노래들을 꿰맞추며
우린 다시 어떤 사랑을 깁고 싶은 걸까...
변혁의 주인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탈탈 턴 호주머니처럼 스산해지고...
우리는 개인이 아니었는데
개인이 되고 말았다는 서글픔만 (가리봉 오거리 연가) 

노동자 대투쟁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시대도 있었지만,
세계화를 떠들던 김영삼 정부 이래로,
IMF에서 권고한 것처럼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을 만드는 이어서는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화는 꾸준히 실천되고 있고,
노동자는 파편화되고, 무기력해지는 현실.
다들 배부른 자본가 탓은 못하고,
노동자들, 노조들 탓이나 하고 있는 못난 현실.
노동자가 노조를 탓하면, 웃는 것은? 자본가와 매판 정권임은 당연지사. 

잊고 싶었던 어떤 유령들의 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내 영혼의 방직소, 부분)

공산주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고 있다던 공산당 선언의 말을 비틀어버린 구절이 슬프고 애잔하다.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들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름, 전문) 

요즘 나보다 한 해 뒤 태어난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송경동이 그렇고, 이병률이 그렇고, 요즘 한창 인기인 박칼린도 그렇다.
우연히 그 연배들이 나이 운운하는 글들을 읽노라면,
문득, 나의 주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일이다. 

패배의 주름조차도 나이테, 곧 연륜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는 일은
패배에서도 지혜의 밭을 일구는 힘을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통 속에서 혼자 생각해 보는 일이다. 

아이 성화에 못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수조 앞에서, 전문) 

아아, 송경동이 견딜 수 없어하는 이 세상은 너무 평화로웠던 것이다.
적절한 관계 유지를 위하여 투쟁에서 이긴 것들만 살아남아 누리는 평화.
비정규직과 일용직과 빈민들을 이겨낸 자들의 평,화.로운 관계.
견딜 수 없이 슬픈,
그러나 평화롭기만 한 세상.
답답해 소리치지 못하고,
나즉한 목소리로 '견딜 수 없다' 고 쓰고 있는 송경동이 나는 아프다.

은유는 순간적인 의미의 솟아오름이고
상징은 그 의미를 고정시키는 언어 방식
(143)이란 박수연의 해설도 그럴듯 하다.
그만큼 은유의 힘이 큰 것이고, 활용 가능성도 넓은 것이다.
송경동 시의 힘 중의 하나가 순간적인 의미의 포착과, 거기서 걷어올리는 은유의 성공이다.

시인의 실수 하나
111. 황새울 가는 길, 에서
아홉살 아이가
폐가 할 때 폐자가 한자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닫을 폐, 집 가 해서
닫힌 집, 즉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고 하자
아이가 아하 대추리에 많은 집들이라고 한다
그래그래 하다가 씁쓸해진다 

이렇게 쓰고 있는데, 폐가는 닫을 폐 閉를 쓰지 않고, 폐할 폐 廢를 쓴다. 그만두다, 부서지다, 할 때 쓰는 글자다.
문을 열어뒀어도, 부서진 집을 폐가라고 한다.
문을 닫아놨어도, 사람사는 집은 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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