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김상봉 교수가 2004년에 쓴 '한국 학벌 사회 문제'에 대한 쓴소리다. 

조선 말, 정조 임금이 죽은 후 순헌철 3대 임금 60년간, '벌열 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고,
그 뒤에 권세를 잡은 세력들 역시 자기 권력을 지키려 외세를 들여와 동학군을 죽이곤 했던 나라.
결국 식민지로, 전쟁터로, 군사 독재의 싸움터로 수 세기를 살아온 특이한 섬나라, 한국.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나라의 하나지만,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것으로 보아, 삶의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나라 축에 들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교육비'로 성적을 무색케 하는 나라.
그 모순의 핵심에 들어앉은 문제로, <학벌 사회>를 들고 나섰다.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 운동을 펼친 김상봉 교수의 소회를 아주 두꺼운 책으로 써서, 강준만 교수보다는 좀 있어보이는 책이 되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왜 그런 걸까? 

책을 읽고 난 소회는, 결국 역사의 더께 속에서 형성된 <학벌 사회>의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민중의 저항으로, 결국 <의식화된 민중>의 연대로 깨부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서로 주체성이란 용어를 써가면서 역설하고 있는 것인데, 권영길,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등 진보적 세력조차도 서울대 출신임을 고려한다면, 학벌 타파란 과제가 정말 장구한 세월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번 주는 대학 입시를 위한 수시모집 원서 접수로 혼이 나간 일주일이었다.
그렇지만, 상담을 하면서도 참담한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은 '공부를 하는 학문의 요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한국 대학의 존재 이유는 <배움을 통해 얻는 이익> 중에서도 '전문적 지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스펙(경력)'으로서의 그것이고, 졸업 후 헤쳐 모일 때, 좀더 튼튼한 동앗줄 역할을 할 '신식 카스트 내지 문벌 가족'의 하나로서 <대학의 이익>을 구하는 것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학문의 구렁텅이 역시도 서울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의 <이명원이란 대학원생이 김윤식을 비판했다 매장당한 사건>에서도 학문의 내용보다 학벌은 우선됨을 보여주고 있다. 김윤식이란 대단한 존재가 길러낸 서울대 국문과 출신 교수들에게 김윤식 비판은 '사문난적'에 해당하는 괘씸죄였던 것이다.
교수 사회의 갑갑한 문벌 의식은 남다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에서처럼 외국의 다양한 경험을 한 박사들을 개무시하는 풍토가 또 있을까? 그 대학의 학사, 석사, 박사를 주주룩 꿰어 차야만 그 대학의 교수 자리 하나 얻을지 말지라니...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야만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그리고 공부 하나 잘한다는 이유로 온갖 특권을 누리려는 1등병 아이들.
<학벌>은 불변성, 폐쇄성, 계급적 동질성으로 인해, 근대의 전통적 문벌 계급의 대체물이 되는 데 성공했다.
모든 아이들은 이 <학벌 사회>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인 바, 학벌의 타파가 한국 교육 개혁의 '화두'가 되어야 하고,
한국의 모든 정책은 그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하는데,
<교육열>이란 이름으로 미화된 <제 새끼 학벌 사회에 편입시키기> 전략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붕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제거해 버려서, 돌이켜 생각하거나 더불어 생각하는 힘을 거세했다.
무소유가 아닌, 무사유만이 살 길이고, 도덕성을 생각할 이유조차 파탄의 경지로 몰아버렸다.
사유와 도덕성이 붕괴된 것과 긴밀한 것이 예술 교육의 실종이다.
'개별적 경험'도 소중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일반적 특성'을 외워서 집어내는 시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생각하는 힘, 도덕성, 예술적 감수성을 고려한 교육을 실시하면, 과연 교육이 실패할 것인지...
지금 이 땅을 휩쓸고 있는 자율형~ 광풍은, 음미체와 기술가정, 제2외국어 등의 과목뿐 아니라, 사회 과학 등도 퇴출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오로지 국영수만이 살 길인 모양이다.
나도 몽둥이로 무장하고 아이들에게 언수외만을 열공하라고 강요하는 간수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한 현실을 슬퍼하면서도,
또 몽둥이를 들고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전문대에서 학생 모집의 일환으로 고교를 방문했는데,
일본인 원어민 교수도 한 분 같이 왔다. 교무실 탁자 위의 몽둥이를 잡더니 이게 뭐냐고 묻는다.
사랑의 회초리라고 옆자리 교수가 알려주자, 자기 남편도 좀 때려야 겠다고 농담을 한다.
하긴, 한국인 남편이라면 좀 맞아도 되겠지만... 일본에선 때리는 교사는 있을 수 없단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라면, 예술, 기술, 학술... 같은 것인데,
한국 교육에선 이런 것들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앞차 꽁무니만 물고 달린다.
어디로 달리는지, 앞차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좌고우면하며 고심할 틈이 없다.
오로지 위로, 위로 올라가던 애벌레처럼, 고민하면 뒤처질 뿐인 사회. 

예술, 기술, 학술 같은 활동을 통하여 <종합> Synthesis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 정신의 고양인데,
이런 종합이 인간 정신의 자발성과 능동성의 산물인데, 한국 학교에서 자발성, 능동성을 통한 종합적 발현은 학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입학사정관 제도는 이 종합적 활동을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고 하고, 실적도 없는 학생들이 오로지 경쟁률이 낮다는 이유로 원서 접수를 하고, 실적을 만들어 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학의 서열화, 학벌이 인생의 큰 부분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사교육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
어느 정부나 '사교육 안정'을 정책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학벌 사회와 서울대 연고대의 서열이 튼튼하게 존재하는 한, 끝없는 제 살 뜯기는 반복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학의 평준화, 서울대 학부의 폐지 등을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하지만, 이것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많은 반대자들과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정권이 바뀌고, 아이들만 혼란스런 사회가 반복될 것이 불 보듯 뻔 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전교조 같은 진보적 성향의 집단과 깨어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하지만,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집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의견에 충분히 경청할 수 있는 귀를 가진 정치가가 없기에 이 일은 앞날이 암담하기만 한 것이다. 

무슨 경찰이나 교도관도 아닌데, 매일 밤 10시까지 시간외 수당을 타는 나는 엄청 월급이 많다.
한 달에 시간외 수당으로 5,60만원을 더 받는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의 카스트를 결정지을 대입 사업에 제각기 골몰하는 상황이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읽으면서, 노력은 가상치만,
그들의 노력이, 정말 '가상 현실'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수당만 타먹는다.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