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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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다??? 

프랑스의 한 외로운 남자 쿠쟁 씨는 그로 칼랭(열렬한 포옹이란 뜻)이란 이름의 2미터가 넘는 비단 뱀을 기른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통계청에서 일하는 쿠쟁 씨는,
인간간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결국 그의 열렬한 포옹의 상대는 그로 칼랭 뿐이다. 


사랑은 상대와 나 사이의 존재론적 혼란 상태일 뿐,
인간이 온몸으로 열망하는 불가능의 끝일 뿐. 

이런 이야기를 읽고있는 독자들 또한 얼마나 외로운 사람들일 것인지... 

삶에는 격려가 필요하다.
그 이름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간에...
그 격려의 하나로, 로맹 가리는 '비단 뱀'이란 극단적 환경을 끌어온다. 

삶은 무의미하기때문에 진지한 문제가 된다는 말은,
통계청에서 일하는 주인공 쿠쟁 씨의 삭막한 환경과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93쪽의 '애처로운 숫자 1'에 대한 애정은 끊임없이 도망쳐야 하는 슬픈 희극의 주인공 인간에 대하여 가진 화자의 애정이기도 하다.
적은 숫자 1이지만 항상 도망칠 수밖에 없고, 혼자 남는 숫자. 1 
인간의 존재와도 어울리는 1.
그래서 외롭고, 쓸쓸한 쿠쟁씨에게 꼭 어울리는 숫자. 1 

많은 사람이 자기 껍질 속에서도 불편해 하는 것은 그 껍질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이런 구절을 만나는 일과도 어울린다.
사람은 왜 외로울까. 왜 자신의 현재를 그렇게 불편해 할까?
자신의 현재가 자신과 꼭 맞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껍질을 거부할 때, 세상은 껍질을 깨려는 인간을 격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껍질을 깨려는 그 인간을 깨버리려 하는 것이 세상이다.
세상은 잔인하다. 
세상에 그로 칼랭(열렬한 포옹)은 그래서 그토록 드물다. 슬프다.

한없이 외로울 때,
그로 칼랭은 고개를 들고 완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를 진정시키려고 보여주는 표정.(146) 

아, 이럴 열렬한 포옹이란 이름의 냉정한 이성이 곁에 있다면 세상 살이에 얼마만큼 큰 위로가 되랴. 

드레퓌스란 정의의 이름을 가진 쿠쟁 씨의 마음 속의 연인은,
어느 날, 창녀가 되어 사랑을 나누게 된다.
여느 창녀와 마찬가지로 쿠쟁 쌔의 젖꼭지를 빨아주는 드레퓌스를 쿠쟁 씨는 다시는 찾지 않는다. 

세상은 참으로 마음처럼 살아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외롭지만,
냉랭한 그로 칼랭의 사랑처럼 똬리틀고 앉아있는 포옹이라도 인정된다면...
그것이 비록 어떤 종류의 것일지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도덕'이란 이름으로 그것을 내치는 것이 오히려 비인간적인 차가움이 아닐 것인지... 

자기 힘으로 사랑받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모두 분실물 신세가 될 것.(154)
이런 글을 읽는 일은 외롭고 쓸쓸하다.
인생이 분실물 신세가 되다니...
그렇지만, 곰곰 되새겨 본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짜개지는 오늘같은 밤,
내가 바로 분실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를 잃어버린 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이런 외로움이 가슴을 친다. 

나에게 다가가서 내 팔로 나를 안고, 움푹한 손바닥 안에서 잠이 들 것 같은 사람들.(192)
이런 글을 읽는 일은 한없이 쓸쓸하지만, 또한 위로가 된다.
세상에 혼자임을 깨닫는 일이 이렇게 외롭지 만은 않게 만드는 소설 한 편쯤 있어도 좋을 것이다. 

외로운 존재, 그대에게 뜨거운 포옹을 보내는 소설.
그렇지만, 또한 한없이 외로움을 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설.
로맹 가리를 사랑하는 이라면, 사랑해 봄직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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