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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도 있고,
10월, 이란 오세영의 시도 있다.
9월,은 인생에서, 한여름이 갓 지난 그런 나이인데, 한 40대쯤 되려나.
1년에서 9월의 이틀은 참 짧은 것이다.
그렇지만, 1년이란 숱한 날들 속에서 9월의 이틀이란 '가장 빛나는 이틀'이란 이야기를,
류시화가 시에서 썼다. 그걸 장정일이 베껴왔다. 근데, 표절은 아니다. 허락받았다니까는...
이 시와, 이 제목을 들으면서, 화양연화,란 영화가 생각났다.
화양 花樣...은 꽃처럼... 이런 뜻이고, 연화 年華...는 나이가 빛난다.. 이런 뜻이니,
황신혜와 안성기 주연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정도 되겠다. <꽃처럼 빛나는 나이>라니...
그러고 화양연화...란 발음을 하니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생각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그 날들에 그대 무엇을 하였는가?
이런 질문이, '금과 은'이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란 헤세의 소설 제목 카피한 것보다 좀 멋지다.
편집자와 제목 정하는 순간에 류시화씨 잘 만났다. ^^
장정일 소설의 성욕에 대한 발산은 좀 거슬려하는 편이다.
꽃미남 소설처럼 좀 유치하게 마흔 먹은 돈많은 여자가 이유도 없이 다가와서 들러붙고, 떨어지고...
금과 은은 합금이라도 되려는 듯, 사랑을 나누는 동성애자가 되고...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독일어로나 소리내는, 사랑에는 낯선 남자 장정일의 사랑이야기를 읽는 일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적막을 채워주지 못하는 말을 그리워하며,
말의 속살을 파고들다가, 온갖 사이(間) 가운데, 부재한 말들을 찾고자 하는 노고를,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음절로 표현한 게 바로 '미' 였으며 '시'였다(44)
는 은의 말은 작가의 시론이 너무 튀어 보인다.
주변인들은 주류의 기준이나 가치를 내면화한다.
그래서 주변인들은 주변인들을 누구보다 멸시한다.(77)
이런 것이 우파의 분석인데, 장정일의 우파 이야기가 쩡쩡 울리는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것은,
결국 장정일의 우파 이야기가 시들해져 버리는 것은,
그 역시 우파의 갑옷으로 철저하게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복은 지옥이다. 지옥은 반복이다. 반복과 지옥은 이음동의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런 속담이 담고 있는 함의가 '반복과 지옥의 이음동의적 수사'다.
김명인의 '소금 바다로 가다'가 노래한 것이 그것이다. 반복과 지옥의 세상에서 본 소금의 의미.
내 몸이 소금을 필요로 하니, 날마다 소금에 절어가며
먹장 매연(煤煙) 세월 썩는 육체를 안고 가는 여행 힘에 겹네
썩어서 부식토가 되는 나뭇잎이 자연을 이롭게 한다면
한줌 낙엽의 사유라도 길바닥에 떨구면 따뜻하리라
그러나 찌든 엽록의 세상 너덜토록
풍화시킨 쉰 살밖에 없어
후줄근한 퇴근길의 오늘 새삼 춥구나
저기, 사람이 있네, 염전에는 등만 보이고
모습을 볼 수 없는 소금 굽는 사람이 있네
짜디짠 땀방울로 온몸 적시며
저물도록 발틀 딛고 올라도 늘 자기 굴헝에 떨어지므로
꺼지지 않으려고 수차를 돌리는 사람, 저 무료한 노동
진종일 빈 허벅만 퍼올린 듯 소금 보이지 않네
하나, 구워진 소금 어느새 썩는 살마다 저며와 뿌옇게
흐린 눈으로 소금바다 바라보게 하네
그 눈물 다시 쓰린 눈금으로 뭉치려고
드넓은 바다로 돌아서게 하네 <김명인, 소금바다로 가다>
'이런 일에는 공식이 있다'(217)
ㅋㅋ 소설에 등장하는 멘트 치곤, 지나치게 독자와 친근하다. 수다떠는 소설이란 느낌.
그 대목이 '금과 반고경'의 마지막 정사와 연결된 것이어서 좀더 친근하게 유치하고,
다시 화랑에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욕망이나 강박을 가득 껴안고, 연약한 자아의 보트가 침몰하는> 것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 인간에 대해 화가 '전하경'이 은에게 은근하게 이야기하는 대목 역시 마찬가지로 유치하게 유쾌하다.
부담은 없지만, 깊이 또한 없다.
하긴, 뭐, 이틀이니 깊이랄 것이야...
작가가 된다는 것은 위조지폐범이 된다는 것(324)이라거나,
3류 작가는 어설퍼서, 좋은 아이디어도 어설프게 다룬다. 그래서 명민한 작가는 그걸 비트는 것. 진정한 영감은 그런 데서 얻는 것이지, 거장들 무릎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226)라는 그의 문학관은,
이 소설을 설명해 주는 '비상구'이기도 하면서, 호그와트 가는 기차역처럼 9와 3/4 승강장처럼 모호한 개념을 비춰주고 있다.
이런 언설들이 그의 소설을 충분히 설명하기엔, 아니, 내가 그의 소설을 그렇게 이해하기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너무 적다.
후기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대놓고,
세태소설이자 지식인소설이면서 풍자소설과 예술가 소설을 아우르는 이 복합적인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어주도록 자연스레 유도한다...는 말과 함께, 헤세의 '지와 사랑'처럼 '금과 은'을 들이미는데,
아무래도 나는 이 소설에 대한 작가의 세태,지식인,풍자,예술가,성장 소설에 대해서 동의하기 어렵다는 척력이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그나 나나 모두 <북극 N극>인 모양이다. 북극끼리 밀어내는 척력.
그의 이 소설은 '대학생의 정사'를 묘사한 통속 소설이고, 다만, 그 배경에 세태의 흐름이 은은하게 갈색 톤으로 깔렸을 뿐이란 게 나의 소감이라고 하면, 작가가 서운해 할까?
----------- 오기 몇 개
21. 대노... 대로의 잘못
144. 국어교육과 교수의 수업을 '금'이 듣는 좀 퐝돵한 시츄에이션...
232. 이체유탈... 좀 이상타 했다. 遺體離脫 유체이탈...이겠지. 근데, 궁금해서 이체유탈을 찾아보니... 이렇게 쓴 블로거들이 상당히 등장한다. 틀린 말이지만 많이들 헷갈리는 말이다.
251. 지혜가 부득이 카페를 찾아오리라고는... 부득이는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란 뜻이다. 좀 안 어울린다. '부득부득' 이런 뜻으로 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