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음으로
오세영 / 좋은날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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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의 '사랑시'를 모았다고 하는데, 너무 기대하면 실망한다.
오세영의 사랑시는 거개가 '이별시'이며, 이별 후의 '아픔'에 대한 시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사랑이란 것이 존재를 보그르르 끓게 하는 것은 잠시이며,
애태우고 속끓이며 가슴 아파하고 그리움에 눈물짓는 '시간성의 문제'임을 생각한다면,
사랑노래를 오롯이 행복한 시간들에만 할애할 수는 없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 시집에서 올곧게 행복으로 치닫는 시들을 찾아보는 일은 힘들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찌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역설, 부분) 

이미 알게 된 것들이 눈에 밟힌다. 그 눈길에서 금이 쨍~하고 갈 것 같은 마음.
그 시린 마음은 아픔으로 사랑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지만,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 사랑의 역설은 신산하다. 

사랑하는 이여, 그러므로
다시 만날 수 없거든 차라리
멀리 떠나갈지니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것이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운 것보다 더
먼 까닭이니라. (멀리서, 부분)

<Smile Again>이란 영화가 있었다. 하키 선수가 해외로 시합을 다녀오는데, 사망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여자친구는 듣게 되고, 어찌어찌 하다 그 선수가 사고로 불구가 되어 차라리 죽었다고 소식을 전했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것은,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운 것보다 더 먼 까닭.
이런 말을 쓰는 시인의 마음은 참으로 시린 것일까?
아니면, 그런 마음을 읽어내는 따스함일까...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원시 遠視, 전문)

나이먹어 아름다워지는 일에 대한 시는 많지만,
원시처럼 원숙함을 애절하고 슬프게 쓴 시는 많지 않다.
작가의 서러워하지 마라...는 말이 괜스레 더 서러워지는 것이,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라... 바라봄이 멀어지는 일 때문임을... 제목에서 드러낸다.
아름다움도 젊어서의 기준과 아주 다르게 되어가는 일임을... 

꽃씨를 떨구듯,
그렇게 떨궜다.
흙위에 눈물 한 방울,
돌아보면 이승은 메마른 갯벌,
목선 하나 삭고 있는데,
꽃씨를 날리듯
그렇게 날렸다
강변에 잿가루 한 줌, (꽃씨를 묻듯, 부분)

오세영에게 이별은 낯선 일이 아니다.
사랑의 다른 한 켠에 맞붙은 것의 이름이 이별이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에 아프게 붙어있는 이별은 끝이 아니라, 쉼표로 살아있다. 

강변에 잿가루 한 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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